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176

말씀의 이삭 | 사람 사이의 하느님

사람 사이의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저와 함께하심을 드러내 보 여 주시곤 합니다. 아내에게 반해 한국으로 온 저는 춘천에서 공부를 마 친 후, 취업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가 주어졌습니 다. 하지만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이 있는 서울은 집값이 너무 비쌌습니다. 학생이었던 저에게 모아 놓은 돈이 있 을 리 없었죠. 막막하기만 하던 그때, 춘천에서 같이 공부 하던 친구가 서울에 사는 이모 댁에서 지내게 해 주었습 니다. 저는 친구도 친구지만 이모님이 이해되지 않았습니 다. 조카랑 함께 지내는 것도 아니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조카 친구’를 받아주시다니! ‘왜?’라는 질문이 절로 나왔 습니다. 하지만 제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인가요? 당장 ..

세대간 소통 2025.02.18

행복하게 역설을 살아가는 법 | 김민 요한 신부님_예수회(인권연대연구센터)

행복하게 역설을 살아가는 법                                                          김민 요한 신부님_예수회(인권연대연구센터)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질문에 꽤 잘 어울리는 답변 가운데 하나가 ‘역설을 살아가신 분’이라는 표현이라 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시지만 그다지 영광스 럽게 세상에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혼인도 아직 치르지 못한 처녀에게 잉태되셨으니까요. 또 태어나신 예수님 곁 에는 당시 그다지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던 목동들을 비 롯해, 심지어 동물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 자들 역시 어부나 세리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예수님의 수 난과 죽음은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수치 그 자체였습니다. 사랑을 주었던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고,..

사제의 공간 2025.02.16

말씀의 이삭 | 하느님의 빅 픽처

하느님의 빅 픽처  돌아보니 인생의 절반 가까이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 다. 곧 있으면 반평생을 한국에서 살았다고 할 수 있겠네 요. 솔직히, 한국에 이렇게 오래 살 생각은 없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저는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등 과학 분야 에 관심이 많아서 과학 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이탈리아 는 낮 12시면 학교 수업이 끝나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 이 아주 많습니다. 그 시간에 저는 주로 축구를 하거나 베 이스 기타를 연주했는데, 특히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다 양한 분야를 책으로 접하고 습득했죠. 그러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는데, 당시에 저는 오만하게도 혼자 공부해서 안 되는 공부는 거의 없 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이든 책을 통해 스스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죠. 이 ..

세대간 소통 2025.02.11

말씀의 이삭 | 스며들 듯 오신 하느님

스며들 듯 오신 하느님  안녕하세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한국에 산 지 올해 로 18년 차 되는 ‘알베르토 몬디’입니다. 많은 분이 아시 듯 이탈리아 국민은 아주 오래전부터 가톨릭을 믿어 왔습 니다. 여전히 한국 문화에 불교와 유교 문화가 남아있듯, 이탈리아 문화에는 가톨릭 문화가 짙게 묻어 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름’입니다. 한국 가톨릭 신자분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알베르 토 씨는 세례명이 뭐예요?”입니다. 처음에 이 질문을 받았 을 때는 세례명이 무엇인지 몰라서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 다. 이탈리아에서는 세례명이라는 것이 따로 없기 때문이 죠. 아이가 태어나면 대부분의 부모님은 성인(聖人) 이름 중 에 하나를 정해서 이름으로 지어줍니다. 그러니 이탈리아 사람에게는 이름이 곧 세..

세대간 소통 2025.02.04

그리스도께 불꽃을 댕겨 받자 | 이경상 바오로 주교님(서울대교구 보좌주교)

그리스도께 불꽃을 댕겨 받자                                                              이경상 바오로 주교님(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우리는 주님 봉헌 축일, 빛의 축일을 지냅니다. 이날은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고통이 깔 린 우리 삶 한가운데에서도 용기를 내어 희망하며 살기로 다짐하는 날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성전에 봉헌되 심은 희생을 통해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 다. 오늘 축성되는 초는 이 헌신과 봉헌의 빛을 나타내는 가장 아름다운 상징입니다. 제1독서 말라키서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예언서입니 다. 말라키 예언자가 활동하던 때는 유배에서 돌아온 히 브리인들이 이미 수십 년 전에 성전을 재건했으나, 우울 과 절망 속..

사제의 공간 2025.02.04

서울대교구)청소년 특집 | 우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은?

우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은?  청소년 시절, 저는 정말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공 부도 운동도 특별히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항상 중 간 정도여서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죠. 남들 앞에 나서 는 것도 주목받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서 초, 중, 고등 학교 시절 반장이나 회장 같은 임원도 한 번 맡아본 적 이 없었습니다. 키도 체격도 늘 평균 정도를 유지하는 조용한 학생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성당에만 오면 저는 무언가 특 별한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 시 작한 전례부에서는 그저 앞에 나와 또박또박 기도문을 읽고 내려왔을 뿐인데 큰 칭찬을 받았고, 매주 성당에 빠지지 않고 나가기만 해도 선생님들과 신부님의 사랑 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당에 오면 저를 필요로 하는..

세대간 소통 2025.01.31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 | 안승태 요셉 신부님(창5동성당 주임)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                                                             안승태 요셉 신부님(창5동성당 주임)  이번 주 미사 전례의 독서는 하느님 말씀의 중요성을 일 깨워줍니다. 제1독서 느헤미야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 론 유배에서 돌아온 후 사제요 율법 학자인 에즈라가 모세 의 율법을 엄숙하게 낭독하는 내용인데, 온 백성이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며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울었다고 전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의 한 구절을 읽으시고 다 음과 같이 해석하십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 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주님의 영이 내리시 어, 주님께서 가난한 이들..

사제의 공간 2025.01.29

말씀의 이삭 | 내가 너를 사막으로 불러내 너에게 사랑을 속삭여 주리라

내가 너를 사막으로 불러내 너에게 사랑을 속삭여 주리라  안토파가스타는 아타카마 사막 한켠에 세워진 도시입 니다. 사막과 바다가 접해 있어 비할 수 없이 아름답지만, 척박한 바위와 흙모래 위에 세워졌기에 낯설고 삭막한 곳 이기도 합니다. 이 공동체에 저를 파견하면서 원장 수녀 님이 하신 말씀은, 무엇보다도 먼저 건강하게 적응하기 위해 마음을 쓰라는 당부였습니다. 수녀님의 염려와는 달 리 부드러운 선과 다양한 색깔로 시시각각 변하며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사막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저의 삶은 매 순간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저는 공동체에서 서로 연배가 비슷한 두 분의 칠레 수 녀님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40년을 넘게 함 께 살아오면서 서로를 신뢰하고 있다는 점은 물론이고 삶 의 체험도 비슷하여..

세대간 소통 2025.01.28

청소년 특집 | 세상 모든 청소년들이 예수님 사랑의 포도주가 되게 하소서

세상 모든 청소년들이 예수님 사랑의 포도주가 되게 하소서  작년 이맘때 여자 친구를 선배에게 빼앗겨 공황장 애가 오고 자해를 하던 친구가 제 권고로 다시금 교회 에 나가면서 예수님을 깊이 체험하였습니다. 그 뒤 병 원도 안 다니고, 약도 다 끊었습니다. 작년 이맘때 고 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친구들과 싸우고 학교에 적응 을 못 해 자퇴했던 친구가 지금은 자기보다 약한 친구 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예수님을 믿으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검정고시도 합격했습니다. 작년 이맘때 자기 것만 챙기기에 바빴던 친구가 이제는 거리의 가난하 고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며 사는 법을 배웠고, 지역 아동센터에 가서 아이들을 위해 급식 봉사와 돌봄 봉 사를 합니다. 또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도 없이 살았던 이 친구가 이제는 목사님..

세대간 소통 2025.01.23

말씀의 이삭 | 다니엘이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다니엘이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10여 년 전, 안토파가스타에서 처음 그 아이를 알게 되 었는데, 그때 다니엘의 나이는 네 살이었습니다. 호기심으 로 반짝이는 두 눈에, 똘똘함이 가득한 귀여운 꼬마였습니 다. 다니엘은 일주일에 한두 번 할머니의 손을 잡고 바오로 딸 서원에 찾아와 수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림책도 보며 우리에게 아주 반가운 손님이 되었습니다. 직장 생활 을 하는 엄마와 아빠 때문에 할머니의 손에 자란 다니엘은 말하는 폼이나 생각하는 것이 또래들과는 달리 의젓하고 거침이 없었습니다. 한동안 뜸하던 그가 어느 날, “수녀님, 저 복사됐어요.”라며 찾아왔습니다. 빛나는 눈엔 기쁨이 가 득 찼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매일 미사에 오던 다니엘에게 특별히 복사단 입단을 허락하셨고, 다니엘은 신자들..

세대간 소통 2025.01.21

“그들에게” 포도주가 없구나 | 윤웅렬 하상바오로 신부님(등촌1동성당 부주임)

“그들에게” 포도주가 없구나                                                                 윤웅렬 하상바오로 신부님(등촌1동성당 부주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 면모가 가장 잘 드러 나는 명칭은 바로 ‘나자렛 사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 서 태어나신 곳은 이스라엘의 남쪽 유다의 베들레헴이지 만,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이 터전을 잡고 산 곳은 이 스라엘의 북쪽 갈릴래아 호수로부터 왼쪽으로 40여 km 떨어진 곳에 있던 나자렛이라는 고을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예수’라는 이름 또한 흔했었기에, ‘나자렛’이라 는 지명을 붙임으로써 예수님의 고유함을 표시할 수 있었 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한 지명인 카나는 그 나자렛에서 걸 어서 두 시간..

사제의 공간 2025.01.18

말씀의 이삭 | 빅토르 할아버지

빅토르 할아버지  빅토르 할아버지는 길에서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생김 새조차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길게 헝클어진 머리와 수염, 큰 키에 바짝 마른 두 발에는 신발도 없었습니다. 70세는 족히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는 피노체트 독재 정 권 시절 정보 경찰 출신으로 민주 인사들에게 고문을 가 하던 경찰이었다는 것, 그 후유증으로 정신 이상자가 되 어 10년을 넘게 떠돌아다니며 지낸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같은 자리에 조용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을 쳐다보며 웃기도 하고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습니다. 가끔 기분이 나빠지면 소리를 지르거나, 지나가는 이들 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통에 다른 노숙인들과 달리 친 구도, 강아지도 할아버지를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저를 보면 “중국 공산주의자..

세대간 소통 2025.01.14

당신, 최고의 선물 | 조성풍 아우구스티노 신부님(명동대성당 주임)

당신, 최고의 선물                                                  조성풍 아우구스티노 신부님(명동대성당 주임)   사랑의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당 신의 외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 다. 이러한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의 신비를 우리는 성탄 시기 동안 되새기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사건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주님의 세례 축일’로 성탄 시기를 마무리하고, 내일부터는 연중 시기가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되새기는 ‘주님께서 세례받으신 사 건’은 ‘동방 박사들의 방문’과 ‘예수님께서 카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과 함께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드러 내는 사건들입니다. ‘예수님’은 ..

사제의 공간 2025.01.13

청소년 특집 | 기도손의 무게

기도손의 무게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성전에서 미사를 봉헌할 때, 그리고 기도할 때 잘하지 못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기도손’입니다. 기도손이라고 하면 왠지 초등부 주일 학교 학생들에게만 어울릴 법한 표현인데 저는 여전 히 이 단어가 참 좋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주일학교 다닐 때 미사에 집중하기 어려웠습니다. 복사를 서면서 전례에 봉사한다는 이 유로 ‘틀리지 말아야지.’, ‘잘해야지.’에만 마음을 쓰 며 성전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마음을 다 해 미사에 참례하면 정작 하느님께는 그런 것이 전 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많은 것들이 미 사 중에 제 관심을 끌며 저를 부산스럽게 하다 보니, 오롯이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손을 모으는 것은 더욱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모인 듯 안 모인 ..

세대간 소통 2025.01.09

말씀의 이삭 | 칠레 남쪽 사람들은 친절하고 사랑이 넘칩니다

칠레 남쪽 사람들은 친절하고 사랑이 넘칩니다  20년 전 칠레에 도착한 후 5개월의 스페인어 공부를 마치고 콘셉시온 공동체로 파견을 받았습니다. 콘셉시온 은 산티아고에서 500킬로미터 떨어진 남쪽의 도시입니 다. 시원한 맑은 공기에 잘 정돈된 도시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두 명의 칠레 수녀님, 한 명의 이탈리아 수녀님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대학이 여럿 모여있는 콘셉시온은 청년 사목과 함께 성소 사목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었고, 다른 지역에 비해 사제와 수도자 성소도 많은 지역입니다. 휴가철, 칠레 교 회 젊은이들은 한 지역을 찾아 지역 주민들과 함께 신앙 체험을 나누는데, 이를 미션이라 합니다. 우리 수도회도 성소 사목의 일환으로 산티아고의 젊은이들과 함께 콘셉 시온 가까이 ‘..

세대간 소통 2025.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