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松竹/김철이 2021. 2. 27. 09:41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오늘도 예수님의 '그러나'로 시작하는 가르침이 이어집니다. 세상이 만든 법 그 법이 우리를 보호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이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언제나 그 끝에 존재하는 법 이전에 그 법의 근본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수많은 시간이 흐르며 그들이 지키는 율법은 글자로 존재하는 사람을 단죄하거나 그것이 곧 하느님의 뜻인것처럼 전해지는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법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법을 기준으로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맞는지 구분되지 않는 세상에 최소한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법이 곧 하느님의 뜻 전부로 여겨지는 세상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라는 말씀으로 생각을 멈추고 하느님의 뜻을 다시 밝혀주십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당연한 말씀 뒤에 세상은 원수는 당연히 미워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아직 유효할 만큼 사람들에게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잘못을 하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고 비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것 없이 지나갔다면 그 불의함은 언젠가 드러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그 당연한 것에 예수님은 생각을 멈추라 하십니다. 그리고 그 원수를 사랑하라는 당황스런 가르침을 주십니다. 너무 익숙하게 알려져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이지만 사실 지금도 사람들은 그 사랑은 주님만 가능한 것처럼 이야기하거나 혹은 원수가 던지는 괘변처럼 이야기되는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하셨고 이는 우리에게 주시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의 이유는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덕을 보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피조물의 원래 모습을 지녀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곧 하느님에게 사람은 선인과 악인의 판단보다 같은 기회를 누리는 당신의 사랑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곧 같은 해와 비를 주시고 그들을 끝까지 기다려 주시는 하느님을 닮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의 가르침은 세상의 가르침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근본에서 생각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곧 우리에게도 법은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그 법을 대할 때 사람의 근본까지 판단하거나 미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까지도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못난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정작 걱정스러운 것은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야 할 우리마저 이 가르침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고 주님께만 돌리는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주님의 말씀이 우리가 듣고 따라야 할 가르침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근본을 되찾는 유일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