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시집 78

철도관사/씨앗과 다이어리 8집 중에서(화숲)

철도관사 松竹 김철이 육십 년 전 생애 추억이 서려 있는 곳,철조망 담장 밖개나리 노란 미소가 길섶에 줄을 잇고적산가옥 앞마당 한쪽에황백색 감꽃이 똬리를 튼다네 빨갛게 영근앵두 몇 알의 유혹이창 안 동심을 불러내고고사리손 뻗어 한 주먹 움켜쥐니손 안 가득 초여름이 뛰어놀더라 창문 아래 봉선화맨드라미 시절의 어깨동무하고꼬마 성 춘향 된 듯누이동생 마당 가운데 그네를 타는데꼬마 이몽룡은 어디쯤 거닐까? 청포도 익어갈 무렵,넝쿨 밑에 평상 깔고 누우니금세 눈앞에 풍요로운 가을이 펼쳐지고동심 속에 뛰어든문학 작가의 꿈이 마냥 피어올랐지 황령산 눈, 녹듯 사라진 옛 시절돌아올 기약은 없으나글 속으로 뛰어든 옛 추억은시대를 뛰어넘어뭇 사람 정서의 토양으로 살겠네

동인♡시집 2020.04.08

운문사 엘레지/씨앗과 다이어리 8집 중에서(화숲)

운문사 엘레지 松竹 김철이 인적 드문 운문사 가을은 화려한데 경내 떠도는 여승의 외로운 한숨 소리 속세의 그리운 임 잊을 길이 없어서 법당 촛불 밝혀 홀로 흐느낄 적에산새도 들새도 슬피 따라, 울었지 감정 없는 운문사 쇠북 울음에비구니 더욱 서럽다. 산길 따라 몇 백 리숲길 거쳐 몇 천 리 운문사 밤은 깊은데예불하는 비구니 애처로운 그림자속세에 두고 온 임 그림자 씻을 길 없어속 넓은 법당가물거리는 촛불 켜고 슬피 울적에속 좁은 운문사 쇠북도 애달다. 야속한 경내 냇물도 마른 지 오래매몰찬 가슴 속, 임 향한 내 사랑은 식을 줄 몰라도찾지 않을 그 사람을 기다린들 무엇 하리애태운들 무엇 하리밝지 않은 운문사 야밤은 더욱 깊어만 가는데

동인♡시집 2020.04.01

무명(無名)/씨앗과 다이어리 8집 중에서(화숲)

무명(無名) 松竹 김철이 한 시절 푸르던 양귀비 꽃잎은 가는 시절 부여잡고 울지만화려하지 못한 외모 때문에끝이 없는 세상 시련 가슴에 품었던솔잎은 사계(四季)를 웃더라 낙엽에 불 질러 아픈 상처 태우려 하니상처는 더더욱 아프다 피를 토하고돌아본 황령산은 못 본 척한마디 대답이 없었네 살다 살다 서러워 흘린 눈물,한 광주리 수북이 담아이순(耳順)의 가슴을 흐르는 강물에 띄워 보내려니모진 가뭄에 물도 마르고철새도 떠난 지 오래일세 무명이란 두 글자 자유로워반생애 너를 벗하며 참 힘겨운 시절 이겨낸 건 다 네 덕이니남은 반생애너를 위한 시 한 편 걸쭉하게 읊어 보리라

동인♡시집 2020.03.24

된장찌개/씨앗과 다이어리 8집 중에서(화숲)

된장찌개 松竹 김철이 오랜 민족의 역사를 풀어나가듯이 된장 한 덩어리 풀어 물 한 바가지 정성을 담고 보글보글 뚝배기 읊어가는 옛 추억을 듣는다. 몇 백 년 지기 죽마고우 고추장 손목 잡고 달아오르는 뚝배기 물속에 한 때 온천욕 즐기려니 눈치 없는 마른 멸치 몇 마리 물에 떠서 비명을 지른다. 한 민족 아낙들 해 묵은 한을 풀어내듯 한 술 퍼다 양은 냄비, 끓을 품에 안기니 시래기 살풀이 시간이 흐른다. 교도소 출소 범도 아닌데 두부 몇 동가리 감정 없는 입에다 넣어주니 덜 풀린 콩 조각 침샘을 타고 목구멍 헤엄을 친다.

동인♡시집 2020.03.12

꿈결/씨앗과 다이어리 8집 중에서(화숲)

꿈결 松竹 김철이 온 공일 새벽 댓바람 낚싯대 다래끼 양어깨 둘러메고 아버지 낚시를, 가신다. 부스스 눈 비비는 둘째 아들 머리 한 번 쓰다듬고 바늘구멍 황소바람 빠져나가듯 안방 문턱을 넘어서신다. 방문 틈 사이 몰래 숨어드는 동지섣달 찬바람에 자리끼 살얼음 얼고 아버지 잽싼 걸음 어느 사이 서릿발 성에 기둥을 돌아가신다. 월척의 이른 꿈 앞서 이루었는지 이루지 못했는지 알 순 없지만, 선친의 낚싯대 육십 년을 꿈결 해빙을 뚫어 세월의 무게에 눌러 드리워진 채 미끼 없는 낚싯줄 여태 입질을 기다린다.

동인♡시집 2020.03.07

빙점(氷點)/씨앗과 다이어리 8집 중에서(화숲)

빙점(氷點) 松竹 김철이 인생살이 다 그런 거지 뭐, 말 몇 마디로 치부해버리면 마음 상하지 않을 것을… 정녕 버리지 못한 아쉬움이 목을 조이니 통 숨을 쉴 수가 없다. 마냥 개똥밭에 뒹굴어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지만, 여우 머리로 살 것인지 호랑이 꼬리로 살 것인지 결정권조차 없을 생이라면 난, 차라리 그림자 흔적조차 없을 빙점으로 돌아가 나물 먹고 물 마시는 삶을 찾으리

동인♡시집 2020.02.19

한가위/우리가 비 그대는 時 6집 중에서(화숲)

한가위 松竹 김철이 사연 많은 청솔가지 푸르름 끝에오랜 기다림에 지친 초승달모시조개처럼 빚어 매달아 놓고 열사흘부스럼 앓듯고롱고롱먹물 빛 야밤을 홀로 앓던못난 그리움을 열나흘 밤 속설 탓에짧은 밤 길게 새던철부지 걱정 사발에 담아 밀쳐두고 못다 푼 열한 달의 한풀이한 자락 한 자락또랑또랑 쓸어내려엽월(葉月)의 등잔불 밝히는 열닷새 보름달

동인♡시집 2019.10.11

고목/우리가 비 그대는 時 6집 중에서(화숲)

고목 松竹 김철이 고목은 결코 시들지 않는다다만 꽃을 피우지 못할 뿐이지 아직 눈 들뜬 들녘실바람 조심스레 불어와가루비 곱게 뿌려놓으니물 덜 오른 나뭇가지 가지마다 싹트게 하고눈부시도록 화려한 꽃 피워도건넌방 할미의 서글픈 심정이다 오뉴월 문틈으로 문바람 몰래 불어와초록 물 들어갈 너른 벌판꿀비를 달게 뿌려놓고 달아나니오곡백과 어미의 젖 물린 갓난쟁이처럼토실토실 살쪄가도사랑방 할비의 근엄한 눈길이다 언제나 그랬듯이생사를 지켜볼 토함산 그늘처럼

동인♡시집 2019.10.03

가을 풍광/우리가 비 그대는 時 6집 중에서(화숲)

가을 풍광 松竹 김철이 높다란 하늘 아래 전쟁이 터진 듯이시절 향한 선전포고로 한순간 공습경보도 없이포격 지점을 찾았는지 고추잠자리 편대의 저공비행이 한참이고 겁에 질린 실베짱이죄 없는 엉덩이만 하늘로 치솟더라 비 내리고 햇살 내려준 은혜가 어딘데그 은공도 잊은 채 코스모스 일곱 빛깔 삿대질은 하늘 똥구멍을 찌르고 비웃는 듯들국화 옆으로 웃는 웃음에게으른 귀뚜라미 한 쌍은 아랑곳없이음계도 음률도 없는 계절 교향곡 이중주를대자연 오선지에 그려 넣기에 여념이 없다. 배부른 계절, 느긋해진 황소의 울음은 이삭줍기하듯이 풍년 든 논두렁에 끝없이 늘어지고어디선가 호젓이 들려 드는 향수에 젖어 들 때가을걷이 치른 들녘에 떡비가 내려배고파 서럽던 시절, 깡촌의 악동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던 배꼽시계 달래려고몇 알 ..

동인♡시집 2019.09.28

바다처럼/우리가 비 그대는 時 6집 중에서(화숲)

바다처럼 松竹 김철이 시끌벅적 하루가 시끄럽다.하늘과 바다가 멀리 맞닿는 곳에예상하지 못할 하루의 약속이 조곤조곤 맺혀가고갈매기 토해 내는 울음이 갈 길 바쁜 통통선 물길을 잠시 멈추게 하듯 겹겹이 돋아나 봄을 피우는 개나리 영혼처럼 따뜻한 바다가 되려네 가슴에 묻은 연정이 너무나 큰데사사로운 삶의 무게가 화산맥 줄기로 영혼을 억누르니마음 한자락 전할 길 없고미투리 닳도록 다가서도 멀어지는 기다림에 가슴 에이도록 그리워질 때 마음대로 드나들 썰물과 밀물에 뭇 사연 담아주는 바다를 닮겠네 고독이 파도를 타고인생살이 희로애락이 해녀들 휘파람을 타니왕소금 에인 살을 파고들 듯떠돌이 외로움 허황한 가슴을 구석구석 파고들 때도끝내 외면하지 않고너른 가슴 죄다 열어 뭇 생명 젖물려 품어 아는바다로 살겠네

동인♡시집 2019.09.25

가을 로맨스/우리가 비 그대는 時 6집 중에서(화숲)

가을 로맨스 松竹 김철이 어느 계절 어느 벌판에서 놀던 놈팽이 바람일까한 줄기 건들바람이 건들건들 불어와푸르던 잎새 마음을 흔드니 어느 사이계절 안방에 앉은 단풍잎 붉으레 물이 든다 시절은 세월 열차에 올라무형의 레일을 타고 앞만 보며 달리는데어느 임의 품에 쉬던 가루 바람잘게 부서져 내릴 때이성을 밝히는 섹바람 이리저리 불다가물오른 나뭇잎에 여튼 입맞춤하니은행잎 노랗게 반색을 한다 한 시절 타작 뒷마당배부른 시절은 동면할 이부자리를 까는데어수선한 길거리 생떼를 쓰듯 낙엽은 뒹굴고어느 놀이판에 불던 바람인지호색꾼 강쇠바람 살포시 불어와먹구름이랑 끝에 고이 자던 여우비 흔들어 깨우니여우비 맑은 가을날에 잠시 내려더 짧은 가을을 더 화려하게 꾸린다

동인♡시집 2019.09.23

가을의 심로/우리가 비 그대는 時 6집 중에서(화숲)

가을의 심로 松竹 김철이 봄이 흐르던 시절다산왕 가슴이 되어가지마다 잎새와의 모자간 정을 쌓으며조곤조곤 희로애락 영글더니어느새가지엔 이별이 치렁치렁 달린다. 아쉽다.아직 못다 한 모자간 이야기가허황한 길섶을 서성이는데시절은슬하에 시집보낼 딸을 둔 친정어머니인 양내뱉을 표현이 없구나 낙엽 지는 거리를 걷노라니비어가는 나뭇가지 애절한 속삭임이 귓가에 맴도는데물보다 급히 흐르는 세월 탓에못다 나눈 사연이 남은 것 같아명년 새봄을 미리 앞당겨 선물하고 싶어라

동인♡시집 2019.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