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竹일반시 703

인륜(人倫)

인륜(人倫) 松竹 김철이 인간사 만남이란 모두가 남남이고 낯설긴 마찬가지 초면 부지 인연의 실 드높은 창공 아스라이 차고 오를 구면의 연실로 성화시켜 세상을 탄다. 윗사람 아랫사람 서로 아껴주고 도와가니 세상은 은혜를 베풀어 마음 큰 부자로 살게 하더라 세상천지 인간 천지 나라님 신하를 믿고 신하는 나라님을 따르는 게 도린데 욕심보 불려가면 하늘도 노하사 사금파리 된단다. 세월도 흐르고 강물도 흐르지만 마땅히 흘러선 안 될 건 세상 뭇 인간사 도리의 강일세

松竹일반시 2023.03.12

파도

파도 松竹 김철이 잠재우고 또 잠재우고 죽이고 거듭해 또 죽이고 얼마를 더 잠재우고 쳐 죽여야만 진정 죽일 수 있을까, 되돌아간 듯싶어 되돌아보면 어느새 가슴에 우두커니 앉아 노는 인생사 숱한 인연들 되돌아온 듯싶어 되돌아 안으면 형체 없는 손사래에 물거품 된 헤아릴 수 없는 사연들 일흔의 어느 날 꼭두새벽 희멀건 뼈대 하나로 꿈틀대다 사라질 몹쓸 놈의 이 그리움은…

松竹일반시 2023.03.09

천륜(天倫)

천륜(天倫) 松竹 김철이 하늘이 매어주신 연줄 잡고 세상 마실 나온 벌거숭이 첫울음 울 적에 첫 만남 소중히 맞아주었네 버거운 인생살이 아옹다옹 살다 보면 원수 대하듯 할 날 있으련만 천륜지정 되새김질 평생을 산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웃고 함께 울라시던 천명을 받았으니 고향 가는 그날까지 입 안 혀처럼 살리 누구는 더 갖고 누구는 덜 가진들 눈꼬리 치켜올리지 말고 세상 축복 꿔다가도 빌어줘야지

松竹일반시 2023.03.05

까치

까치 松竹 김철이 오늘은 또 무슨 소문 물고 왔을까. 아침은 눈곱도 떼지 않았건만 수다가 지천이네 바람도 머금지 못할 세상 숱한 풍문을 알 수 없는 언어로 가을 들판에 토해낸다. 참말인지 거짓인지 알 순 없지만 반가운 소식 물고 오는 길조라니 믿어볼 수밖에 속 다르고 겉 다른 게 세상이라 겉모습 먹물이라 속마음도 먹물이랴 먹물도 씻으면 그만인걸

松竹일반시 2023.02.26

하늘

하늘 松竹 김철이 하늘이 언제 따라왔는지 걸음마다 자박자박 친숙한 표정으로 머리 위에서 내려다본다. 하늘빛이 드맑아 흐르는 구름에 무딘 마음을 담아 발돋움하고 팔을 뻗어보아도 손가락 끝도 닿지 않았지 새파란 하늘빛에 손을 헹구면 좁다란 심중도 새파래지고 드넓어질 것 같아 가슴속으로만 담아 본 하늘을 하루살이 마음 한 자락 너그러운 하늘빛 품에 담아 두련다.

松竹일반시 2023.02.16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松竹 김철이 계절의 끝은 어딘지 몰라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봄은 실눈을 뜨려 하지만 해묵은 전염병 시절 문 앞 망나니 칼춤 추듯 하더라 청산은 꽃피울 채비로 분주한데 병마 꼬리는 산천을 휘감으니 새순은 지레 겁먹고 허공을 나는 철새 날개를 접겠네 봄은 봄이로되 봄나무 가지마다 역병이 맺혔으니 꽃 순도 병색이요 날아든 따오기 울음마저 병색이라 춘삼월 절경은 어디에서 찾으랴

松竹일반시 2023.02.12

처가(妻家)

처가(妻家) 松竹 김철이 처가와 통시는 멀수록 좋다고 어느 누가 말했든가 이 모두가 어불성설 내 아내 양처현모 꿈꾸던 동지인걸 하늘이 내 미래의 내자로 점지하여 몇십 년을 고이고이 숨겨놓고 삶의 학습시키느라 갖은 시련 몸소 체험시켜주신 보석함이었네 험상궂은 세상사 참사랑 나누라고 하나뿐인 마음의 고향 덤으로 하나 더 챙겨주시어 첫 마음 첫정으로 부여안고 살라네 하늘이 내게 더부살이 주셨으니 넋의 고향 가는 그날까지 본가를 다하듯이 추억 쌓기 패물함 삼아 고이 보존하리라

松竹일반시 2023.02.05

강 松竹 김철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언제나 앞뒤 옆을 찬찬히 둘러보며 물돌이 돌고 돌아 골골대며 아래로 흘러간다. 잔잔히 흘러가다가 산도 좋고 물도 좋은 내를 만나면 수초 춤사위 덩달아 너울너울 춤추네 서로 올망졸망 정답게 껴안은 아랫사랑 옹기종기 매달고 곡식 채소 다투어 커가는 곳에 잠시 머물다 흐른다. 낮엔 해 친구 밤엔 별친구 세며 흐르다가 발 아프면 바람 친구 등에 업혀 꼬박꼬박 흐르지

松竹일반시 2023.02.02

외가(外家)

외가(外家) 松竹 김철이 철부지 코흘리개 어리광 둥지로 삼아 곡도 가사도 없는 천방지축 노래를 불러도 금지옥엽 재롱잔치로 받아주었지 놀고 또 놀아도 끝이 없을 유년 시절 마냥 뛰어놀 놀이터 되어 동심에 추억 쌓기 스승 노릇 능하더라 어머니 향기 가득히 품고 모정을 담을 보석함 고운 칠하며 꿈 많던 시절 꿈의 꽃순 안팎에 접붙였대 코흘리개 소꿉친구 낭군 삼아 사금파리 소꿉놀이하며 연필도 공책도 없이 현모양처 학습장 구실 능통했네!

松竹일반시 2023.01.29

산 松竹 김철이 눈꽃 피는 고향을 서성이며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늘 웅숭깊은 아버지 거대한 가슴팍이다 품에 안기면 남녀노소 응석받이가 되니 싫증이라도 낼까 봐 춘삼월 나뭇가지 물 올리고 물오른 대지 잡초 깔아 잘난 놈 못난 놈 죄다 품어 안는다. 칠팔월 복더위에 지칠까 봐 검푸른 초목 그늘 지우고 건들바람 바람잡이 삼아 구슬땀 부채질에 좋은 시절 흘려보내니 드높은 어머니 은혜 같더라 낙관도 비관도 아니 하고 침묵으로 배부른 구시월 엮어내며 곱디고운 춤사위로 겸허히 머리 숙이는 뭇 생명의 안식처로다.

松竹일반시 2023.01.26

본가(本家)

본가(本家) 松竹 김철이 한줄기 옹기종기 매달려 피는 초롱꽃인 양 부모님 슬하 올망졸망 피어 사계절 드높은 사랑을 모이로 삼아 장래의 꿈을 키워가던 곳 부모님 피와 살을 물려받아 사시사철 동고동락 호연지기 날로 키우며 더운밥 찬밥 서로 나누던 삶의 둥지 인생살이 살다 보면 생의 희로애락 절로 이는 계절풍 같아서 때론 몹시 아프고 몹시 슬퍼도 피신처 되어 버선발로 맞아주었지 부모님 떠나시고 없어도 모진 인생살이 힘겹고 버거울 때면 위로받을 부정(父情) 모정(母情)을 찾아들 듯 심뇌(心惱)를 풀어놓을 고향 같아라.

松竹일반시 2023.01.22

가족(家族)

가족(家族) 松竹 김철이 세상 인생사 뭇 인연 중에 누가 불러도 같은 이름으로 묶어놓은 하늘의 뜻은 특별히 사랑하고 특별히 아파하라는 것이리니 홀로 나선 세상 소풍 길 터덜터덜 외로울까 봐 위아래 값없는 사랑으로 짝지어놓고 가족애 풀고 헐어 정으로 살랬지 살다 살다 지치고 버거울 때면 등 내주고 가슴 내주어 밤길 가로등 되고 소나기 쏟아질 때 우산이 돼주라네 고양이 발에 물 털듯이 네 일 내 일 가리지 말고 천만금 주고도 바꾸지 못할 피붙이 하늘가는 그날까지 내 몸처럼 사랑하랬지

松竹일반시 2023.01.15

아내

아내 松竹 김철이 불혹을 홀아비 냄새 폴폴 풍기던 냉가슴에 은은한 목련 향으로 다가와 나팔꽃 아침을 맞았고 달맞이꽃 저녁을 더불어 맞았지 소나기 끝없이 내려도 구멍 난 우산조차 씌워줄 수 없고 뙤약볕 강렬히 내리쬔들 망가진 양산마저 바쳐 줄 수 없는데 날 우산 삼고 양산 삼더라 문득문득 자다가도 떠오른다. 내 어둔한 생각이 내 어눌한 손놀림이 당신 생애 만개할 꽃을 시들게 하진 않았는지 그대 삶의 텃밭 밑거름 줄 수 없어도 내 영혼에 더해 참사랑 웃거름 걸러 주리니 사시사철 피어 시들지 않을 인생 꽃피워 소풍 길 더불어 깔아줬으면

松竹일반시 2023.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