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복음
하느님께서 돌리시는 거대한 수레바퀴 속에 작은 점들 이 모여 우주를 밝힙니다. 제가 그림을 시작한 것도, 인체 를 그리게 된 것도, 우연히 흙 작업을 하게 된 것도 그분 의 섬세한 계획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깨닫습니다. 묵주 기도 책을 시작으로 사순 묵상, 실크로드를 비롯해 인도, 아프리카 여행길, 사도 바오로, 이육사, 에밀 타케 신부님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 이르기까지 무던히도 다 양한 주제를 담은 책 작업으로 주님께서는 저를 혹독하게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림과 조각으로 쉼 없이 달린 저는 마침내 신약성경 을 주제로 3년에 걸쳐 여러 교구 주보 표지에 들어갈 그 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림으로 읽는 복음! 말씀 자체 이신 주님을 담아내는 성경 속 여행은 방대한 대서사시였 습니다. 작은 사이즈의 그림이지만 조금도 소홀히 여길 수 없는 하늘의 이야기를 담아내야 하는 작업! 인쇄 효과 를 위해 크기를 정하고, 밑 작업으로 젤스톤을 바르고 여 러 재료를 덧입혀 그림의 깊이를 더해야 했습니다. 일주 일에 한 장씩 그려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껴안고 산책할 때나, 부엌에서나, 기차 안에서나, 꿈속에서도 머릿속은 늘 그 주일의 주제로 가득 찼습니다. 볼 수 없는 하느님을 그려야 하거나, 6주 동안 계속해서 동일한 주제의 말씀일 때, 사랑, 용서, 삼위일체, 그리움 등등 추상적인 언어를 그림으로 풀어야 할 때마다 제 역량의 한계를 얼마나 느 꼈던지요.
어느 캄캄한 밤, 남편과 삼릉 소나무 길을 산책하다가 발목을 접질렸습니다. 발목 위로 벼락치듯 불꽃이 튀었 어요. 복숭아뼈에 금이 간 것입니다. 석 달 동안 깁스를 하고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했습니다. ‘하느님 일을 열 심히 하고 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어느 순간 그 분께서 귀한 선물을 주셨음을 깨달았습니다. 겸손! 또 겸 손! 주님을 따라가는 여정을 걷기 위해서는 낮아지고 작 아져야만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간절한 기도 를 드리고, 성경 말씀을 눈으로 마음으로 따라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께서 하신 이 말씀이 온 세포를 타고 마음에 와 박혔습니다. 예수님의 전 삶을 그 리는 시기에 저를 붙잡아 주신 말씀입니다. 그렇게 그리 스도의 향기로 가득한 날들이 지나가고, 쌓여가는 그림 을 다시 보기가 두려워 촬영 후 바로 덮어 두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화실 바닥에 떨리 는 마음으로 그 많은 그림을 하나씩 펼쳐 보니, 고민하던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그림 속에 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울음은 그분의 위로였을까요? 저의 작은 시간 위로 하느 님의 시간이 머무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고백을 제 입술에 담아 주님께 올립니 다. “살아 계시는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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