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일반시 747

낮달

낮달                  松竹 김철이  대낮은 중천인데지난밤 못다 바친 절개일까,화장기 없는 민얼굴로보일 듯 말 듯 행색이 가련하다. 창공을 허황히 떠도는 충절잘 보이고 싶은 심정, 간절하나꾸며본들 무엇하리하루살이 낮을 향한 풋사랑인걸 까마귀 동정하고바람 한 자락 연민을 품어도임 향한 짝사랑 떨칠 수 없으니수절 열녀 신세 면할 수 없네 칭송 자자한 밤 달을 닮고 싶었나.진종일 민낯으로 떠돌아도무심한 곁눈질뿐모름지기 참사랑은 야월(夜月)의 몫이더라

松竹일반시 2025.01.26

산                       松竹 김철이  눈꽃 피는 고향을 서성이며아무것도 바라지 않고늘 웅숭깊은 아버지 거대한 가슴팍이다품에 안기면남녀노소 응석받이가 되니 싫증이라도 낼까 봐춘삼월 나뭇가지 물 올리고물오른 대지 잡초 깔아잘난 놈 못난 놈 죄다 품어 안는다. 칠팔월 복더위에 지칠까 봐검푸른 초목 그늘 지우고건들바람 바람잡이 삼아구슬땀 부채질에 좋은 시절 흘려보내니드높은 어머니 은혜 같더라 낙관도 비관도 아니 하고침묵으로 배부른 구시월 엮어내며곱디고운 춤사위로겸허히 머리 숙이는 뭇 생명의 안식처로다.

松竹일반시 2025.01.19

소망 반 걱정 반

소망 반 걱정 반                          松竹 김철이  지난해 첫날이구동성 입 모아 만복을 빌어주었건만복을 빌어줄 적에마음 한 귀퉁이 쟁여놓았던지나라 안은 온통 아귀다툼네 그르니내 그르니 삿대질 판이었지 배신과 배척 속에신음하는 민초民草 한숨만 늘고민생고 죽음의 제를 넘듯 허덕이는데높은 자리 나리님들 뒷짐 지고양반걸음제 밥그릇 챙기기에 안달복달 새해도 밝았으니신년엔 내 미락 네 미락하지 말고네 탓도 내 탓내 탓도 내 탓으로 돌려산산이 흩어진 민심 한곳에 모아태평성대 한번 옹골차게 이루어 봄세 돈 많고 잘난 자 두 번 살고돈 없고 못난 자 한번 산다더냐저승 갈 적 후회 말고이승 살 적 하루살이 삶 살아나 보게

松竹일반시 2025.01.16

소래기

소래기                     松竹 김철이  재빠른 어머니 손놀림 따라팍팍 폭폭보리쌀 쌀뜨물품어 안고 달래고 얼레다뽀얀 쌀 물 흘려 이별을 고하더라 어느 봄날바람난 봄나물 꼬셔 들여너른 품속 쓸어안고갖은양념 찰떡궁합 중매쟁이 자청하네! 인간미 넘치던 시절두레 밥상 상머리에 온 가족 둘러앉아찬 보리밥 한 덩어리시래기 콩나물 더불어 비벼놓고너 한술 나 한술 떠먹이던 모정 같아라. 찬거리 궁하던 시절껍질도 채 벗지 않은 콩나물 콩소복이 눌러앉아 배설물 배설할 적콩나물 밑받침 역할 능히 했었지

松竹일반시 2025.01.12

신년 기도

신년 기도                                 松竹 김철이  신년엔 좀체 서두르지 않고드맑은 눈동자드맑은 영혼으로세상을 드맑게 할 물 한 종지 긷게 하소서 기원하는 초목이 되고새날을 몸짓하는 새의 날갯짓 되어늘 비상과 하강하며엇박자가 아닌정박자 노래를 읊는 악기로 살게 하소서 새해엔 절대 게으르지 않고드밝은 소망드밝은 희망으로만인을 좀 더 귀히 여길 넋으로 살게 하소서 몇 획의 글로슬픈 이 눈물을 씻어주고몇 행의 시로아픈 이 가슴을 조곤조곤 쓸어줄천생天生글 꾼으로 쟁여 들게 하소서

松竹일반시 2025.01.09

향수

향수(鄕愁)                          松竹 김철이  코흘리개 시절순수했던 그 내음 코끝에 맴도는데고달픈 세상사 무뎌진 감성은물러난 세월에 얹힌다. 동편에 해 뜰 적에하루살이 나팔꽃여린 넝쿨손으로 높다란 하늘 타던그 모습 눈앞에 아롱거린다. 옆 동네 마실 가던 날논두렁 얼룩빼기 황소가멍에 걸고 환대하듯 우렁차게 울던 울음이여태 귓전에 머문다. 무슨 사연 그리 많아드넓은 하늘가에 구슬펐던 뻐꾸기 노래가사 한 획 바뀌지 않고수십 년째 헷갈리고 애잔하다. 서편에 해 질 무렵꽃노을은 곱기만 한데두 날개에 생의 짐을 통째 실은 듯기러기 날갯짓에 삶의 무게가 무겁다.

松竹일반시 2025.01.05

겨울 허깨비

겨울 허깨비                              松竹 김철이  지금 여기볏단이 누렇게 영글어 누웠던 흔적뿐일걸 잘 훑어보면행여 탈곡기 가출한 알곡들이 뒹굴지 모름이라고먹이 훑는 참새들을 위한 헌신으로혹한을 몸소 절절히 맞으며논바닥 한가운데기꺼이 홀로 서서 알림판이 되리라 겨울 꼭두각시시방 이곳나그네새 허덕허덕 이삭 줍던 자취뿐인걸 뒤 훑어보면간혹 벼쭉정이 속에 숨겨진 낟알들도 있음이라고무작정 먹이만 훑어대는콩새들을 위한 봉사로허허벌판 논두렁 칼바람 무릅쓰고논바닥 고지판으로 꿋꿋이 서리니

松竹일반시 2024.12.12

겨울나무 2

겨울나무 2                          松竹/김철이  호시절 어디다 쟁여두고가파른 산등성이 외로이 홀로 선메마른 가슴갈팡질팡 구르는 잎사귀 위로를 받겠지. 그댄 지금비록 앙상한 잔가지 부여안고멍하니 허공만 올려다볼 뿐이지만화려한 희망이 예비되 있질 않은가. 때로는나그네새 홀로 찾아 동무 되고때로는 잔바람 길잃은 듯슬그머니 불어와 벗 되어 놀아줄 테지 당장은 볼품없어 가련할지라도파릇한 새싹 새 옷 갈아입고싱싱한 잎사귀 고이고이 단장하여목 빼 기다리는 임들 앞에 우뚝 서리니

松竹일반시 2024.12.05

겨울 산

겨울 산                      松竹 김철이  고즈넉한 산길 따라허기진 산짐승 발걸음 후들후들 이어져도괜찮아, 괜찮아품어 달래는 아비의 큰마음 쟁인다. 야밤을 울던 소쩍새 떠난 그 자리콩새 재롱잔치 한참이고동백꽃 수선화 초연한 춤사위에산맥은 길게 줄지어 뻗는다. 언제 풀릴 귀양살이인가.기약 없는 연약 지루하기도 하련만어름 사슬 온몸에 걸고먼 데 눈길 둔 채 침묵만 지킨다. 진달래 개나리도 지고 없는데서리꽃 눈꽃만은계곡마다 빼곡히 늘어 피고골골대던 계곡물 겨울잠 길게 잔다.

松竹일반시 2024.11.14

겨울나무

겨울나무                       松竹 김철이  초겨울 문은 이미 열렸는데무슨 미련 그리 많아나뭇잎 떨어져 가는 발걸음천길만길 무겁기만 하누나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듯이잎새들 돋고 지는 사이숱한 사연 덩달아 피고 지고빈 가슴 외롭기가 그지없다. 묵은 잎에 맺은 정은새잎이 필 때까지 잊혀 가겠지만젖 물려 키워온 모정만은나이테 옹이로 절절히 남겠지. 한 점 바람만 고이 불어도고명딸 출가시킨 친정 모(母) 심정으로가지마다 근심 걱정 곰삭히며춘삼월 호시절을 목 빼 기다리겠네.

松竹일반시 2024.11.07

내 생애 이력서

내 생애 이력서                            松竹 김철이  세월아, 등 떠밀어잰걸음 재촉 말아라.너무 속히 달려 원성도 못 했는데왜 거듭거듭 내 인생 등 뒤에서날 떠밀까.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인생사라서죽자고 살자고 욕심부려 돈 불려도둘러메고 걸머지고 갈 길도 아닐 거라죄다 털고 한세상을 살았더니내 인생 이력서는 잔주름뿐이네 얼굴엔 온통 잔주름이 자리 잡고전신에 노을이 피어올라도마음엔 십팔 세 소년기라시상은 탈 쓰고 광대 패로 되살아어절씨구 춤추누나 나 얼마나 더 살아입에 긴 막대 물고 새처럼 쪼아댈지누구 하나 모를 일이지만시심을 판소리 고수로 불러일으켜천상 소리 꿈꿀 테다.

松竹일반시 2024.10.27

추억 앓이

추억 앓이                        松竹 김철이  농촌도 아니었건만춘삼월 호랑나비 춤사위 따라악동들 겨울을 벗고냇둑을 거슬러 졸졸거려 흘렀지 등골에 구슬땀 흘러도한줄기 소나기에황령산 계곡을 걸쳐 무지개 뜨니동네 꼬마들 탄성 하늘을 찔렀네 오곡백과 무르익을 즘개구쟁이 동심도 무르익어볏줄기 하나씩 뽑아 들고벼메뚜기 엮으러 논두렁 탔지 온돌방 자리끼 뼈가 생길 즘에기와집 처마 끝에 고드름 문 발이 드리우고손가락 색연필로 유리창 도화지에성에꽃 곱게도 피웠네 인간미 절로 풍기는그 시절로 되돌아갈 쥐구멍이라도 뒤지리

松竹일반시 2024.10.20

상강霜降

상강霜降                                   松竹 김철이  얼기설기 맺은 정 냉정도 하게나뭇가지마다 꽃단풍 지고비어갈 가지 끝에 서리꽃이 매달려 필 무렵뒷문 밖 동장군 무딘 칼날을 갈더라 한해 가을걷이 끝낸 논두렁엔게으른 허수아비 하품만 늘어가는데가는 시절 이별하기 아쉬운 듯길섶마다 낙엽들 억지가 대판일세 농번기 잰걸음 걷던 농심은국화주 몇 잔에 시름을 떨치는데늦여름 설거지 마친 단풍잎알록달록 생가슴만 타들어 가겠네 시절의 끝자락을 환칠하듯점점 드높아져 가는 하늘 붓도 없이하늘 아랫동네 뜨락마다천하제일 풍경화를 마냥 휘갈긴다.

松竹일반시 2024.10.17

채무

채무                   松竹 김철이  몇천 년을 살 것도 아닌데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도 면했고보릿고개 넘던 시절도 이미 넘었건만왜 그리도아프고 시렸을까. 울 아배삼베 적삼 등에구슬땀 마를 날이 없었지넷째 놈 병고 살이 대신 사시느라 울 어매모시 저고리 고름에피눈물 가실 날이 없었지자식 놈 병치레 몸소 겪으시느라 몇백 년 더 살아양친 은혜 갚고 또 갚은들한순간 신발 끈 묶긴데은혜 갚을 부모 없으니빚쟁이 된 이 몸은 대체 어쩌라고

松竹일반시 2024.10.13

감                          松竹 김철이  세상 만인들아!속 보이는 사랑 타령 장구채 내려놓고속 모를 사랑 소리 북채도 내려놓고감의 사랑법인생사 접목하여 살아감세 순교자의 삶인가한겨울 혹한을 견디어사오월 연노랑 꽃 순으로 돋아하늘만 우러러 숨어 핀댔지 악동들 주전부리 감으로청춘 팔이 하다가손돌바람 극성부릴 시월이 오면살 깎이는 고통 감수하고군문 효수당하는 순교자처럼 곶감 걸이 달리네 죽은 자 넋 노리는 저승사자 된 양연미복 까치 군침만 흘리는데붉은 영혼 다 내주고진홍빛 빈 껍질 덩그러니 빈 가지에 걸친다.

松竹일반시 2024.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