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우리가 이 지상에 살아있는 동안에 우리는 선한 이와 악한 이가 같은 자리에 '공존'하는 체험을 합니다. 추상적으로 설명을 시도하려니 이상해 보이지 이건 너무나 당연한 우리의 현실, 살아있는 이들의 현실입니다. 물리적 공간이라는 것 안에는 영적인 다양한 상태가 공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갓난아이를 떠올려 봅시다. 그의 마음에는 '악'이 물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언어'라는 영역이 형성되지 않아서 언어가 크게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나쁜 사람이 다가와서 그 아이에게 욕을 한다고 해도 그 소리는 아이의 귀에 음파로 전달되지만 그 욕설 안에 담긴 '악한 의도'는 아이에게 전파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나쁜 사람은 아이에게 '언어'라는 수단으로는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한 사람이 악한 사람에게 '충고'라는 수단으로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경우에 그런 충고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악한 사람의 의도를 바꾸지 못하는 것입니다. 즉 맑은 영혼과 더러운 영혼이 한 공간에 같이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궁금해 하면서 그것이 '장소냐 상태냐'를 묻곤 합니다. 우리의 물리적 공간을 따지고 든다면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런 형태의 공간의 의미는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죽음'이라는 단계를 통해서 물리적인 현실에서 벗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새로운 '영역', '장' 안에서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물리적인 영역을 전혀 다른 것으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영혼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 안에서 우리는 현세와 별다를 바 없는 일상적인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육체를 가지고' 하는 체험은 아닐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이런 현실을 '상태'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닐 수 있는 천국과 지옥의 호기심은 말 그대로 '호기심'일 뿐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분명한 현실은 천국에 가려고 노력해야 하고 지옥을 피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둘은 다르게 표현되었지만 결국 같은 표현입니다. 지옥에 가기 싫어하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지 않으려 할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현세를 벗어나서는 천국에 속한 이들과 지옥에 속한 이들은 서로를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서로 다른 '상태'에 속한 것을 느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서 이미 죽은 두 사람을 현세에 다시 불러올 수 있고 한 방에 집어 넣는다 하더라도 둘은 서로를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서로 살아가는 '상태'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나쁜 사람의 욕을 전혀 알지 못해서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악한 사람은 악을 기반으로 성장해 갑니다. 그리고 그 악에서 자신의 결과물, 열매를 얻습니다. 반면 선한 사람은 꾸준히 실천하는 선으로 그 열매를 얻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소중한 이유는 서로를 볼 수 있고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한 이들이 자신의 선한 행실로 악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줄 수 있고, 또 악인들의 처참하고도 두려운 결과를 선한 이들이 보고 그런 일을 미연에 예방하고 방지할 수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천국과 지옥은 호기심의 대상으로 그쳐져서는 안됩니다. 천국과 지옥은 우리의 일상의 구체적인 삶의 현실을 방향짓는 최종 목적지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에 헌신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서 하느님의 나라에 가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과연 오늘 하루의 삶은 우리를 얼마나 하느님의 나라에 가까이 데려갔을까요? 아니면 정반대로 그 나라에서 멀어지게 만들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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