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일반시 703

복날

복날 松竹 김철이 열대야 찜통더위 상대 삼아 밤새 내내 엎치락뒤치락 승부 없는 씨름을 하고 게슴츠레 앉은 밥상머리 속살 훤히 드러낸 육계 유혹을 하네 잘 익었나, 설익었나 두들기는 손놀림이 무색하게 보름달만 한 수박 한 통이 거실 바닥 홀딱 벗고 나뒹굴더군 아무리 이열치열이라지만 냉방에 배 깔고 누워도 구슬땀이 소나긴데 미꾸라지 출타한 추어탕 뚝배기 아래턱을 치받는다. 어느 지방 출신인지 몰라도 발그레 홍조 띤 복숭아 자두가 맛 자랑 한껏 부풀리더니 씨만 하나 덜렁 남기더라

松竹일반시 2023.08.03

인생은 하루살이

인생은 하루살이 松竹 김철이 뉘라서 모를쏘냐 금은보화 곡간에 쌓는 기쁨 인생사 소풍 걸음 맨발 벗고 맨몸으로 홀로 왔던 외길이니 나누고 정 베풀어 돌아 돌아 길에 꽃길 삼아 걸어가소 인생 백 년을 산다 해도 아픈 날과 슬픈 날을 뺄셈으로 빼고 나면 성한 날도 기쁜 날도 한순간 물거품인데 하루인들 헛살리까 소풍 온 기념으로 마음 문 자물쇠 끌러 놓고 슬픈 이도 아픈 이도 축복으로 맞이하세 앞앞이 복되어 소나기로 내릴 인생살이 길목에서

松竹일반시 2023.07.30

춘계전쟁(春季戰爭)

춘계전쟁(春季戰爭) 松竹 김철이 벙커 속 초록 신병들이 적군도 없는 전투의 파병을 위해 하나둘 머리를 내밀어 새파란 눈으로 적진을 응시한다. 폭음 없는 폭파는 삼천리 금수강산을 뒤엎고 시절의 패잔병 꽃샘추위 엳아홉 달 작전상 후퇴를 한다. 지하 참호 속에 은폐 중이던 동면 동물들 일제히 승전보를 전하고 얼음 되어 억류당하던 물은 자유 찾아 드넓은 물의 세계로 간다. 또 다른 전선의 승전을 위해 민들레 홀씨 특전병 되어 꽃바람 군 수송기 삼아 돌아오지 못할 정찰을 떠난다.

松竹일반시 2023.07.23

장맛비

장맛비 松竹 김철이 신께서도 내 어머니 칠순 넘기셨을 적처럼 건망증이 무척이나 심하신 듯싶다 갖은 오물 묵은 때로 온통 더럽혀진 지구촌 곳곳을 물청소하실 적에 짬짬이 수도꼭지 매매 잠그는걸 깜빡 잊으신 모양일세 콸콸 콸콸 과수원 물이 차니 참외 신이 난 듯 우쭐우쭐 수박덩이 비치볼인 된 양 둥실둥실 두둥실 정처 없이 떠다닌다. 닭장 속 수탉 암탉도 품은 알 버려두고 지붕 꼭대기 위에 벌벌 떤다. 도랑물은 드넓은 강물로 넘쳐흐르는데 여태도 콸콸 콸콸 신이시여! 물청소하실 거라면 모쪼록 하늘나라 수도꼭지 매매 잠가주시구려

松竹일반시 2023.07.13

말 松竹 김철이 발도 없는 언어 몇 마디 천 리를 간다고 했지만 그 누가 허락했다고 남의 가슴에 왕소금을 뿌렸더냐 쓰레기이야 쏟으면 쓸어 담을 수도 있다지만 말 한마디 잘못 내뱉으면 다시는 쓸어 담지 못하거늘 입방정 그만 떨고 선산 묫자리나 찾기를 네 마음 아프면 내 마음 성하다더냐 말로 입힌 상처, 말로 씻으려 말고 네 살아있는 생명의 양심으로 기워 갚으렴 먼 훗날 네 죽어 저승 갈 적 세 치 혀로 내뱉은 몇 마디 네 말 올가미로 네 영혼마저 살릴 수 없으리

松竹일반시 2023.07.09

삼복더위

삼복더위 松竹 김철이 하늘 아래 한복판 마그마 이글이글 콘크리트 거리마다 엿 가마 불 지펴 옥수수엿을 굽고 빌딩 숲 손풀무질하니 도심지가 온통 찜질방이다. 칠 년을 참다 참다 곡하던 매미도 가쁜 숨을 고르고 네 날개잠자리도 고공비행을 멈춘 지 오래일세 가로수는 취객처럼 마냥 비틀거리고 비루먹은 길고양이 박제된 심장마저 쉼 없이 헐떡거린다. 햇살은 기총소사 총알처럼 위에서 아래로 퍼붓는데 짬짬이 불던 잔바람도 줄행랑치고 등골엔 개울물이 흐르고 이마엔 구슬땀이 절로 맺힌다. 자동차도 발바닥이 뜨거워 징징대며 종종걸음 에어컨 노예가 된 사람들 물끄러미 창밖 눈치만 두루 살핀다.

松竹일반시 2023.07.06

천태만상

천태만상 松竹 김철이 세상사 드넓다 해도 꼴사나운 행세 천지에 널린 채 꼴값을 떨어대니 눈꼬리가 절로 오르락내리락 차라리 삭발하고 폭포 물에 득음이나 하련다 살다 살다 외로울 땐 산새 들새 벗하며 세상을 논하고 맹자를 논하더라도 검은 걸 희다곤 않으리 안주 없어 술 못 마시랴, 술이 뭐 별거더냐? 물이 술이 되고 술이 물이 되는 더러운 인생사 술 걸러 물로 마시겠네 너른 세상사 하루살이 생을 살다 날개를 접더라도 나날이 천태만상 속에 값없이 떠오를 둥근 태양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 보련다

松竹일반시 2023.07.02

빈 잔

빈 잔 松竹 김철이 채워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비우지 못한 탓에 똥물이 넘쳐흐르누나 개나 소나 장에 가니 똥지게 지고 괜한 허세 부렸더니 갈 날은 코앞인데 노잣돈 한 푼 없네 몇백 년을 살 거라고 밤낮 아옹다옹 살았더니 비 오는 날 빈 지갑 털고 울더라 올 때도 빈손으로 왔으니 갈 때도 빈손으로 가라시는 드높은 천명을 위하여 다짐의 빈 잔 들고 건배!

松竹일반시 2023.06.18

별 松竹 김철이 캄캄한 밤하늘에 그 누가 저다지도 윤이 나는 쌀밥을 쏟아놓았을까 소쩍새 밤새 우느라 배고파 뜨덤뜨덤 쪼아 먹고 갈 테지 이루지 못한 견우직녀 참사랑이 안쓰러워 칠선녀 칠월칠석 밝혀줄 등불을 은실 꼬아 무수히 수놓더라 밤새 떡방아 찧는 옥토끼 새벽이 이르게 올까 급해진 마음 감출 수 없어 바빠진 절구질에 절구통 하나둘 탈출한 절편일 거야 밤하늘 야경꾼 달님 드넓은 하늘 홀로 도느라 두려웠을까 눈보다 소금보다 더 흰 빛알갱이 너른 허공 곳곳에 뿌려놓는다

松竹일반시 2023.06.15

춘설(春說)

춘설(春說) 松竹 김철이 계절의 군화에 밟힌 자국 지천이고 삼천리 금수강산이 지뢰가 터져 뒤집힌 듯, 시절의 흔적이 지나간 대지마다 폭음 없는 폭파로 온통 아수라장이다. 언 땅을 뚫고 솟아오른 여린 산천초목은 갖가지 표정으로 푸르고 붉은 기를 들고 자주독립을 선언한다. 국경 없는 전선엔 뽀얀 화약 연기 피어오르고 산과 들에 피는 아지랑이 수신호로 벙커에 은폐 중이던 개구리 도롱뇽 일제히 승전보를 전한다. 세월의 어뢰에 얻어맞은 강과 바다 포로로 억류했던 물을 풀고 물은 자유를 얻고 드넓고 드맑은 물의 세계를 찾아 아래로 흐른다.

松竹일반시 2023.06.11

달 松竹 김철이 회고의 반죽 덩이 오늘 밤도 어젯밤처럼 여지없이 추억 앓이 중병을 않는 가슴속에 퉁퉁 붙는다 흘러간 시절 먹어줄 임자를 기다리다 지쳐 양은 냄비 속에 퉁퉁 불어 터진 밀수제비처럼 초저녁 밥상머리 둘러앉은 가족들 한 술 한 술 퍼 올리는 시래깃국 따라 제각기 다른 회상 덩이를 퍼 올린다. 유년 시절 정월대보름 악동들 빈 깡통 속에 희망을 담듯 닮은꼴 추억 덩이를 담아 돌린다.

松竹일반시 2023.06.08

충국시(忠國詩)

충국시(忠國詩) 松竹 김철이 만백성 신음이 귓전에 맴돌아 골수를 휘날리며 창검을 들려 하니 대창 밭 일어남은 천명의 지엄한 뜻이로다. 민심은 천심이라 마을마다 고을마다 울려 퍼지는 함성에 초야에 묻은 충심 하루살이 몸짓으로 바치려 함이로다 난적을 치기 위해 마음을 쏟고 몸을 써야 함은 백성이면 해야 할 일 산천에 혼을 모으니 새들도 우짖는다. 금수강산 오랑캐 노략질에 잡초가 봉기하니 나라 지키는 일 남녀노소 유별하고 고금이 유별할까.

松竹일반시 2023.06.04

우국충절(憂國忠節)

우국충절(憂國忠節) 松竹 김철이 대장부 뜻을 세워 피붙이 두고 살 타고 뼈 탄 본향을 떠나니 죽은 골수 어찌 선영 슬하 묻으리 살아생전 공 못 세우면 죽어서 넋이라도 돌아가지 않으려니 마음 밭 일구는 곳마다 만월 아래 청산일세. 동녘은 동녘이되 왜구들 노략질에 햇살마저 피 흘리고 이내 몸은 사로잡혀오니 손사랫짓 말고 임이여 불러 주오 영혼에서 샘솟듯 우러나는 사회개혁가 우국충절 금산 계곡마다 낮엔 종다리 울음으로 울고 밤엔 소쩍새 울음으로 울련다.

松竹일반시 2023.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