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松竹/김철이 2021. 2. 17. 08:17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정호 빈첸시오 신부님(부산교구 괴정성당 주임)

 

 

금식하셨습니까? 금육은 하고 계시는 중이신지요. 사순절을 시작하는 날 우리의 인사는 이렇게 이루어져야 할까요? 오늘로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부활을 기다리는 사순절. 40의 숫자가 이야기하는 준비의 내용은 주님의 죽음을 향해 걷는 길인 듯 우리를 숙연하게 하고 그 속의 내용은 하나 같이 우리를 조심스럽게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금육과 금식의 단어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무게감은 주님의 수난과 죽음의 의미가 더해져 무엇인가를 참아야 하고 희생해야 하는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는 듯 여겨집니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무에 대해 우리는 무게감과 함께 억지스런 부자연스러움을 느낍니다.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과 무엇인가를 참고 인내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히 그런 감정을 가져오지만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안다면 그것은 그저 해야만 하는 의무라고만 여길 수는 없습니다. 

 

우선 주님이 우리에게 그 고통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우리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기 위해서, 좀 더 주님의 삶으로 가까이 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우리의 삶을 제한하는 것을 정성으로 만들 때가 있고, 그것이 주님께 대한 죄송함을 기워갚는 일이라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사순절에 무엇을 해야 하고 왜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반복되는 가르침은 어떤 일을 할 때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기 위해 무엇인가를 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소재가 되는 내용들은 무엇입니까? 

 

의로운 일과 자선을 베푸는 일, 그리고 기도하는 일과 단식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이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이 일들을 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사람과 하느님 안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참고 고통을 수반하는 일들이 아닙니다. 의롭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과 자선을 행하는 것은 하느님 정의와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리고 기도와 단식은 하느님 안에서 스스로 머무는 모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만나면 하나 같이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는 특징을 지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합쳐진다면 그야말로 상대방을 숨어서 그리고 오직 그를 위해서만 이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스란히 그 정성과 사랑은 대상에게 전달됩니다. 기도도 단식의 정성 또한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행한다면 그것을 고통이라고 말할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우선 예수님에게 적용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주님의 정의와 자선, 그리고 기도와 단식은 하나같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셨고 우리 곁에 계시는 하느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삶은 늘 그렇게 우리와 함께 이루어졌고 보이지 않는 그분의 마음이 전달되는데 모자람 없이 하느님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의 고통이나 수난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당신을 숨긴 만큼 우리의 삶이 행복해졌음을 보게 됩니다. 그분이 우리 눈 앞에서 사라지심과 더불어 누군가가 그 시간 행복해지고 있었고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오히려 더 크게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순절은 그렇게 우리를 행복하게 하신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처럼 살아가는 40일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올해도 저는 행복한 사순절을 보내자고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주님처럼 살고 주님처럼 생각하며 우리가 사는 곳을 행복하게 하여 세상이 우리를 조롱하고 고통으로 위협하는 바에 즐겁게 맞서는 시간으로 만들어 가기를 바랍니다. 

 

주님도 걷지 않으신 수난과 고통의 길을 말하며 걷지 말고 사랑의 힘이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더라도 주님의 밝은 마음과 얼굴로 이 시간을 모두가 희망을 깨닫게 되는 시간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로 우리에게 겁을 주려 했던 악한 이들의 생각은 여전히 위협적이지만 부활을 이야기하는 우리는 하느님에게는 전혀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언해야 합니다. 주님의 삶은 그래서 우리에게 슬프지 않은 당당한 길이며 모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