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159

말씀의 이삭 | 이유 있는 시련, 늦은 감사

이유 있는 시련, 늦은 감사  저의 시작은 화려했습니다. 딱히 무명 시절이라고 할 것도 없이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모델로서도, 배우로서도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작은 역할이 라도 얻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간절함이 무엇인지 알지 못 한 채, 꽤 오랫동안 연예계 활동을 했습니다. 그때는 그것 이 당연하다고까지 여기며 ‘이 역할은 분량이 너무 적다, 이 역할은 내가 돋보이지 않는다.’ 등의 이유로 들어오는 작품을 거절하는 일도 잦았습니다. 그런 저의 오만함이 흔 들리기 시작한 것은 데뷔한 지 십여 년 정도 흘렀을 때였 습니다. 저에게 들어오는 작품 수가 현저히 줄고 있었습니 다. 작품이 준다는 건, 더 이상 배우로서 매력이 없다는 뜻 과 같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그토록 높았던 자 ..

세대간 소통 2024.12.31

신비를 바라보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랑 | 윤웅렬 하상바오로 신부님(등촌1동성당 부주임)

신비를 바라보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랑                                                                            윤웅렬 하상바오로 신부님(등촌1동성당 부주임)  성가정(聖家庭), 거룩한 가정. 우리 신자들 안에서는 가 족 전체가 가톨릭교회의 세례를 받을 때 비로소 ‘성가정 이 되었다.’ 말하곤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인은 세례성사를 통해 자신의 모든 죄가 씻기고 하 느님의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온 가족이 그렇게 거룩 하다면 당연히 성가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 서 많은 교우분들이, 이 성가정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아직 성당에 나오지 않는 가족을 채근하곤 합니다. 때때로 그 ‘거룩한 독촉’에 자못 부작용이 뒤따르기도 하..

사제의 공간 2024.12.29

말씀의 이삭 | 기도로 이어지는 사랑

기도로 이어지는 사랑  제가 하느님을 알고 지금껏 그분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다 저희 외할머니 덕분입니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헤아려보면, 방 한쪽에서 열심히 기도드리시 던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친척들이 저희 집에 한 꺼번에 올 일이 있어도, 항상 할머니는 저녁에 함께 기도 하자며 가족들을 모으셨었습니다. 두런두런 둘러앉아 할 머니와 함께 묵주기도를 드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또, 그렇게 묵주기도가 끝나고 나면 다시금 방에 홀로 들어가 서 기도를 이어가시던 모습까지도요. 할머니는 항상 기도하며 사신다는 것이 삶에서 느껴지 는 분이기도 하셨습니다. 너무나 인자하신 분이셨고, 저 는 끝내 할머니가 화를 내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 습니다. 그 어떤 실수를 하고 주저앉아 있..

세대간 소통 2024.12.24

또 다른 마리아들이 되기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또 다른 마리아들이 되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성탄을 코앞에 둔 대림 제4주일에 엘리사벳과 마리아가 만납니다. 두 분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분들입니다. 그러나 본받아야 할 지점은 다릅니다. 엘리사벳은 아이를 못 낳는 여자, 즉 석녀였으나 하느님의 사람을 낳았고, 마리아는 남 자를 모르는 처녀로서 하느님의 아드님을 낳았습니다. 그러 니 우리는 두 가지 차원에서 하느님을 낳는 것을 배웁니다. 첫 번째로 어떻게 엘리사벳처럼 석녀이면서도 하느님의 사람을 낳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석녀,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영적 석녀가 되어 인간을 낳는 데는 불..

사제의 공간 2024.12.22

말씀의 이삭 | 내가 성당을 찾는 이유

내가 성당을 찾는 이유  저는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익숙지 않습니다. 힘들어도 괜 찮은 척하고, 슬퍼도 행복한 척하며 아픔을 어떻게든 숨 기려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것인데, 왜 그렇게 싫을까요. 아마 저에게는 두려움이 있 는 것 같습니다. 부족한 점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였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약점 잡히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혹 시 무시라도 당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그런 수많은 두려움이 제 안에 웅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그런 두려움 속에서 온전히 빠져나왔다고 자신 하기는 어렵지만, 요즘은 그런 견고한 제 안의 장벽이 조 금씩 허물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성당에 다시 나오기 시작 하면서부터 시작된 일입니다. ..

세대간 소통 2024.12.17

말씀의 이삭 | 비워서 생기는 마음의 평화

비워서 생기는 마음의 평화  30살이 막 되었을 무렵 산티아고 성지순례를 다녀왔습 니다. 사실 그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저 친한 언니들 이 가자는 말에 가볍게 여행가는 마음으로 따라나섰을 뿐 이었습니다. 침낭을 챙겨야 한다는 언니의 말에, 저는 7 세 이하 어린이들이 쓰는 귀엽고 작고 예쁜 침낭을 챙겼 습니다. 예쁜 등산복에 드라이기와 화장품도 잔뜩 챙겨서 배낭에 넣고 룰루랄라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순례 시작지인 생장으로 가기 위해 들른 파리 공항에서 이미 시련은 시작되었습니다. 호텔을 찾아 헤맨 지 1시간이 되었을 즈음, 외국어 하나도 못 하는데 여길 무슨 생각으로 왔나 하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공항조차 빠져나가지 못하고 빙빙 돌고 있었기 때 문입니다. 순례가 시작되고 나서, 이 불..

세대간 소통 2024.12.10

회개 | 문종원 베드로 신부님(주교좌 기도 사제)

회개                                            문종원 베드로 신부님(주교좌 기도 사제)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 의 세례를 선포하고, 오실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라고 외 칩니다. 공관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라고 선포하십니다. ‘회개하 여라.’의 의미는 ‘삶을 쇄신하라.’, ‘마음과 정신을 완전히 바꾸어라!’, ‘죄에서 벗어나 하느님께로 향하라.’ 등을 뜻 합니다. ‘회개’는 방탕한 짓을 그만두고 올바로 행동하라는 의미 만은 아닙니다. 품행이 단정하고, 행동에 어긋남이 없고, 책임감 있고,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기도도 많이 하는 바 리사이들이 사실은 그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아와 가 ..

사제의 공간 2024.12.08

벼랑 끝에 서고나니 올 데가….

벼랑 끝에 서고나니 올 데가….  한 때 저희 가족도 주일만 되면 독실하셨던 할머니와 함 께 온 가족이 미사에 참례하러 가는 것이 당연할 때가 있 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였던 제게 미사는 왜 그리 재미없 던지요. 저는 그저 일요일 아침에는 늦잠도 자고 티브이나 보면서 놀러 가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던 그야말로 철부지 였습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부산으로 전학 을 갈 무렵, 식구들이 다 흩어지게 되었고, 저는 그때부터 하느님을 외면하며 살았습니다. 무려 20여 년을요. 그러던 어느 날, 뒤돌아보니 저는 어느새 30대가 되었 고, 그 무렵 한창 어려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 니다. 살면서 누구나 위기를 맞는다고는 하지만, 저는 너 무나 나약해져 있었기에, 당장 내일이라도 삶이 끝날 것 만 같은..

세대간 소통 2024.12.03

모든 피조물의 탄식과 고통에 아파하며…. | 구요비욥 주교님(서울대교구 총대리)

모든 피조물의 탄식과 고통에 아파하며….                                                                                     구요비욥 주교님(서울대교구 총대리)  교회 전례력으로 새해의 첫날을 맞이했습니다. 교회는 새해를 시작하면서 다시 오시는 구세주이신 주님을 맞이 할 준비를 하는 대림 시기로 믿는 이들을 초대합니다. 교 회의 시간 전례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한된 세계 안에 갇 혀 있는 인간의 삶과 역사 안에, 영원하신 하느님께서 늘 찾아오시고 함께하신다는 진리를 일깨워 줍니다. 하느님 께서는 영원한 분이시고 시간의 주인이시며 영원한 현재 이시기에 신앙인들은 지금, 여기에서 그분의 현존과 역사 하심을 교감하고 통교(communio)하도록..

사제의 공간 2024.12.01

청소년 특집 | 삶을 헤쳐 나갈 힘

삶을 헤쳐 나갈 힘  패트릭 네스와 시본 도우드의 청소년 소설 《몬스터 콜스》의 주인공 코너는 외로운 아이입니다. 심각한 병 에 걸린 엄마는 치료에 치료를 거듭해도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합니다. 몇 해 전 엄마와 이혼한 아빠 는 코너보다 새로 꾸린 가정이 더 중요한 것처럼 행동 합니다. 학교에서는 코너의 엄마가 병에 걸렸다는 소 문이 퍼져 모두가 코너에게 거리를 둡니다. 유일하게 코너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코너를 괴롭히는 해리와 일당들뿐입니다. 코너는 매일 밤 악몽을 꿉니다. “아 무리 세게 붙들려고 애써도 자기 손에서 손이 빠져나 가는 꿈.”(11쪽) 똑같이 반복되는 이 꿈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코너만의 어두운 비밀입니다. 그리고 어느 밤, 몬스터가 찾아옵니다. 거대한 주목 (주목과에 속한 ..

세대간 소통 2024.11.28

말씀의 이삭 | 흥! 아무리 막아봐라!

흥! 아무리 막아봐라!  제가 유일하게 하느님과 지키는 약속이 있다면, 그건 ‘절 대 주일미사를 거르지 않겠다.’는 겁니다. 2009년 주님께 다시 돌아온 후로는 이 약속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습니다. 서울에 있을 때는 문제 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동네마다 성당이 있고 미사 시간도 새벽부터 밤까지 다양하게 있으 니까요. 하지만 지방이나 해외는 녹록하지 않을 때가 많습 니다. 얼마 전, 체코 프라하에 갔을 때가 그랬습니다. 프라하의 성 비투스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바로 다 음 장소로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었습니다. 반드시 ‘이곳’ 에서 ‘이 시간’에 ‘미사’를 드려야 했죠. 유럽의 성당 대부 분이 그렇듯 성 비투스대성당도 유명 관광지 중 하나입니 다. 체코의 중심부인 프라하성 안에 있는 이 성당은 역..

세대간 소통 2024.11.26

그 때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기 때문이다 | 황인수이냐시오 신부님(성바오로수도회)

그 때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기 때문이다                                                                                            황인수이냐시오 신부님(성바오로수도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지금은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 지만, 교회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은 누구 이신가를 둘러싸고 교회 안에서도 대립이 일어났고, 로마 제국의 황제가 그 문제에 개입하면서 분열은 심각해졌지 요. 그 상황을 바라보면서 대 바실리오 성인은 깊이 고뇌 하게 됩니다. “… 이런 일들을 보면서 이토록 악한 일이 어디서 생겼 으며 왜 일어나는지 자문하는 동안 처음에 나는 짙은 어 둠 속에 있어서 마치 저울 위에..

사제의 공간 2024.11.23

말씀의 이삭 | 혀만 남았다고?

혀만 남았다고?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가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달려온 덕분에 제 이름 앞에는 ‘일타강사’라는 수식 어가 붙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제 강의를 듣는 학생이 늘 어났고 그에 비례하여 수입도 늘게 되었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뿐인데 과분하게 받고 있다는 생각에 ‘기부’라는 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생전 기부를 해봤어야 알죠.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무작정 성당 사무 실을 찾아갔습니다. 가톨릭과 관련된 기관에 기부하고 싶 다고 했더니, 그분은 무심히 “까리따스로 연락 한 번 해보 세요.”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저의 기부는 ‘까리따스알 코올회복센터’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알코올회복센터는 알코올 의존 상태에 놓인 사람들을 돕는 곳인데 재정적인 문제로 문..

세대간 소통 2024.11.19

오늘을 위한 그날 | 허규 베네딕토 신부님(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오늘을 위한 그날                                        허규 베네딕토 신부님(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연중 시기의 마지막을 기다리면서 오늘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기억합니다. ‘가난하다’는 표현은 성경에서 경제적 으로 어려운 이들만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억압당하거나 소외된 이들,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 등도 포함하는 넓 은 의미를 지닙니다. 아마도 현재의 관점에서 가난한 이 들에는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사지로 내몰린 이들도 속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난’이라는 말은 인간의 힘 때문에, 하느님께서 세우신 조화로운 질서에서 벗어나 있는 모든 이들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연중 제33주일인 오늘의 말씀은 종말과 심판을 강조합 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종말을 어둡고 두려운 이미지 안..

사제의 공간 2024.11.17

청소년 특집 | 하느님을 찾는 목마른 젊은이들

하느님을 찾는 목마른 젊은이들  교구 대학생사목부에서 사목하던 때, 한창 ‘여혐(여 성혐오)’, ‘남혐(남성혐오)’이라는 말이 유행하며 젠더 갈등 이 크게 터졌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까지도 20대 사이 에선 민감한 문제인데, 교회도 사회도 관심을 기울이 지 않는다면서 절규하던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러 다가 2016년 5월, 30대 ‘여혐자’가 20대 여성을 화장 실까지 따라가 살인을 저질렀던, 이른바 ‘강남 화장실 묻지마 살인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 교회의 여 성 사제 허용 문제를 비롯하여 여성 문제에 대해 묻는 가톨릭학생회 차원의 문의가 여러 차례 잇달았습니 다. 저는 이 정도로 20대들에게 중요한 이슈라면 공적 으로 시간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2016년 10월, 자리를..

세대간 소통 2024.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