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일반시 700

일상

일상 松竹 김철이 대자연 펼쳐놓은 삶터 혼(魂)도 풀어놓고 육(肉)도 풀어놓고 인생 소풍 즐겨보리 때로는 버거워 슬퍼하고 때로는 즐거워 콧노래 흥얼대겠지만 생명 주신 내 임께 감사하고 넋풀이 제대로 해봐야지 창가 햇살도 벗이 되고 창틈 바람도 친구 되니 세상 으뜸가는 갑부도 눈 아래 걸인일세 자나 깨나 함께할 인생길 길동무 곁에 있으니 밤 가지 부엉이도 낮 가지 참새도 부러워 울겠네

松竹일반시 2024.02.18

우수雨水

우수雨水 松竹 김철이 억압 풀린 대동강에 잡고기 오르고 기러기 북녘으로 떠날 적에 수줍은 봄기운이 아지랑이 앞장세워 빈 들녘에 노닌다. 수달은 잡어 제물 삼아 앞발 싹싹 빌어 수신 전에 제를 올리고 농심은 논밭 태우기로 한 해 대풍을 기원하더라 갈 길 잃은 꽃샘추위 흐지부지 끝자락을 절로 훔치고 겨우내 벌벌 떨던 초목은 잎눈 뜨고 시절 문밖 새봄맞이 하려네 눈이 녹아 비로 내리고 얼음이 녹아 물로 흐르듯 얽히고설킨 세상 모든 앙금이 용서와 화해의 은혜로 죄다 풀렸으면 좋으리

松竹일반시 2024.02.15

나눔

나눔 松竹 김철이 드넓은 세상사 빈주먹 움켜쥐고 왔다 한들 콩 한 쪽 나누기가 그리도 쉽더냐 어떤 자는 제 부모 평생 모은 재산도 게 눈 감추듯 하는데 어떤 자는 노숙자 말 한마디에 입었던 제 옷마저 선뜻 벗어주더라 누구의 육신에 붙은 살점은 냉기 온기 제대로 느끼는 살점이고 누구는 냉기 온기조차 못 느낄 쇠가죽을 뒤집어쓴 줄 아는가. 먼 훗날 이 세상 떠날 적 발걸음 무거워 떠나기 힘겨울 적에 밥 한술 나눈 선행 천국 열쇠 되는 것을

松竹일반시 2024.02.11

입춘立春

입춘立春 松竹 김철이 시냇가 물길 따라 노래가 흐른다. 쫄쫄 졸졸 곡조도 가사도 분명친 않지만 분명 희망의 노래일 거야 엄동설한 칼바람에 몸서리친 듯 차라리 얼음장 속 깊이 몸뚱이 숨긴 버들치들도 덩달아 흥얼흥얼 콧노래 불렀지 새봄이 저만치서 머뭇머뭇 서성일 적에 곧 물러날 꽃샘추위 갈팡질팡 갈지자걸음 을씨년스러운데 입춘대길 한해 길운을 빌더라 삼다도 수심당 입춘굿 굿판을 펼쳐갈 적에 붉은발도요 앞선 춤사위가 뭍으로, 뭍으로 화신을 업어 나른다.

松竹일반시 2024.02.05

칠월이 오면

칠월이 오면 松竹 김철이 먼 곳 날아들 갈매기 옛 삶 벗같이 홀연히 찾아올 칠월이 오면 물러앉은 추억을 만나는 것으로 첫 장을 넘겨 보리라 화톳불 이글대는 태음이 옛 여우비처럼 잠시 쏟아질 칠월이 오면 엉킨 생의 실타래 푸는 것으로 첫 매듭 엮어 가리리 생은 즐기는 것이기에 기왕에 예 왔으니 쓰디쓴 소주 한 잔에 감격하고 짠지 한 조각에도 풍류 지으며 칠월의 흥에 취해보련다

松竹일반시 2024.02.04

접시꽃 당신은

접시꽃 당신은 松竹 김철이 콩새는 떠나보낼 임 아쉬워 시절 말미 우는데 떠나는 임을 배웅하려는가 다섯 폭 소복으로 한해살이 상을 치르셨지 만개할 계절을 몸소 표하시려오 이승과 저승의 진리를 깨우치듯 한 송이 자주색 꽃으로 피시네 하늘과 땅이 녹아내리듯 아직 설익은 더위에 숨통이 막혀 한 자락 헛바람이 아쉽고 한 줄기 도둑 비가 그리울 참에 다섯 잎 바람개비로 돌더라 무녀의 넋으로 피었는가, 살인 더위 떠난 저승객이라도 달래시려는지 진분홍 무복 칠월에 춤춘다.

松竹일반시 2024.01.28

초목(草木)

초목(草木) 松竹 김철이 드높은 하늘을 오르고파 위로만 솟는가, 사시사철 푸르고 고운 잎과 꽃을 피워도 줄기는 늘 허황한데 드넓은 벌판을 푸르러지고파 옆으로만 번지나, 계절 따라 시들고 피우는 짙은 환경 물들여 살련다. 바람 불고 비 올 적에 바람 한 점 막아줄 버팀목 없어도 한줄기 빗물 가려줄 우산이 없어도 시시때때로 피고 지는 것을 초목은 내일을 꿈꾸지 못한다. 모진 가뭄엔 타 죽고 지린 홍수 땐 뿌리째 뽑혀도 내일을 만들어 핀다.

松竹일반시 2024.01.21

대한大寒

대한大寒 松竹 김철이 거듭거듭 곱해지는 한추위 허공마저 채우려나 눈발이 팔랑팔랑 길 잃은 고엽조차 미끄러질 빙판길 서산은 서둘러 해를 삼키고 겨울 달은 홀로 추운데 성에꽃 동창 너머로 필 듯 말 듯 굴뚝새 간밤 건울음이 싹터 야밤 소야곡으로 흐른다. 눈바람 심술궂게 전깃줄 늘려 집적대면 눈꽃 닮은 수선화 고결한 사랑 추운 계곡에 피고 맨발로 달리는 고속열차 줄행랑치네 밤공기 두려운 귀뚜라미 따뜻한 아랫목 파고들어 단잠 자는 악동들 울며불며 깨우더니 밤새우는 버들솔새 벗하더라

松竹일반시 2024.01.18

추억 앓이

추억 앓이 松竹 김철이 인생사 모두가 착각이라지만 몇십 년 전 입맛의 담장을 손 안 대고 넘으려니 제맛이 날 턱이 있나. 어머니 손을 떠나, 동짓달 칼바람 맞으며 하룻밤 살강 위에 홀로 지샌 탓에 살얼음 뼈가 자란 그 맛을 보려 했는데 아내의 손을 떠난 동지죽 베란다 칼바람에 하룻밤을 지새우고도 살얼음 뼈가 자라지 않았으니 분명 덜 자란 애동지 로고 남의 아내 손을 떡 주무르듯 주물렀으면 콩알만 한 염치라도 있어야지 눈곱만한 은혜도 모르니 그 이름 자명한 아기 동지여라

松竹일반시 2024.01.14

관계

관계 松竹 김철이 세상 모든 인연 하늘이 맺어준다 했는데 때로는 필연이 되고 때로는 우연이 되는 건 왜일까. 사랑이란 두 글자로 만나 평생 해로하자 했건만 원수란 두 글자로 등 돌리는 건 정녕 필연일까 우연일까. 간혹 우정이란 두 글자로 간혹 애정이란 두 글자로 맺은 인연 좋아 죽고 못 살았지 등에 칼 꽂을 악연 될지도 모르면서 백 년 인생 사는 동안 한길 걷다 스친 인연 관계란 두 글자 위에 오롯이 올려놓고 평생 벗 삼아 인생 외길 고이 걸어가야지

松竹일반시 2024.01.07

소한小寒

소한小寒 松竹 김철이 옷 벗은 벌판 더더욱 시리게 할 심사인지 인연도 맺지 않고 사연도 짓지 않았건만 소복한 처녀 서릿발 한을 지어 내린다. 콩새도 발이 시려 콩콩거리고 재두루미 목 빼 춘삼월 호시절을 기다리는데 얼음장 몸 사려 살을 찌운다. 새봄이 머지않은 듯 기러기 북으로 돌려보내고 까치둥지 지으라니 덩달아 꿩이 울며불며 얼어붙은 계곡물 물꼬 열 속셈을 품는다. 늘 푸른 소나무도 사시나무 떨 듯하고 겨울 장미 속앓이는 더욱 붉은데 한추위 덧대려 거들먹댄다.

松竹일반시 2024.01.04

효자 도시복 생가(효 공원)

효자 도시복 생가(효 공원) 松竹 김철이 숯 팔고 나무 팔아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홀어머니 지극정성 모시니 감정 없는 날짐승 들짐승도 시중들더라 드높은 효심에 말 못 하는 날짐승도 감복하여 도 효자 효심을 대신하여 나무꾼 지친 걸음 앞서 효성을 바치네 마음조차 얼어붙는 동지섣달 강추위에 병드신 어머니 홍시 찾으시니 범의 마음을 열게 하고 타인의 마음 열어 동반 효심을 바쳤지 효심이 실종된 시대 하늘이 내린 효심을 찾아 효 공원 문전성시 이루고 사립문 문전 사시사철 효 꽃불이 일겠네

松竹일반시 2023.12.31

석송령

석송령 松竹 김철이 만인의 우산으로 해치려는 이 해를 입는 이 차별하지 않는 고목의 그 그늘 은혜로운 어버이 마음이어라 드높은 가슴 펼치시고 동서남북 줄기 두루 펼치시고 부귀와 장수의 당신(堂神)이 되시니 천향리 자손들 정월 대보름 동신제로 보답하네 일제 침략의 무리 백의민족 한반도 정기 말살하려 들 적에 동신목 되어 일제의 꿍꿍이수작 물리쳐 주시니 석평마을 백성들 칭송이 끊일 날 없구나 크신 술배 음주 가무를 즐기시듯 정월 대보름 마신 열 말 막걸리 흥에 겨워 사계절 내내 너울너울 푸른 솔가지의 춤사위와 평생 더불어 살리니

松竹일반시 2023.12.24

선몽대

선몽대 松竹 김철이 그 절경 아름다워 하늘의 신선들 사바세계 내려앉아 드맑은 숲 시제 삼아 주거니 받거니 시구를 읊어 내린다. 첫사랑 같은 참사랑을 나누고 싶어 내성천은 말한다. 짝사랑일지라도 굵고 짧은 애정보다 가늘지만 긴 연정을 택하겠노라. 하루가 천년이 되듯 천년을 하루 같이 늘 푸른 노송으로 묵묵히 지켜온 절경 기암절벽 굽이치는 내성천 물이 되리니 세상 생명 죄다 품으려는 듯 어머니 젖가슴인 양 온유하게 동서로 흐르는 물돌이 허기진 나그네새도 품어 안는다

松竹일반시 2023.12.17

동지冬至

동지冬至 松竹 김철이 금일은 동짓날 일 년 삼백육십오일 중 밤이 가장 긴 날 차가운 냉기에 얼어붙은 나날이 생기를 되찾아 봄의 싹이 돋는댔지 아궁이 장작불 성화는 목 빼 심청이 기다리던 되놈 같은데 몸단장하던 새알심 생떼를 부리듯 쟁반 위에 마구 구른다. 눈 뜨게 할 아비도 없는데 공양미 몇 석의 제물인가, 쌀가루 버무려 단장하고 펄펄 끓는 가마솥 팥물 속에 몸을 던지니 하현달도 서럽다. 팥죽 쑤어 집 안팎 뿌려주니 갖은 악귀 쫓겨나고 팥물로 물 든 스무이튿날 밤은 밤새들 울음으로 깊어만 간다.

松竹일반시 2023.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