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일반시 700

회룡포

회룡포 松竹 김철이 천년 수행 감내하고 승천한 용이 오묘한 물굽이 풍광을 잊지 못해 사바세계 일천을 되사려 흐른다. 비룡산 너머 장안사 종소리 숱한 고뇌 부를 적에 철철이 고운 옷 갈아입고 매혹적인 자태로 유혹하더라 물돌이 따라 돌고 도는 세상인고 허물 벗는 뱀처럼 훨훨 벗어던진 채 사계절 파고들어 쉬어 가리 부용대 아래 하회마을 덩더꿍 덩덩 세마치장단이 흐르니 숨기고 싶은 인생사 탈속에 감춰놓고 광대춤 신명 나게 어절씨구 놀아봄세

松竹일반시 2023.12.10

대설大雪

대설大雪 松竹 김철이 진종일 울상이던 제빛 하늘은 온 천하 은혜를 베풀 듯이 굵직한 눈송이를 훑어 내린다. 숲길은 가로막히고 숲속에 숨어 놀던 콩새 먹이 한 입 구하려다 잰걸음 하염없이 콩콩거리네 산길은 이미 끊겼는데 제 본분 잊지 않고 쏙독새 쏙 독독독~ 쏙 독독독~ 기나긴 밤 속절없이 울더라 눈산은 높아만 가는데 눈발은 잦아질 길 없으니 솔부엉이 쉰 울음으로 끊어진 산길 뜨덤뜨덤 잇누나

松竹일반시 2023.12.04

시간과 공간

시간과 공간 松竹 김철이 아침 동산에 해 뜨니 잠자리 뒤척이는 게으름뱅이 똥구멍 찔러 문전 밖으로 쫓아내더군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 했는데 노예 생활 찌든 두 입술 매 순간 입씨름만 붙이네 오지랖이 드넓어 세상 뭇 인생살이 무언으로 간섭하고 참견하다, 탈 생기면 침묵만 지킨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천지를 보살피느라 허리가 휘는지 가끔은 고장 난 시계로 쉬더라

松竹일반시 2023.12.03

다짐

다짐 松竹 김철이 바람 불고 소나기 계절을 때려 내려도 다시는 널 떠나보내지 않으리 이 축복의 달을 八月 달려들 모기떼 극성이 싫고 十月 쓸쓸히 돌아설 그 표정이 싫어 九月 그댈 내 안의 임으로 섬기려 하네 맺지 못할 정이라도 내 마음 변치 않으면 나 그대 안에 영영 머물고 그대 내 안에 영영 머물 것을 모질고 매몰찬 세월 날 속여도 연년이 찾아줄 그대 있으니 밤하늘 초승달로 사모하리

松竹일반시 2023.11.26

九月 너는

九月 너는 松竹 김철이 네가 지구촌 북쪽 꼭짓점에 잠시 머무는 동안 포도는 포도 나뭇가지 매달려 익고 알밤은 알밤 나뭇가지 매달려 익던 九月 너는 과일의 여왕 이름표 걸어놓고 내 냉가슴 계절병으로 영글다, 네가 지구촌 북쪽 꼭짓점 위로 천천히 올라오는 사이 포도는 포도나무 가지를 쓸쓸히 떠나야 하고 九月 너는 맺은 정 매몰차게 뿌리치고 내 가슴앓이 못 본 채 떠나려 하네 목을 매도 소용없고 네 걸음마다 두 팔 펼쳐 막아서도 잰걸음 멈출 길 없더라

松竹일반시 2023.11.19

소설小雪

소설小雪 松竹 김철이 제빛 하늘 못내 부담스러워 엉거주춤 길 잃은 고엽 을씨년스런 길섶 갈팡질팡하더라 햇살은 눈 부셔도 갠 하늘 무지개 뜨지 않고 눈바람 한 해 눈 이야기 미리 쟁이느라 소복단장 고이 하누나 이리저리 빚은 새하얀 꿈들이 더 얼마나 강물로 뛰어들어야, 다시금 하늘과 땅 사이 무지개 놓일까. 어느새 산기슭 산등성이마다 눈발 희끗거리는데 찬바람은 강물 속으로 설익은 눈송이를 거듭해 수장시킨다.

松竹일반시 2023.11.16

마음

마음 松竹 김철이 보리밥 한 사발 퍼먹고 썩은 방귀 뀌더라도 썩은 세상 닮지 말자 꽁꽁 묶어보지만 눈꼬리 바보상자 속 끌려든다. 세상 수레바퀴 돌고 돌아 악인이 호인 되고 호인이 악인 되기란 시간문제 누가 악인이고 누가 호인인지 통 알 수가 없네 낭비하지 말자 맹세 크지만 누웠을 때 다르고 앉았을 때 다르니 요놈 심사 도무지 모르겠네 세상이 열두 번 바뀐다 한들 본새도 색깔도 변함이 없는데 때로는 선의를 품고 때로는 악의를 품어야 하니 당최 그 정체 분별이 어렵더라

松竹일반시 2023.11.12

내 이름 석 자

내 이름 석 자 松竹 김철이 권세도 명예도 지니지 못했으나 대통령 열 부럽지 않은 동갑내기 내 친구 일심동체 울고 웃은 세월이 그 얼마더냐 생애 마지막 날 손 묶고 발 묶여 함께 묻힐 죽마고우 내 동무 언 칠십 년 세월 슬퍼도 함께 울고 기뻐도 함께 웃었건만 내 머리 서리 앉아 백발인데 넌 어찌하여 늙지도 않느냐 고희를 살던 사이 다가설 시련도 돌아설 애환도 맨발로 오갈 적에 어깨동무 사발밥 먹고 잠잤건만 내 얼굴 주름 골이 파이는데 넌 어이 코흘리개 그 표정 그대론가

松竹일반시 2023.11.05

입동立冬

입동立冬 松竹 김철이 칡부엉이 울음으로 다리를 놓고 지루한 밤 못다 나눈 뒷이야기가 쌓여가는 군불 대운 아랫목, 홀로 노는 콩새 콩콩거리는데 뒤꼍 솔숲에 이는 실바람에도 별빛 번지는 소리 아랫목 넘보던 귀뚜라미 솔깃하네 뻐꾸기 둥지 속엔 건들바람만 들락날락하고 시절의 꽃 무서리 진눈깨비 동무 삼아 서성인다. 초이레 상현달 아래 뒤진 단풍잎 바스락! 망가지는 외마디 비명으로 한 해 겨울의 문을 연다.

松竹일반시 2023.11.02

수라화

수라화 松竹 김철이 풍요로운 계절 허수아비 손 놓고 쉴 즈음에 논두렁 모태 삼아 변신을 꿈꾸는 밀 씨 보장되지 않은 미래를 향해 걷는 어눌한 발걸음이 가련다 한겨울 혹한을 피해 땅속에 숨어 더 나은 생을 피우기 위해 숨죽여 기회를 엿보다, 계절의 여왕 오월 노란 꽃으로 피었지 수천수백 송이 밀꽃이 모여 숱한 손길의 드높은 은혜 갚으려고 살신성인 정신으로 뼈도 살도 가루가 되어 널빤지에 올라 홍두깨 회유를 받아들여 갖은양념 벗이 되었네 무더위에 지친 인생들 한 끼니 밥상머리 행복을 위해 몇 번을 죽고 살아 한여름 되 피는 수라화

松竹일반시 2023.10.29

그대가 꽃이라서

그대가 꽃이라서 松竹 김철이 반평생 홀로 터덜터덜 걷던 인생길 우연인지 필연인지 꽃 한 송이 만났네 향기로운 장미도 우아한 목련은 아니었지만 숨어 피는 야생화 값없는 향을 품었었지 황폐한 나의 삶 터전 삼아 나팔꽃 희망을 감아올렸고 달맞이꽃 미래의 종을 받쳐 울렸지 가슴앓이 드높아도 애써 낮추며 하나 남은 소망 들어주시길 청컨대 괴로워도 제비꽃처럼 멍들지 말고 아파도 봉선화처럼 피 흘리지 마시길 밑거름 한 줌 뿌려줄 순 없지만 사시사철 참사랑 웃거름 주리니 영영 시들지 말고 사계절 만개하소서

松竹일반시 2023.10.22

소나기

소나기 松竹 김철이 드높은 하늘에 생떼를 쓰듯 더럭더럭 소리 질러 운다, 금세 그칠 울음이면서 노령견 곤한 낮잠을 깬다 황천 갈 날 멀었다고 하늘땅 번갈아 나무라듯 게도 아니면서 게거품 주둥이 빼물고 위아래 버럭버럭 핀 꽃은 마구 때려 떨구고 땅속에 숨은 새싹 살살 달래 돋우니 그 심사 변덕이 죽 끓듯 하누나 존재 이유야 어디 있든 새 생명이 살고 마른 땅 생기를 찾으니 아래로만 내리는 그 은덕 그 사랑이 드높더라

松竹일반시 2023.10.15

가을걷이

가을걷이 松竹 김철이 소달구지 덜컹덜컹 황소걸음 비틀비틀 다랑논 가는 걸음 못내 불안한데 뱃구레만은 저절로 찬다. 허기진 참새떼 호시탐탐 잘 여문 벼알만 노리는데 허수아비 버럭 대고 배부른 알곡들 논이랑에 늘어지게 쉬더라 농심의 낫질은 조급한데 밀낫의 행동거지 무디기만 하고 높다란 하늘 본체만체 산이랑 투구꽃 푸르르 간다. 귀갓길 소걸음 천근만근인데 달구지 드러누운 볏단은 희희낙락 속 모르는 풀잠자리 갈바람 동무 삼아 풍년가를 흥얼흥얼

松竹일반시 2023.10.12

담쟁이

담쟁이 松竹 김철이 동그랗게 말아 올린 꿈 푸르른 마음속으로 접을래 빨간 흙담 속으로 거듭거듭 되감아 넣을래 다져 쟁인 꿈들이 산지사방 흩어져 내려도 팔월의 따사로운 햇살이 있기에 말고 또 쟁이면 되니까 넝쿨손 부르트고 잎사귀 메말라도 내일을 부여받지 못한 현실 속에 오늘을 말아 올리라 화초라 불러도 잡초라 불러도 중추월(仲秋月) 따뜻함이 있기에 서두르지 않고 꿋꿋이 나가리

松竹일반시 2023.10.08

한로(寒露)

한로(寒露) 松竹 김철이 칠 년을 묵혀 토해내는 매미의 통곡은 늦여름 밤을 여태 들썩이는데 눈물은 풀잎이 흘린다. 밤사이 뭔 일? 열대야 길 잃고 헤매더니 그새 이별인가, 잎새마다 밤이슬 촉촉하다. 징검돌 외발 딛고 선 백로 한 마리 무심히 흘러갈 물돌이 내려다보며 물방개 걱정 태산이다. 댓돌 밑 귀뚜라미 호시탐탐 이날 오기만 기다렸건만 찬 이슬 절절하니 목쉰 울음 쓸쓸하다.

松竹일반시 2023.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