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테오라에서 만난 예수님
누구에게나 쿵쿵 가슴 뛰게 했던 일이 하나쯤은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15년 전, 사도 바오로의 길을 따라 그리스와 튀르키예로 떠났던 성지순례가 그랬습니다. 성 지 가운데에서도 가장 가슴 뛰었던 장소는 그리스의 메테 오라였습니다. 황량한 벌판에 돌연 솟아오른 듯한 거대하 고도 기묘한 바위 기둥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 심장 이 뛰고 피가 용솟음치는 것 같았습니다. 좁은 바위 위에 아찔하게 세워져 있거나 깍아지른 절벽 위에 붙어 있는 수도원은 경이롭고 신비롭기까지 했습니다. 바위 사이 구 름다리 형태의 계단을 올라 마주한 트리니티 수도원은 짜 릿함의 극치였습니다. 아름다운 이콘화로 꾸며진 성당 내 부는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만들 수 없는 신적인 공간으 로 다가왔습니다.
‘왜 이토록 높은 곳에 수도원을 지었을까?’ 기적이 공공 연히 일어날 것 같기도 하고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릴 것 만 같았습니다. 메테오라의 이곳저곳을 열정적으로 스케 치하며 달려온 마지막 날, 2평 남짓한 작은 경당에 들어 갔습니다. 정면에 등신대 높이의 황금빛 십자가가 서 있 었는데 예수님께서 어찌 그리 슬픈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계시던지요.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지나온 삶의 마디마디 맺혀 있던 아픈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 쳐 갔습니다.
젊은 시절, 저와 10살의 나이 차이가 나고 왼손이 없는 열정의 청년 화가를 사랑했던 저는 큰 벽에 부딪쳐야만 했습니다. 저를 끔찍이도 사랑했던 막내 오빠가 담판을 내자며 불같이 화를 냈던 것입니다. 저는 그때 겁없이 대 들었습니다. “육체의 장애보다 더 무서운 장애는 왜 보지 않느냐? 젊은 두 사람이 한마음으로 사랑한다면 이루지 못할 게 뭐냐?” 순간 오빠 손에 들려 있던 각목이 부서지 고 제 입에선 비명이 새어 나왔습니다. 짙은 어두움이 주 변을 감싸고 있을 때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이 제 등에 닿 았습니다. “네가 12폭 치마로 그를 감싸고 살 수 있다면 엄마는 괜찮다. 그러나 잊지 말아라. 12폭 치마를…. ”
그 어머니의 딸은 또 자신이 딸을 낳고 갱년기가 지나 는 50대 후반의 여자가 되어, 온전히 펼치지 못한 아쉬운 꿈들과 열망의 끝자락에서 슬픈 눈의 예수님을 만났던 것 입니다. 흐르는 눈물과 콧물을 내버려둔 채 얼마나 긴 시 간이 지났을까요. 따뜻하게 감싸 주시는 주님의 손길에 저의 영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면 에서 들려오는 주님 음성에 귀 기울이며 그동안 사랑으로 함께해 주신 고마운 분들을 위해 가느다란 밀납초를 하나 하나 밝혔습니다. 그 작은 공간 안에서 저는 촛불의 향연 이 빚어내는 축복의 시간을 영원처럼 즐겼습니다.
15년 전 메테오라에서 만난 예수님을 기억하며 오늘도 저는 변함없는 사랑으로 저희를 살리시는 예수님을 정성 스레 화폭에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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