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松竹/김철이 2021. 3. 20. 00:15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따라 이야기들이 엮어지는 세상인지라 이천년이 지난 지금의 나자렛, 그리고 갈릴래아는 유명한 성지순례 장소가 되었습니다. 성전이 지어지고 순례객들이 이어지는 곳에는 기념이 될 만한 많은 것들이 채워져 그 때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사라져버립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 옛날 도시 위에 자리잡은 새로운 자리에서 성지를 기념하거나 짐작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전혀 다른 장소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시간과 시대를 거슬러 그 상황을 머리 속에서 그리고 마음 속에서 떠올리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2천년 전 나자렛 그곳은 예수님의 고향으로 알려진 곳이고 예수님 생애의 거의 대부분이 자리한 곳이었습니다. 나자렛을 품고 있는 갈릴래아는 '이민족의 땅'으로 불리는 이스라엘의 지방이었습니다. 

 

어떤 이들도 기대를 가지지 않는 곳에서 자라신 예수님은 그곳에서 목수의 아들인 목수로 사셨습니다. 그분에게서, 그리고 그 자리에서 사람들의 기대는 크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이동하실 때 받으시는 관심과 시선의 변화는 그런 차이를 보여줍니다. 희망을 불러일으킨 하느님의 사람은 예루살렘에 가까울수록 의심을 받으시고 조롱과 시험의 대상으로 변해갑니다. 

 

갈릴래아에 대해 가지는 사람들의 편견은 지금과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골에서 올라온 이 이름모를 예언자를 붙잡으려는 그들의 시도는 한 사람에 대한 지독한 단죄로 드러납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성전 경비경이 예수님의 모습에 놀라는 것을 보고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그들이 속았다고 잘라 말합니다. 그들은 본적도 직접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적도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도무지 기대할 것이 없는 예수님은 그들이 이미 사람을 가리고 산다는 것을 드러내줍니다. 하느님의 사제요 하느님 백성의 지도자들이 말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선입견을 걱정하는 니코데모에게 그들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를 비난합니다. 성경을 공부하라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 이전에 사람을 구분하고 살아가는 중이었던 겁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이런 갈릴래아는 도처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보금자리도 어딘가에 비교되면 그 가치를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사람도 그러합니다. 그곳의 사람과 수준과 정도를 나누는 세상에 산다는 것은 필사적으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거나 이곳을 떠나 자신의 몸과 기억에서 분리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나자렛을 조롱하는 이름표 아래 목숨을 잃으셨으나 그 이름과 나자렛으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구원은 선발된 이들이 아닌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은 사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갈릴래아 나자렛을 무시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리는 어느 곳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