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전 기도의 용기
몇 년 전, 원하던 회사에 취업을 하고 팀 발령을 받 아 처음으로 팀원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였습니다. 식 사 전 기도를 바치는 것이 습관이었지만, 저는 왠지 모 르게 성호를 긋는 것이 잠시 망설여졌습니다. 모든 것 이 눈치 보이는 첫 직장에서, 혹시나 성호를 크게 그었 다가 누군가에게 거부감이라도 줄까 걱정했던 것입니 다. 그때, 옆에 앉아있던 팀 선배가 먼저 성호를 그었 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도 용기가 생겨 따라서 긋고 식사 전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끝내니 다른 팀 원들이 저에게 성당에 다니는지 물어보더니 자연스레 성당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알고 보니 팀장님의 어 머니께서도 성당을 다니고 계셨고, 다른 팀원도 가톨 릭 신앙과 인연이 있었습니다. 긴장했던 첫 식사 자리 의 따뜻한 감싸옴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저의 어머니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하십니다. 어 머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는데, 전에는 식사 전 기 도를 할 때 손바닥에 작게 성호를 그리는 것으로 대신 했으나, 제가 첫영성체 교리를 들을 때 함께하셨던 부 모 교리 시간 때 “성호는 크게 그어야 한다.”는 수녀님 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께 한 약속대로 크게 성호를 긋 기 시작하셨답니다. 초등학교 특성상 교실에서 아이 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매일 성호를 긋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보여주게 되었는데, 이를 보 고 어떤 아이는 “선생님, 방금 하신 게 뭐예요?”라며 궁금해하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선생님, 저도 사실 성당 다녀요.”라며 부끄러운 듯 와서 속삭이기도 했다 고 합니다. 이에 어머니는 가톨릭 신자답게 더 바르고 단단한 선생님이 되기 위해 노력하셨다고 종종 말씀 하셨습니다.
이처럼 성호경을 긋고 바치는 식사 전 기도는 아주 짧은 기도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처음 시작이 어려울 뿐 막 상 시작하면 계속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습 니다. 이렇게 시작한 기도는 일상 안에서 가톨릭 신자 들을 서로 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또 신자가 아 닌 지인들과도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 은 대화 소재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매 끼니 때 바치는 기도가 습관이 되니 이제는 더 나아가 삼종기도, 화살 기도도 자주 바치게 되고 그때마다 성호를 긋는 것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더 자주 바치게 되니, 바쁜 하루 중 주님을 만나는 틈새 여유 시간이 그만큼 더 생겼습니다. 운전을 하기 위해 차를 탈 때는 안전 운전을 다짐하며, 기쁜 일이 생기면 감사 기도를 위해, 누군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의 건강을 청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성호를 긋게 됩니다.
오늘도 기도 중 주님과 가까워지기를, 그리고 예전 의 저처럼 성호 긋기를 망설이고 있는 누군가가 저를 보고 용기를 얻기를 바라며 크게 성호를 그어봅니다. 그러다 보면 사랑의 하느님이 항상 제 곁에 계시는 듯 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세대간 소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씀의 이삭 | 메테오라에서 만난 예수님 (0) | 2025.03.04 |
---|---|
누룩 | ‘나’ & ‘우리 함께 together’ (0) | 2025.03.01 |
말씀의 이삭 | 예수님을 몰랐더라면 (0) | 2025.02.25 |
누룩 | 예수님 깨우기 (0) | 2025.02.22 |
방주의 창 | 어디에서 죽을 것인가? (0) | 2025.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