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松竹/김철이 2021. 2. 15. 07:56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살게 된 시대에 우리에겐 이미 하느님이 주신 율법이 있었고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느님을 알았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그 중에도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하는 하느님과 사람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하느님과 구원의 역사, 그리고 그로인해 생겨난 민족의 역사를 지키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바리사이였습니다. 그들은 자부심이 가득했고 신앙에 있어서는 스승의 자리에 서 있는 '의인'들이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에게 표징을 요구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서 하느님을 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요구는 예수님을 일정한 방향으로 바라보고 몰아가려는 의도를 지녔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마법이나 요술을 부리는 사람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진실을 무너뜨리는 방법 중 그의 핵심을 벗어나 다른 것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을 어떤 이들은 '그렇게라도'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하나의 방법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아는 이들이라면 그의 말과 그의 행동을 보면서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살펴야 했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 역시 그 사람의 진심을 들여다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가장 나쁜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그런 그들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할리 없습니다. 표징이라는 기적에 대한 요구 속에 그들이 가진 생각과 비웃음, 조롱을 아시는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떠나십니다.

 

때로 우리는 우리가 안다는 것 때문에 새로운 것이나 함께 하는 이조차 알아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내가 아니라면 어떤 것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시도는 처음부터 사람을 두꺼운 벽인 듯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하느님의 사람들의 문제는 그들의 부족함이나 어리석음이 아니라 교만함과 자만심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아는 하느님의 자녀는 누구보다 부드러운 마음을 지닌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