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 불꽃을 댕겨 받자
이경상 바오로 주교님(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우리는 주님 봉헌 축일, 빛의 축일을 지냅니다. 이날은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고통이 깔 린 우리 삶 한가운데에서도 용기를 내어 희망하며 살기로 다짐하는 날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성전에 봉헌되 심은 희생을 통해 세상의 빛이 되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 다. 오늘 축성되는 초는 이 헌신과 봉헌의 빛을 나타내는 가장 아름다운 상징입니다.
제1독서 말라키서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예언서입니 다. 말라키 예언자가 활동하던 때는 유배에서 돌아온 히 브리인들이 이미 수십 년 전에 성전을 재건했으나, 우울 과 절망 속에서 냉소주의와 불경이 자리 잡은 채 성전 중 심의 영성이 쇠퇴한 시기였습니다. 말라키 예언자는 천주 성부께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새로운 계약을 맺도록 탁 월한 계약의 사자(使者)를 보내 성전을 정화하실 거라 예언 합니다. 후대에 그리스도인들은 말라키가 기다리던 이가 바로 나자렛 예수님이었음을 확인하고 기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분은 실제로 성전에 봉헌되십니다. 하느님께서 백성에게 약속하신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리 던 노인 시메온은 아기 예수님을 받아 안고, 지극한 사랑 의 전달자이신 그분의, 희생으로 점철된 인생을 예언합니 다.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인간이 하느님을 심판하 는 세상이기에, 그들은 메시아인 예수님을 심판하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반대 받는 표징이 되어 성 모님의 영혼이 꿰찔리는 상황이 전개되리라는 얘깁니다. 이는, 인생에는 비극적인 요소가 많이 있기 마련이지만, 비극을 통과하면서 생의 성취도 있음을 암시하는 말입니 다. 성모님의 일생에도 비극적인 요소가 아주 많았습니 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인간은 그런 상처 때문에 오히려 연민과 이해가 깊어지면서 슬픔을 당하는 이들의 안위가 되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권능이 작동하는 대목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생을 상징하는 초, 특히 부활 성야의 부활초를 봉헌함으로써 몸소 빛으로 세상을 밝혀주 신 그리스도를 기억합니다. 예수님께서 평생 천주 성부께 로부터 오는 사랑의 불꽃을 피우기 위해 자신을 태우고 불 사르셨듯이 우리도 그리 살아가라는 가르침을 되새기는 것 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소멸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하느 님을 기쁘게 하는 영원한 생명의 길이 됨을 주님께서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다른 데서가 아니라, 그리스 도로부터 불꽃을 댕겨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분과 함께 빛 을 발하는 삶이 되도록 아주 작은 마음가짐이나 행동에서 부터 빛의 자녀다운 실천을 해 보면 좋겠습니다. 인생의 슬 픈 요소들을 넘어서서 나도 모르게 온 누리에 기쁨이 되고 빛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변할 수 있습니다. 빛으 로 드러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형제로 부르셨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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