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과 인간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
인간은 초자연적인 '조명'을 받지 않으면 '짐승'의 상태에 머무르게 됩니다. 성경에서도 묘사되는 여러 종류의 짐승들은 실상 우리가 인지하는 자연계의 동물들이 아닌 '천상의 빛을 지니지 못한 인간'을 통칭하는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문명화된 사회'를 이루어내었다고 평가 받습니다. 인간의 문화생활을 동등하게 향유하는 자연계의 동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인간은 치타만큼 빠른 근육의 힘을 지니지도 않고 있으며, 개미나 꿀벌만큼 고도로 정교한 집단 문화를 지니지도 않습니다. 고래보다 오래 잠수할 수도 없고 펭귄만큼 추위를 견디지도 못합니다. 인간은 다만 주어진 '지성'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우리에게 적합한 '문화'를 창조해 낸 것입니다. 그리고 부족한 요소들을 '지능'을 통해서 개발한 기술로 메꾸어갑니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인간의 본질적인 영역은 '고도화된 문명'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영원'을 담을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그릇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즉 교리적인 표현으로 하느님의 모상을 지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마지막 목적을 완수해 내지 않는 이상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지능이 뛰어난' 하나의 동물, 즉 '짐승'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은 짐승 상태의 인간을 초자연적인 존재로 들어높이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신앙을 '사회적인 도구' 정도로 전락시켜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타락한 상태로 '종교'의 범주 안에 머무르는 사람들은 이 신앙을 엉뚱한 것, 세상 사람들의 지탄을 받는 것으로 전락시켜 버리고 맙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초자연적인 빛과 맞닿게 하는 빼어나고 위대한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왜 저러고 살까' 하는 한탄을 자아내는 요소로 내비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혼란스러움이 현대 사회에서 신앙의 조명을 얻지 못한 이들이 신앙에 다가서는 것을 꺼리게 만드는 어려움입니다. 아름답고 선하고 사랑스러운 것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것입니다. 실제로 가난한 이들을 돕는 교회, 서로 사랑하는 교회, 품행 단정한 교회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광신이 되고, 예를 들어 이런 코로나 시대에 방역 수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를 밥먹듯이 하기 시작할 때에 세상 사람들의 환멸을 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본 주제로 돌아와서,
신앙은 우리를 드높은 빛으로 초대하고 바로 그 빛의 조명 안에서 우리 인간은 비로소 '원래의 창조 목적'을 완성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냥 살아남기 위해서 존재하는 이들이 아닙니다. 세상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특이 지점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누구는 부자 되고, 누구는 권력을 쥐고, 누구는 명예를 쥘 것이고, 그런 것과 전혀 상관없이 살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저마다에게 허락된 환경과 능력에 따라 다를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영원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갈망해야 합니다. 바로 그때에 비로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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