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118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신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부활을 지난 우리는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과 삶을 통해 신앙이 무엇인지,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새기고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주제가 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간단하고 쉬운 일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언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세례를 받았는지는 서로 다르지만 그것이 나타내는 것은 모두 하나입니다. 오늘 이 주제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니코데모라는 사람. 바리사이이고 유다인들이 최고 의회 의원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스승의 반열에 있었던 사람이고 누구보다 하느님과 율..

사제의 공간 2021.04.12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주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팔일 축제입니다. 오늘 복음 속 우리는 주님의 부활과 주님 부활을 대하는 세상의 모습을 모두 보게 됩니다. 주님은 여인들에게 "평안하냐?"하고 물으시고, 제자들에게 갈릴래아에서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이야기를 전하십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만났던 그리고 처음 복음의 선포가 시작되었던 그곳에서 모든 것이 계속되리라는 이야기입니다.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어떤 이들은 부활이 완전히 새로운 무엇인가를 나타내는 변화로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활은 예수님의 모든 것이 여전하며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곧 부활하신 예수님은 불사불멸의 전혀 다른 존재가 되셨다..

사제의 공간 2021.04.05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사순절이 끝나기 하루 전, 주님 수난의 성삼일이 시작되기 하루 전에 피해갈 수 없는 한 인물을 만납니다. 유다 이스카리옷. 그는 수석 사제들에게 자신의 스승을 넘기려 합니다. 그리고 그 값을 흥정합니다. 그는 이제 스승을 떠나기로 한 겁니다. 스승을 떠나며 자신의 몫으로 세어 받은 은돈 서른 닢. 예수님을 따라다닌 그 시간에 비해 그가 받아든 몫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그는 구세주를 팔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쥐어진 몫이 누군가의 목숨값이 될지 모른 채 그것으로 자신이 떠날 시간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시간에 예수님도 마지막 시간을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세상에서의 몫은 서른 무렵의 나이와 죽음의 십자가였습니다. 어머니..

사제의 공간 2021.03.31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따라 이야기들이 엮어지는 세상인지라 이천년이 지난 지금의 나자렛, 그리고 갈릴래아는 유명한 성지순례 장소가 되었습니다. 성전이 지어지고 순례객들이 이어지는 곳에는 기념이 될 만한 많은 것들이 채워져 그 때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사라져버립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 옛날 도시 위에 자리잡은 새로운 자리에서 성지를 기념하거나 짐작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전혀 다른 장소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시간과 시대를 거슬러 그 상황을 머리 속에서 그리고 마음 속에서 떠올리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2천년 전 나자렛 그곳은 예수님의 고향으로 알려진 곳이고 예..

사제의 공간 2021.03.20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요한 복음은 예수님이 유다인들에게 왜 미움을 받으셨는지 십자가의 이유에 대해 힌트를 주곤 합니다. 그래서 가장 솔직한 표현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느껴지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그 표현 하나가 커다란 '죄'가 되고 맙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첫 말씀이 그 두가지 엇갈린 평가를 나타냅니다.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보내는 하루가 아버지를 닮아있음을 이야기하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늘 살피시고 이끌어주심에 당신 역시 세상을 심판이 아닌 구원으로 인도하는 삶을 살고 계심을 이야기하십니다. 말씀하시는 주님의 모습은 기쁜 마음이..

사제의 공간 2021.03.17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가끔은 확신 없는 삶의 순간들에 흔들릴 때를 만납니다. 분명 옳은 길을 걷고 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알지만 그것이 가져올 결과를 알 수 없을 때, 불행한 결과를 예측하게 되는 순간이면 더더욱 우리의 믿음은 사라진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신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 온 사람. 그는 주님께서 함께 가시길 청합니다. 아이에게 손을 얹어 낫게 해 달라고 청하기 위해 길을 떠나 왔으니 그가 돌아가는 길에는 주님이 함께 하셔야 했습니다. 그래야 자신이 들은대로 그분의 능력을 청할 수도 아이를 구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사제의 공간 2021.03.15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2천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수난과 고통의 십자가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말하며 행복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우리가 기억하는 주님의 모습은 고통이며, 사순절에는 배로 늘어나는 느낌도 받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실 때 그분 주변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말하는 보편의 삶 속에 사람들이 한 사람을 찾아 나설 때 그가 고통받는 사람이라면 누가 그를 보러 나서겠습니까? 사흘을 굶어가며 이야기를 듣고 그를 만나 따라다니는 일은 그것이 누군가의 고통과 수난이라면 단순히 구경을 위해서도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고..

사제의 공간 2021.03.03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세상에는 선생님들이 참 많습니다. 세상의 지식을 가르치고 그 배움으로 평가받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가르침도 각양각색입니다. 답이 정확히 나와 있는 공식과 같은 것에서부터 답이 정해지지 않은 가치들을 생각하게 하는 윤리나 도덕에 관한 것까지 아주 많은 지식들은 그 부분에 지식을 가진 이들로부터 전해집니다. 하느님에 관한 지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 하느님의 백성인 그들도 태어나서 집에서 배우는 것을 넘어 율법과 자신들의 민족을 보호하시는 하느님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리고 가르침의 자리에 있는 이들, 곧 스승의 자리를 차지하고 의인의 자리를 차지하던 이들이 바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예수님..

사제의 공간 2021.03.02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믿음의 대상일 뿐 아니라 우리 삶의 모델이 되시는 분입니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사랑을 느끼고 기도를 드리지만 그분의 모습을 자신의 모습으로 가져오는 경우는 드뭅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분의 자비하심과 넓은 사랑으로 은총을 받는 데 집중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당신이 들려주신 말씀과 보여주신 삶의 길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고 주님처럼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가끔 우리를 놀라게도 부담스럽게도 하지만 우리가 손사래를 치고 안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희..

사제의 공간 2021.03.01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오늘도 예수님의 '그러나'로 시작하는 가르침이 이어집니다. 세상이 만든 법 그 법이 우리를 보호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언제나 그 끝에 존재하는 법 이전에 그 법의 근본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수많은 시간이 흐르며 그들이 지키는 율법은 글자로 존재하는 사람을 단죄하거나 그것이 곧 하느님의 뜻인것처럼 전해지는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법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법을 기준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맞는지 구분되지 않는 세상에 최소한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법이 곧 하느님의 뜻 전부로 여겨지는 세상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라는..

사제의 공간 2021.02.27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입니다. 베드로라는 한 인물과 그를 선택하신 주님을 생각하는 오늘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은 가장 중요한 분이시지만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저 주님의 선택과 삶이 늘 어떤 의미가 있겠거니 생각하면서도 정작 보이는 뜻마저도 놓쳐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예수님은 그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는 가치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인 이유는 주님의 모든 부분을 따르고 본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주님을 바라보면 그분의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늘 새로운 의미와 우리의 새로운 삶의 열쇠가 되곤 합니다. 오늘 주님이 사람을 보는 눈에 대해 살펴봅니다..

사제의 공간 2021.02.22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금식하셨습니까? 금육은 하고 계시는 중이신지요. 사순절을 시작하는 날 우리의 인사는 이렇게 이루어져야 할까요? 오늘로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부활을 기다리는 사순절. 40의 숫자가 이야기하는 준비의 내용은 주님의 죽음을 향해 걷는 길인 듯 우리를 숙연하게 하고 그 속의 내용은 하나 같이 우리를 조심스럽게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금육과 금식의 단어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무게감은 주님의 수난과 죽음의 의미가 더해져 무엇인가를 참아야 하고 희생해야 하는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듯 여겨집니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무에 대해 우리는 무게감과 함께 억지스런 부자연스러움을 느낍니다.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사제의 공간 2021.02.17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살게 된 시대에 우리에겐 이미 하느님이 주신 율법이 있었고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느님을 알았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그 중에도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하는 하느님과 사람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하느님과 구원의 역사, 그리고 그로인해 생겨난 민족의 역사를 지키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바리사이였습니다. 그들은 자부심이 가득했고 신앙에 있어서는 스승의 자리에 서 있는 '의인'들이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에게 표징을 요구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서 하느님을 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요구는 예수님을 일정한 방향으로 바..

사제의 공간 2021.02.15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봅니다. 세상 가장 어이 없는 죽음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어쩌면 가장 현실에 가까운 한 사람의 죽음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사람의 죽음은 그가 유명한 사람일수록 어떤 의미를 붙이는 것에 익숙합니다. 물론 세례자 요한의 죽음도 하느님의 뜻을 지키고 전하다 죽었다고 말하지만 복음 속 사건은 "목숨을 걸고"라는 표현이 어색한 죽음입니다. 그가 감옥에 갇힌 것은 바른 말을 했기 때문이지만 그것은 헤로데가 요한을 잠시 붙잡아 둔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헤로데는 결코 요한을 죽일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것은 그에게 죽음의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

사제의 공간 2021.02.05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예수님의 전 생애를 담은 복음은 한 사람의 전기라고 하기에 짧은 분량을 담고 있습니다. 주님을 전하기 위해 적힌 글이기에 그 속에는 주님의 사건들이 부분적으로 들어있고 중요한 사건들을 모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대게 그런 경우 큰 사건, 성공한 사건들을 모으기 마련인데 오늘 복음은 특별한 부분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게라사인들의 지방에 들리신 예수님은 배에 내리시고 곧바로 그 외진 곳에서 생활하던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을 만나게 되십니다. 당연히 그 영은 사람에게서 떨어지고 사람은 구원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영은 주변에 놓아기르던 돼지떼에게로 들어가 같이 바다로 뛰어듭니다. 여기까지..

사제의 공간 2021.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