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의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저와 함께하심을 드러내 보 여 주시곤 합니다.
아내에게 반해 한국으로 온 저는 춘천에서 공부를 마 친 후, 취업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가 주어졌습니 다. 하지만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이 있는 서울은 집값이 너무 비쌌습니다. 학생이었던 저에게 모아 놓은 돈이 있 을 리 없었죠. 막막하기만 하던 그때, 춘천에서 같이 공부 하던 친구가 서울에 사는 이모 댁에서 지내게 해 주었습 니다. 저는 친구도 친구지만 이모님이 이해되지 않았습니 다. 조카랑 함께 지내는 것도 아니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조카 친구’를 받아주시다니! ‘왜?’라는 질문이 절로 나왔 습니다. 하지만 제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인가요? 당장 친구의 이모 댁으로 들어갔고 이모님은 남편과 세 아이까 지 총 다섯 식구가 살고 있는 집에 기꺼이 방 하나를 내어 주셨습니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 도 아니고, 지내는 동안 월세나 식비를 내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무료로 숙식을 제공해 주신 겁니다.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한 국이니까 가능한 정(情)의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 문 화의 정은 사람 사이의 하느님을 느끼게 해주고 이웃과 사랑을 나누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느끼게 하는 문화라 생각합니다. 놀이터만 가도 내 아이, 남의 아이 할 것 없 이 간식을 나누어 주는 부모님이나, 무턱대고 찾아온 외 국인을 조기 축구회에 끼워주는 아저씨나 모두에게 정이 있고, 그 사이에 하느님이 계신 거죠.
하지만 결혼은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죠. 아내의 부모님은 신실한 개신교 신자 십니다. 외국 사람인 건 둘째 치고, 천주교 신자인 사위 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으셨을 겁니다. 아내와 저도 이 부 분이 고민이었는데 결혼을 결심하고 찾아뵌 ‘저의 신부님’ 과 ‘아내의 목사님’이 동시에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 다. 마치 두 분이 짜기라도 한 것처럼 저희에게 똑같은 말 씀을 해주신 겁니다. 그 말씀은 바로 “두 사람 사이의 주 님을 사랑하세요.”였습니다. ‘나의 하느님’, ‘너의 하나님’ 이 아니라 저희 둘 사이에 계시는 주님을 사랑한다면 전 혀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는 말씀이셨죠. 저희 둘은 해답 을 얻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깨달음의 순간이었기에 지금 도 그때를 생각하면 뭉클해 집니다.
저희는 신부님과 목사님 두 분을 모두 모시고 결혼식 을 올렸고, 그 이후부터 저는 더 깊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하느님을 발견하고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아내와 저 사 이는 물론이고 전혀 다른 모습, 다른 성격, 다른 문화의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도, 또 다른 종교, 다른 인종, 다른 국가의 사람 사이에서도 말이죠. 그 모든 사람 사이에는 분명 하느님이 계십니다.
글·구성 서희정마리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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