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185

말씀의 이삭 | 벼랑의 끝자락에서

벼랑의 끝자락에서  《그림으로 보는 복음 묵상》 책에 담긴 성화로 전국 순 회전을 계획했으나 코로나 사태로 부득이하게 연기해야 만 했습니다.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가슴 저린 때였지요. 1 년여 시간이 흐른 다음, 그동안 그렸던 주보 표지화를 비 롯해 새로운 작품 몇 점과 브론즈로 만든 14처로 ‘현존’이 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준비했습니다. 인류 전체가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는 고난의 순간에도 하느님께서 늘 함께하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작품 속 200명의 군상을 그리던 중 갑자기 심한 갈증과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과로와 당뇨 체질 때문일 거라 가볍게 여기며 병원에 갔는데 췌장암이라는 청천벽 력 같은 진단을 받았습니다. 췌장 쪽은 초기에 발견하기 힘든데 1기에 발견된 것은 행운이라고 ..

세대간 소통 12:33:04

청소년 특집 |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마태 5,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마태 5,8)  저는 ‘서울아지트’라는 곳에서 버스를 몰며 사목하 다가, 청소년 시기를 힘겹게 보내는 친구들을 통해 알 게 된 것이 있어요. ‘사랑의 힘’이죠. ‘사랑의 힘’은 똑 똑한 아이들을 더 똑똑하고 지혜롭고 슬기롭게 만들 죠. 그래서 어른이 되면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을 안 정적인 마음으로 펼치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어려서부터 부모님께 충분한 지지와 사랑을 받지 못 하면 똑똑한 아이들마저 어리석게 사는 것을 자주 봤 습니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려서부터 자기중심적이고 미성숙한 부모 밑에서 무관심, 몰이 해, 방임, 지속적인 언어폭력, 폭행 등을 겪게 되면 어 린 씨앗은 자랄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

세대간 소통 2025.03.20

말씀의 이삭 | 그림으로 읽는 복음

그림으로 읽는 복음  하느님께서 돌리시는 거대한 수레바퀴 속에 작은 점들 이 모여 우주를 밝힙니다. 제가 그림을 시작한 것도, 인체 를 그리게 된 것도, 우연히 흙 작업을 하게 된 것도 그분 의 섬세한 계획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깨닫습니다. 묵주 기도 책을 시작으로 사순 묵상, 실크로드를 비롯해 인도, 아프리카 여행길, 사도 바오로, 이육사, 에밀 타케 신부님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 이르기까지 무던히도 다 양한 주제를 담은 책 작업으로 주님께서는 저를 혹독하게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림과 조각으로 쉼 없이 달린 저는 마침내 신약성경 을 주제로 3년에 걸쳐 여러 교구 주보 표지에 들어갈 그 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림으로 읽는 복음! 말씀 자체 이신 주님을 담아내는 성경 속 여행은 방대한 대서사시였 ..

세대간 소통 2025.03.18

말씀의 이삭 | 어머니의 묵주기도

어머니의 묵주기도  고즈넉한 새벽, 경주 남산 자락의 화실 창에도 봄기운 이 내립니다. 일흔의 나이에도 어머니가 그리운 것은 제 가 8남매 중 막내여서일까요? 그리움의 자락을 잡고 제 삶에서 사랑의 근원이 되어 주셨던 어머니 얘기를 시작하 려 합니다. 어머니는 관절염으로 30년 동안 걸어 다닐 수 없으셨 기에 삶 자체가 온통 기도였습니다. 결혼 조건으로 남편 과 한 첫 번째 약속이 엄마랑 함께 사는 것이었죠. 일찍 부모님을 여윈 남편도 아이들에게 할머니 사랑을 느끼게 해 주고 싶은 열망이 컸던 터라 어머니는 저희 집의 구심 점이 되셨습니다. 성모상 앞에 촛불을 밝히고 미소를 지 으며 기도하시던 어머니의 방은 작은 성소였지요. 제가 어리던 시절 23명이나 되는 대가족을 건사하시 며, 그 작은 체구로 모든 ..

세대간 소통 2025.03.11

유혹을 이기는 열쇠 |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님(서울대교구장)

유혹을 이기는 열쇠                                                       홍사영 바오로 신부님(청년·순례사목 담당)  교회의 전례력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보내신 예수님의 일생이 나타납니다. 곧 예수님의 삶을 대림, 성탄, 사순, 부활, 연중 시기의 구분에 따라 알려주 는데, 오늘은 사순 시기의 첫 번째 주일입니다. ‘사순’이란 말은 숫자 40을 말하며 구약시대에도 하느 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40이라는 숫자와 연관된 기간 동안 특별한 준비를 하였습니다. 노아의 홍수 기간도 40 일이었고,(창세 7,12 참조)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서 탈출 한 후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도 40년이 걸렸습니다.(탈출 16,35 참조) 모세도 밤낮으로 40일간 시나이산에..

사제의 공간 2025.03.11

청소년 특집 | 식사 전 기도의 용기

식사 전 기도의 용기  몇 년 전, 원하던 회사에 취업을 하고 팀 발령을 받 아 처음으로 팀원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였습니다. 식 사 전 기도를 바치는 것이 습관이었지만, 저는 왠지 모 르게 성호를 긋는 것이 잠시 망설여졌습니다. 모든 것 이 눈치 보이는 첫 직장에서, 혹시나 성호를 크게 그었 다가 누군가에게 거부감이라도 줄까 걱정했던 것입니 다. 그때, 옆에 앉아있던 팀 선배가 먼저 성호를 그었 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도 용기가 생겨 따라서 긋고 식사 전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끝내니 다른 팀 원들이 저에게 성당에 다니는지 물어보더니 자연스레 성당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알고 보니 팀장님의 어 머니께서도 성당을 다니고 계셨고, 다른 팀원도 가톨 릭 신앙과 인연이 있었습니다. 긴장했던 첫 식사 자..

세대간 소통 2025.03.06

말씀의 이삭 | 메테오라에서 만난 예수님

메테오라에서 만난 예수님  누구에게나 쿵쿵 가슴 뛰게 했던 일이 하나쯤은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15년 전, 사도 바오로의 길을 따라 그리스와 튀르키예로 떠났던 성지순례가 그랬습니다. 성 지 가운데에서도 가장 가슴 뛰었던 장소는 그리스의 메테 오라였습니다. 황량한 벌판에 돌연 솟아오른 듯한 거대하 고도 기묘한 바위 기둥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 심장 이 뛰고 피가 용솟음치는 것 같았습니다. 좁은 바위 위에 아찔하게 세워져 있거나 깍아지른 절벽 위에 붙어 있는 수도원은 경이롭고 신비롭기까지 했습니다. 바위 사이 구 름다리 형태의 계단을 올라 마주한 트리니티 수도원은 짜 릿함의 극치였습니다. 아름다운 이콘화로 꾸며진 성당 내 부는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만들 수 없는 신적인 공간으 로 다가왔습니다. ‘왜 ..

세대간 소통 2025.03.04

‘내로남불’과 ‘마음의 선한 곳간’ |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님(서울대교구장)

‘내로남불’과 ‘마음의 선한 곳간’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님(서울대교구장)  오늘 우리는, 루카복음 6장 예수님의 ‘평지 설교’의 한 부분을 복음으로 들었습니다. 첫 부분은 ‘형제 눈 속의 티 는 보면서, 제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내용이고,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라는 말씀은 두 번째 부 분입니다. 마태오복음의 ‘산상 설교’에도 비슷한 말씀이 나 옵니다. 그런데 작은 차이점은, 마태오복음은 ‘좋은 열매, 나쁜 열매’를 언급하신 다음,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 는 모두 잘려 불에 던져진다.”(7,19)라는 심판의 말씀으로 결론을 맺는 데 반해, 오늘 루카..

사제의 공간 2025.03.01

말씀의 이삭 | 예수님을 몰랐더라면

예수님을 몰랐더라면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저에게 청천벽력 같은 선 고가 떨어졌습니다. ‘제1형 당뇨병’이라는 선고였죠. 췌장 에서 인슐린을 제대로 생성하지 못하는 병을 말하는데 유 년기에 많이 발생하여 ‘소아 당뇨’라고도 불리고, ‘인슐린 의존성 당뇨병’이라고도 불립니다. 유전도 아니고 정확한 원인이 밝혀진 바 없는 이 병을 처음 선고받았을 때는 눈 앞이 깜깜했습니다. 당시 저의 나이는 25살이었습니다. 한창 하고 싶은 일도 많았는데 이런 병에 걸리다니! 받아 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많이 먹거나, 술, 담배를 하거나, 생활 습관이 문제거나, 운동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병에 걸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평생 인슐 린 주사를 맞아야 하고, 음식을 조절하며 살아야 하고, 합 병증을..

세대간 소통 2025.02.25

말씀의 이삭 | 사람 사이의 하느님

사람 사이의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저와 함께하심을 드러내 보 여 주시곤 합니다. 아내에게 반해 한국으로 온 저는 춘천에서 공부를 마 친 후, 취업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가 주어졌습니 다. 하지만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이 있는 서울은 집값이 너무 비쌌습니다. 학생이었던 저에게 모아 놓은 돈이 있 을 리 없었죠. 막막하기만 하던 그때, 춘천에서 같이 공부 하던 친구가 서울에 사는 이모 댁에서 지내게 해 주었습 니다. 저는 친구도 친구지만 이모님이 이해되지 않았습니 다. 조카랑 함께 지내는 것도 아니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조카 친구’를 받아주시다니! ‘왜?’라는 질문이 절로 나왔 습니다. 하지만 제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인가요? 당장 ..

세대간 소통 2025.02.18

행복하게 역설을 살아가는 법 | 김민 요한 신부님_예수회(인권연대연구센터)

행복하게 역설을 살아가는 법                                                          김민 요한 신부님_예수회(인권연대연구센터)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질문에 꽤 잘 어울리는 답변 가운데 하나가 ‘역설을 살아가신 분’이라는 표현이라 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시지만 그다지 영광스 럽게 세상에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혼인도 아직 치르지 못한 처녀에게 잉태되셨으니까요. 또 태어나신 예수님 곁 에는 당시 그다지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던 목동들을 비 롯해, 심지어 동물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 자들 역시 어부나 세리였습니다. 결정적으로 예수님의 수 난과 죽음은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수치 그 자체였습니다. 사랑을 주었던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고,..

사제의 공간 2025.02.16

말씀의 이삭 | 하느님의 빅 픽처

하느님의 빅 픽처  돌아보니 인생의 절반 가까이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 다. 곧 있으면 반평생을 한국에서 살았다고 할 수 있겠네 요. 솔직히, 한국에 이렇게 오래 살 생각은 없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저는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등 과학 분야 에 관심이 많아서 과학 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이탈리아 는 낮 12시면 학교 수업이 끝나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 이 아주 많습니다. 그 시간에 저는 주로 축구를 하거나 베 이스 기타를 연주했는데, 특히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다 양한 분야를 책으로 접하고 습득했죠. 그러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는데, 당시에 저는 오만하게도 혼자 공부해서 안 되는 공부는 거의 없 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이든 책을 통해 스스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죠. 이 ..

세대간 소통 2025.02.11

말씀의 이삭 | 스며들 듯 오신 하느님

스며들 듯 오신 하느님  안녕하세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한국에 산 지 올해 로 18년 차 되는 ‘알베르토 몬디’입니다. 많은 분이 아시 듯 이탈리아 국민은 아주 오래전부터 가톨릭을 믿어 왔습 니다. 여전히 한국 문화에 불교와 유교 문화가 남아있듯, 이탈리아 문화에는 가톨릭 문화가 짙게 묻어 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름’입니다. 한국 가톨릭 신자분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알베르 토 씨는 세례명이 뭐예요?”입니다. 처음에 이 질문을 받았 을 때는 세례명이 무엇인지 몰라서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 다. 이탈리아에서는 세례명이라는 것이 따로 없기 때문이 죠. 아이가 태어나면 대부분의 부모님은 성인(聖人) 이름 중 에 하나를 정해서 이름으로 지어줍니다. 그러니 이탈리아 사람에게는 이름이 곧 세..

세대간 소통 2025.02.04

그리스도께 불꽃을 댕겨 받자 | 이경상 바오로 주교님(서울대교구 보좌주교)

그리스도께 불꽃을 댕겨 받자                                                              이경상 바오로 주교님(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우리는 주님 봉헌 축일, 빛의 축일을 지냅니다. 이날은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고통이 깔 린 우리 삶 한가운데에서도 용기를 내어 희망하며 살기로 다짐하는 날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성전에 봉헌되 심은 희생을 통해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 다. 오늘 축성되는 초는 이 헌신과 봉헌의 빛을 나타내는 가장 아름다운 상징입니다. 제1독서 말라키서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예언서입니 다. 말라키 예언자가 활동하던 때는 유배에서 돌아온 히 브리인들이 이미 수십 년 전에 성전을 재건했으나, 우울 과 절망 속..

사제의 공간 2025.02.04

청소년 특집 | 우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은?

우리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은?  청소년 시절, 저는 정말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공 부도 운동도 특별히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항상 중 간 정도여서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죠. 남들 앞에 나서 는 것도 주목받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서 초, 중, 고등 학교 시절 반장이나 회장 같은 임원도 한 번 맡아본 적 이 없었습니다. 키도 체격도 늘 평균 정도를 유지하는 조용한 학생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성당에만 오면 저는 무언가 특 별한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 시 작한 전례부에서는 그저 앞에 나와 또박또박 기도문을 읽고 내려왔을 뿐인데 큰 칭찬을 받았고, 매주 성당에 빠지지 않고 나가기만 해도 선생님들과 신부님의 사랑 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성당에 오면 저를 필요로 하는..

세대간 소통 2025.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