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일반시 741

겨울 허깨비

겨울 허깨비                              松竹 김철이  지금 여기볏단이 누렇게 영글어 누웠던 흔적뿐일걸 잘 훑어보면행여 탈곡기 가출한 알곡들이 뒹굴지 모름이라고먹이 훑는 참새들을 위한 헌신으로혹한을 몸소 절절히 맞으며논바닥 한가운데기꺼이 홀로 서서 알림판이 되리라 겨울 꼭두각시시방 이곳나그네새 허덕허덕 이삭 줍던 자취뿐인걸 뒤 훑어보면간혹 벼쭉정이 속에 숨겨진 낟알들도 있음이라고무작정 먹이만 훑어대는콩새들을 위한 봉사로허허벌판 논두렁 칼바람 무릅쓰고논바닥 고지판으로 꿋꿋이 서리니

松竹일반시 2024.12.12

겨울나무 2

겨울나무 2                          松竹/김철이  호시절 어디다 쟁여두고가파른 산등성이 외로이 홀로 선메마른 가슴갈팡질팡 구르는 잎사귀 위로를 받겠지. 그댄 지금비록 앙상한 잔가지 부여안고멍하니 허공만 올려다볼 뿐이지만화려한 희망이 예비되 있질 않은가. 때로는나그네새 홀로 찾아 동무 되고때로는 잔바람 길잃은 듯슬그머니 불어와 벗 되어 놀아줄 테지 당장은 볼품없어 가련할지라도파릇한 새싹 새 옷 갈아입고싱싱한 잎사귀 고이고이 단장하여목 빼 기다리는 임들 앞에 우뚝 서리니

松竹일반시 2024.12.05

겨울 산

겨울 산                      松竹 김철이  고즈넉한 산길 따라허기진 산짐승 발걸음 후들후들 이어져도괜찮아, 괜찮아품어 달래는 아비의 큰마음 쟁인다. 야밤을 울던 소쩍새 떠난 그 자리콩새 재롱잔치 한참이고동백꽃 수선화 초연한 춤사위에산맥은 길게 줄지어 뻗는다. 언제 풀릴 귀양살이인가.기약 없는 연약 지루하기도 하련만어름 사슬 온몸에 걸고먼 데 눈길 둔 채 침묵만 지킨다. 진달래 개나리도 지고 없는데서리꽃 눈꽃만은계곡마다 빼곡히 늘어 피고골골대던 계곡물 겨울잠 길게 잔다.

松竹일반시 2024.11.14

겨울나무

겨울나무                       松竹 김철이  초겨울 문은 이미 열렸는데무슨 미련 그리 많아나뭇잎 떨어져 가는 발걸음천길만길 무겁기만 하누나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듯이잎새들 돋고 지는 사이숱한 사연 덩달아 피고 지고빈 가슴 외롭기가 그지없다. 묵은 잎에 맺은 정은새잎이 필 때까지 잊혀 가겠지만젖 물려 키워온 모정만은나이테 옹이로 절절히 남겠지. 한 점 바람만 고이 불어도고명딸 출가시킨 친정 모(母) 심정으로가지마다 근심 걱정 곰삭히며춘삼월 호시절을 목 빼 기다리겠네.

松竹일반시 2024.11.07

내 생애 이력서

내 생애 이력서                            松竹 김철이  세월아, 등 떠밀어잰걸음 재촉 말아라.너무 속히 달려 원성도 못 했는데왜 거듭거듭 내 인생 등 뒤에서날 떠밀까.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인생사라서죽자고 살자고 욕심부려 돈 불려도둘러메고 걸머지고 갈 길도 아닐 거라죄다 털고 한세상을 살았더니내 인생 이력서는 잔주름뿐이네 얼굴엔 온통 잔주름이 자리 잡고전신에 노을이 피어올라도마음엔 십팔 세 소년기라시상은 탈 쓰고 광대 패로 되살아어절씨구 춤추누나 나 얼마나 더 살아입에 긴 막대 물고 새처럼 쪼아댈지누구 하나 모를 일이지만시심을 판소리 고수로 불러일으켜천상 소리 꿈꿀 테다.

松竹일반시 2024.10.27

추억 앓이

추억 앓이                        松竹 김철이  농촌도 아니었건만춘삼월 호랑나비 춤사위 따라악동들 겨울을 벗고냇둑을 거슬러 졸졸거려 흘렀지 등골에 구슬땀 흘러도한줄기 소나기에황령산 계곡을 걸쳐 무지개 뜨니동네 꼬마들 탄성 하늘을 찔렀네 오곡백과 무르익을 즘개구쟁이 동심도 무르익어볏줄기 하나씩 뽑아 들고벼메뚜기 엮으러 논두렁 탔지 온돌방 자리끼 뼈가 생길 즘에기와집 처마 끝에 고드름 문 발이 드리우고손가락 색연필로 유리창 도화지에성에꽃 곱게도 피웠네 인간미 절로 풍기는그 시절로 되돌아갈 쥐구멍이라도 뒤지리

松竹일반시 2024.10.20

상강霜降

상강霜降                                   松竹 김철이  얼기설기 맺은 정 냉정도 하게나뭇가지마다 꽃단풍 지고비어갈 가지 끝에 서리꽃이 매달려 필 무렵뒷문 밖 동장군 무딘 칼날을 갈더라 한해 가을걷이 끝낸 논두렁엔게으른 허수아비 하품만 늘어가는데가는 시절 이별하기 아쉬운 듯길섶마다 낙엽들 억지가 대판일세 농번기 잰걸음 걷던 농심은국화주 몇 잔에 시름을 떨치는데늦여름 설거지 마친 단풍잎알록달록 생가슴만 타들어 가겠네 시절의 끝자락을 환칠하듯점점 드높아져 가는 하늘 붓도 없이하늘 아랫동네 뜨락마다천하제일 풍경화를 마냥 휘갈긴다.

松竹일반시 2024.10.17

채무

채무                   松竹 김철이  몇천 년을 살 것도 아닌데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도 면했고보릿고개 넘던 시절도 이미 넘었건만왜 그리도아프고 시렸을까. 울 아배삼베 적삼 등에구슬땀 마를 날이 없었지넷째 놈 병고 살이 대신 사시느라 울 어매모시 저고리 고름에피눈물 가실 날이 없었지자식 놈 병치레 몸소 겪으시느라 몇백 년 더 살아양친 은혜 갚고 또 갚은들한순간 신발 끈 묶긴데은혜 갚을 부모 없으니빚쟁이 된 이 몸은 대체 어쩌라고

松竹일반시 2024.10.13

감                          松竹 김철이  세상 만인들아!속 보이는 사랑 타령 장구채 내려놓고속 모를 사랑 소리 북채도 내려놓고감의 사랑법인생사 접목하여 살아감세 순교자의 삶인가한겨울 혹한을 견디어사오월 연노랑 꽃 순으로 돋아하늘만 우러러 숨어 핀댔지 악동들 주전부리 감으로청춘 팔이 하다가손돌바람 극성부릴 시월이 오면살 깎이는 고통 감수하고군문 효수당하는 순교자처럼 곶감 걸이 달리네 죽은 자 넋 노리는 저승사자 된 양연미복 까치 군침만 흘리는데붉은 영혼 다 내주고진홍빛 빈 껍질 덩그러니 빈 가지에 걸친다.

松竹일반시 2024.10.06

한로寒露 2

한로寒露 2                             松竹 김철이  한 해 가을이 점차 물러날 채비에 분주하니푸릇푸릇하던 식물들제 몫의 시절을 내려놓고갈 길 바쁜 낙엽들 참도 을씨년스럽다. 편히 쉬던 찬 이슬온 누리 두루 거니느라 종종걸음시름 많은 사람들 드높은 산을 찾아머리에 적색 꽃을 꽂으니잡귀들 물러가고 평온이 절로 깃드네. 겨울의 문턱을 넘기 전삼복을 살아내느라 심히 지친 몸과 마음을용솟음치는 미꾸리 한 움큼 건져뚝배기 제물로 삼은 추어탕으로 달래더라 곱디고운 춘삼월 즐기려고단한 날갯짓도 아랑곳없이천리만리 날아든 제비 가족들 고향을 찾고귀뚜리 노랫소리 마루 밑 쟁여 들 때혀 빼문 알곡들 소슬바람에 절로 영근단다

松竹일반시 2024.10.03

술타령

술타령                  松竹 김철이  기뻐 한잔 슬퍼 한잔외롭고 괴로워서 또 한잔권커니 잣거니 비우다 보니술잔도 비고내 청춘 곡간도 텅 비더라 술 인심 좋던 그 시절마을 어귀 평상 깔고이웃사촌 술벗 삼아 곡조도 어정 걸음가사도 갈지자걸음 입술을 타지 막차는 어서 가자 고래고래 기적을 울리는데선술집잔술집 촛불도 비웃듯 촛농을 흘리는데탁자 위에 희로애락 풀어놓고뜨덤뜨덤 몇 자락씩 첫닭이 울겠네 인생 시름 흥에 겨워낯선 주정뱅이 춤을 추어도어디선가 들은 듯한우리 노래 우리 곡조일세

松竹일반시 2024.09.29

소나무

소나무                        松竹 김철이  시절 비는 어정버정 내리는데태풍 걸음걸음마다 눈길이 모이고조급해진 텃새 울어도본체만체 꼿꼿이 허공만 탄다. 넌 보았지정 많고 인간미 넘치던 시절을솔방울 땅에 굴러도순박함이 가지에 걸려 웃었네 사계는 퇴색되어도넌 푸르던 그 자리 머물고잎사귀 한 잎 퇴색 없이박해받는 이 늘 푸르게 품어주길 숱한 비바람 널 흔들 적에푸른 초심 변하지 말고뭇 나뭇가지 시들고 메말라도너만은 늘 그 자리 녹색의 꿈을 꿔다오

松竹일반시 2024.09.22

추분秋分

추분秋分                      松竹 김철이  논밭길 사이 홀로 걷던 나그네집 나온 지 어저껜데논밭머리 오곡백과 무르익듯시절은 소복소복 잘도 익는구나. 찹쌀가루 새알 빚어동네방네 나눠 먹고농가마다 쇠스랑 걸어놓고알곡 도둑 참새떼 입 붙이더라. 무법자처럼 마냥 설쳐대던갖은 벌레 땅속에 숨고철새들 날갯짓 다급할 적에촌민들 만복 그린 연을 날리네. 황소걸음 재촉하는 농부 걸음 마냥 다급한데멍에 건 소걸음은 마냥 버거우니네 걸음 내 걸음 탓하지 말고부평초 세월 쉬엄쉬엄 따라가게나

松竹일반시 2024.09.19

시간 속의 고독

시간 속의 고독                         松竹 김철이  떠나갈 시절못내 아쉬움이 남는데물들 나뭇잎가지에 맺은 정에 검푸르다. 만나고 헤어짐은 대자연 섭리어디로 가고 또 어디로 오는 걸까오가는 열차 기적소리 드높다만이별만은 외롭더라 가로등 어김없이 밤을 밝히지만왠지 외로워이름 모를 풀벌레몇 소절 노래로 밤 허공을 달래네 초가을 달빛은밝아도 영영 을씨년스러운데간혹 비추어진 별빛은드맑던 옛 시절 그리워 고독이 물든다.

松竹일반시 2024.09.15

청국장(淸麴醬)

청국장(淸麴醬)                           松竹 김철이  천사백 년 전고려장 이름표 붙이고 태어나천사백 년을코흘리개로 살아온 개구쟁이 사시사철희멀건 콧물 빼물고방방곡곡 두루 다니며갖은 사랑 한 몸에 받더라 유년 시절눈썰매 지지다시린 손 호호 불며 들어선 안방아랫목 차지하던 얄미운 고 녀석 그날이 오늘인 양어느새 건강식품으로 개명하고현대인 전신을 파고드는 꼴일랑눈꼬리 시어 못 보겠네    #청국장淸麴醬

松竹일반시 2024.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