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松竹/김철이 2021. 2. 1. 08:09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예수님의 전 생애를 담은 복음은 한 사람의 전기라고 하기에 짧은 분량을 담고 있습니다. 주님을 전하기 위해 적힌 글이기에 그 속에는 주님의 사건들이 부분적으로 들어있고 중요한 사건들을 모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대게 그런 경우 큰 사건, 성공한 사건들을 모으기 마련인데 오늘 복음은 특별한 부분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게라사인들의 지방에 들리신 예수님은 배에 내리시고 곧바로 그 외진 곳에서 생활하던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을 만나게 되십니다. 당연히 그 영은 사람에게서 떨어지고 사람은 구원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영은 주변에 놓아기르던 돼지떼에게로 들어가 같이 바다로 뛰어듭니다. 

 

여기까지의 내용은 두 번의 정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은 더러운 영에게서 해방되었고, 부정한 짐승인 돼지떼도 사라졌으니 악과 죄가 사라진 셈이 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또 다른 일을 불러일으킵니다. 돼지를 기르던 이들이 와서 주님을 자기 지역에서 떠나 달라고 청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차분하게 진행되는 이 사건 속에서 주님은 실패를 하신 듯 보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생겨난 바르고 좋은 일을 거절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것이 자신들의 밥벌이었기 때문입니다. 동네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었던 사람. 그 사람의 거친 모습에 사람들은 그 길로 다니지 못했을 겁니다. 놓아 기르는 돼지떼를 키우기에 이 둘의 조합은 아무래도 연결된 듯 보입니다. 어쩌면 그 사람들은 더러운 영 때문에 먹고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더러운 영은 그 지방을 떠나지 않게 해달라고 청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앙의 진리와 실천이 틀렸다고 말하는 이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때로 환영받지 못할 때를 만납니다. 사람들의 삶은 어떤 때는 그 악과 다소의 죄에 기대어 사는 경우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존재는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에게는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가 됩니다. 

 

더러운 영에서 해방을 얻은 사람은 주님과 함께 가기를 청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임을 알려주시고 자신이 이제 더 이상 영에 사로잡힌 상태가 아님을 확인 받고 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주님의 마음은 한결 같으나 그 동네를 떠나려 하는 그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우리의 모습들과 겹쳐 보여서 더 그런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