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이삭 67

말씀의 이삭 | 사람 사이의 하느님

사람 사이의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저와 함께하심을 드러내 보 여 주시곤 합니다. 아내에게 반해 한국으로 온 저는 춘천에서 공부를 마 친 후, 취업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가 주어졌습니 다. 하지만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이 있는 서울은 집값이 너무 비쌌습니다. 학생이었던 저에게 모아 놓은 돈이 있 을 리 없었죠. 막막하기만 하던 그때, 춘천에서 같이 공부 하던 친구가 서울에 사는 이모 댁에서 지내게 해 주었습 니다. 저는 친구도 친구지만 이모님이 이해되지 않았습니 다. 조카랑 함께 지내는 것도 아니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조카 친구’를 받아주시다니! ‘왜?’라는 질문이 절로 나왔 습니다. 하지만 제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인가요? 당장 ..

세대간 소통 2025.02.18

말씀의 이삭 | 하느님의 빅 픽처

하느님의 빅 픽처  돌아보니 인생의 절반 가까이 한국에서 살고 있습니 다. 곧 있으면 반평생을 한국에서 살았다고 할 수 있겠네 요. 솔직히, 한국에 이렇게 오래 살 생각은 없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저는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등 과학 분야 에 관심이 많아서 과학 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이탈리아 는 낮 12시면 학교 수업이 끝나기 때문에 혼자만의 시간 이 아주 많습니다. 그 시간에 저는 주로 축구를 하거나 베 이스 기타를 연주했는데, 특히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다 양한 분야를 책으로 접하고 습득했죠. 그러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는데, 당시에 저는 오만하게도 혼자 공부해서 안 되는 공부는 거의 없 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이든 책을 통해 스스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죠. 이 ..

세대간 소통 2025.02.11

말씀의 이삭 | 스며들 듯 오신 하느님

스며들 듯 오신 하느님  안녕하세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한국에 산 지 올해 로 18년 차 되는 ‘알베르토 몬디’입니다. 많은 분이 아시 듯 이탈리아 국민은 아주 오래전부터 가톨릭을 믿어 왔습 니다. 여전히 한국 문화에 불교와 유교 문화가 남아있듯, 이탈리아 문화에는 가톨릭 문화가 짙게 묻어 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름’입니다. 한국 가톨릭 신자분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알베르 토 씨는 세례명이 뭐예요?”입니다. 처음에 이 질문을 받았 을 때는 세례명이 무엇인지 몰라서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 다. 이탈리아에서는 세례명이라는 것이 따로 없기 때문이 죠. 아이가 태어나면 대부분의 부모님은 성인(聖人) 이름 중 에 하나를 정해서 이름으로 지어줍니다. 그러니 이탈리아 사람에게는 이름이 곧 세..

세대간 소통 2025.02.04

말씀의 이삭 | 내가 너를 사막으로 불러내 너에게 사랑을 속삭여 주리라

내가 너를 사막으로 불러내 너에게 사랑을 속삭여 주리라  안토파가스타는 아타카마 사막 한켠에 세워진 도시입 니다. 사막과 바다가 접해 있어 비할 수 없이 아름답지만, 척박한 바위와 흙모래 위에 세워졌기에 낯설고 삭막한 곳 이기도 합니다. 이 공동체에 저를 파견하면서 원장 수녀 님이 하신 말씀은, 무엇보다도 먼저 건강하게 적응하기 위해 마음을 쓰라는 당부였습니다. 수녀님의 염려와는 달 리 부드러운 선과 다양한 색깔로 시시각각 변하며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사막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저의 삶은 매 순간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저는 공동체에서 서로 연배가 비슷한 두 분의 칠레 수 녀님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40년을 넘게 함 께 살아오면서 서로를 신뢰하고 있다는 점은 물론이고 삶 의 체험도 비슷하여..

세대간 소통 2025.01.28

말씀의 이삭 | 다니엘이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다니엘이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10여 년 전, 안토파가스타에서 처음 그 아이를 알게 되 었는데, 그때 다니엘의 나이는 네 살이었습니다. 호기심으 로 반짝이는 두 눈에, 똘똘함이 가득한 귀여운 꼬마였습니 다. 다니엘은 일주일에 한두 번 할머니의 손을 잡고 바오로 딸 서원에 찾아와 수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림책도 보며 우리에게 아주 반가운 손님이 되었습니다. 직장 생활 을 하는 엄마와 아빠 때문에 할머니의 손에 자란 다니엘은 말하는 폼이나 생각하는 것이 또래들과는 달리 의젓하고 거침이 없었습니다. 한동안 뜸하던 그가 어느 날, “수녀님, 저 복사됐어요.”라며 찾아왔습니다. 빛나는 눈엔 기쁨이 가 득 찼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매일 미사에 오던 다니엘에게 특별히 복사단 입단을 허락하셨고, 다니엘은 신자들..

세대간 소통 2025.01.21

말씀의 이삭 | 빅토르 할아버지

빅토르 할아버지  빅토르 할아버지는 길에서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생김 새조차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길게 헝클어진 머리와 수염, 큰 키에 바짝 마른 두 발에는 신발도 없었습니다. 70세는 족히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는 피노체트 독재 정 권 시절 정보 경찰 출신으로 민주 인사들에게 고문을 가 하던 경찰이었다는 것, 그 후유증으로 정신 이상자가 되 어 10년을 넘게 떠돌아다니며 지낸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는 같은 자리에 조용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을 쳐다보며 웃기도 하고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습니다. 가끔 기분이 나빠지면 소리를 지르거나, 지나가는 이들 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통에 다른 노숙인들과 달리 친 구도, 강아지도 할아버지를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저를 보면 “중국 공산주의자..

세대간 소통 2025.01.14

말씀의 이삭 | 칠레 남쪽 사람들은 친절하고 사랑이 넘칩니다

칠레 남쪽 사람들은 친절하고 사랑이 넘칩니다  20년 전 칠레에 도착한 후 5개월의 스페인어 공부를 마치고 콘셉시온 공동체로 파견을 받았습니다. 콘셉시온 은 산티아고에서 500킬로미터 떨어진 남쪽의 도시입니 다. 시원한 맑은 공기에 잘 정돈된 도시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두 명의 칠레 수녀님, 한 명의 이탈리아 수녀님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대학이 여럿 모여있는 콘셉시온은 청년 사목과 함께 성소 사목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었고, 다른 지역에 비해 사제와 수도자 성소도 많은 지역입니다. 휴가철, 칠레 교 회 젊은이들은 한 지역을 찾아 지역 주민들과 함께 신앙 체험을 나누는데, 이를 미션이라 합니다. 우리 수도회도 성소 사목의 일환으로 산티아고의 젊은이들과 함께 콘셉 시온 가까이 ‘..

세대간 소통 2025.01.07

말씀의 이삭 | 이유 있는 시련, 늦은 감사

이유 있는 시련, 늦은 감사  저의 시작은 화려했습니다. 딱히 무명 시절이라고 할 것도 없이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모델로서도, 배우로서도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작은 역할이 라도 얻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간절함이 무엇인지 알지 못 한 채, 꽤 오랫동안 연예계 활동을 했습니다. 그때는 그것 이 당연하다고까지 여기며 ‘이 역할은 분량이 너무 적다, 이 역할은 내가 돋보이지 않는다.’ 등의 이유로 들어오는 작품을 거절하는 일도 잦았습니다. 그런 저의 오만함이 흔 들리기 시작한 것은 데뷔한 지 십여 년 정도 흘렀을 때였 습니다. 저에게 들어오는 작품 수가 현저히 줄고 있었습니 다. 작품이 준다는 건, 더 이상 배우로서 매력이 없다는 뜻 과 같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그토록 높았던 자 ..

세대간 소통 2024.12.31

말씀의 이삭 | 기도로 이어지는 사랑

기도로 이어지는 사랑  제가 하느님을 알고 지금껏 그분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다 저희 외할머니 덕분입니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헤아려보면, 방 한쪽에서 열심히 기도드리시 던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친척들이 저희 집에 한 꺼번에 올 일이 있어도, 항상 할머니는 저녁에 함께 기도 하자며 가족들을 모으셨었습니다. 두런두런 둘러앉아 할 머니와 함께 묵주기도를 드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또, 그렇게 묵주기도가 끝나고 나면 다시금 방에 홀로 들어가 서 기도를 이어가시던 모습까지도요. 할머니는 항상 기도하며 사신다는 것이 삶에서 느껴지 는 분이기도 하셨습니다. 너무나 인자하신 분이셨고, 저 는 끝내 할머니가 화를 내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 습니다. 그 어떤 실수를 하고 주저앉아 있..

세대간 소통 2024.12.24

말씀의 이삭 | 내가 성당을 찾는 이유

내가 성당을 찾는 이유  저는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익숙지 않습니다. 힘들어도 괜 찮은 척하고, 슬퍼도 행복한 척하며 아픔을 어떻게든 숨 기려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것인데, 왜 그렇게 싫을까요. 아마 저에게는 두려움이 있 는 것 같습니다. 부족한 점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였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약점 잡히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혹 시 무시라도 당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 그런 수많은 두려움이 제 안에 웅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그런 두려움 속에서 온전히 빠져나왔다고 자신 하기는 어렵지만, 요즘은 그런 견고한 제 안의 장벽이 조 금씩 허물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성당에 다시 나오기 시작 하면서부터 시작된 일입니다. ..

세대간 소통 2024.12.17

말씀의 이삭 | 비워서 생기는 마음의 평화

비워서 생기는 마음의 평화  30살이 막 되었을 무렵 산티아고 성지순례를 다녀왔습 니다. 사실 그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저 친한 언니들 이 가자는 말에 가볍게 여행가는 마음으로 따라나섰을 뿐 이었습니다. 침낭을 챙겨야 한다는 언니의 말에, 저는 7 세 이하 어린이들이 쓰는 귀엽고 작고 예쁜 침낭을 챙겼 습니다. 예쁜 등산복에 드라이기와 화장품도 잔뜩 챙겨서 배낭에 넣고 룰루랄라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순례 시작지인 생장으로 가기 위해 들른 파리 공항에서 이미 시련은 시작되었습니다. 호텔을 찾아 헤맨 지 1시간이 되었을 즈음, 외국어 하나도 못 하는데 여길 무슨 생각으로 왔나 하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공항조차 빠져나가지 못하고 빙빙 돌고 있었기 때 문입니다. 순례가 시작되고 나서, 이 불..

세대간 소통 2024.12.10

벼랑 끝에 서고나니 올 데가….

벼랑 끝에 서고나니 올 데가….  한 때 저희 가족도 주일만 되면 독실하셨던 할머니와 함 께 온 가족이 미사에 참례하러 가는 것이 당연할 때가 있 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였던 제게 미사는 왜 그리 재미없 던지요. 저는 그저 일요일 아침에는 늦잠도 자고 티브이나 보면서 놀러 가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던 그야말로 철부지 였습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부산으로 전학 을 갈 무렵, 식구들이 다 흩어지게 되었고, 저는 그때부터 하느님을 외면하며 살았습니다. 무려 20여 년을요. 그러던 어느 날, 뒤돌아보니 저는 어느새 30대가 되었 고, 그 무렵 한창 어려움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 니다. 살면서 누구나 위기를 맞는다고는 하지만, 저는 너 무나 나약해져 있었기에, 당장 내일이라도 삶이 끝날 것 만 같은..

세대간 소통 2024.12.03

말씀의 이삭 | 흥! 아무리 막아봐라!

흥! 아무리 막아봐라!  제가 유일하게 하느님과 지키는 약속이 있다면, 그건 ‘절 대 주일미사를 거르지 않겠다.’는 겁니다. 2009년 주님께 다시 돌아온 후로는 이 약속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습니다. 서울에 있을 때는 문제 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동네마다 성당이 있고 미사 시간도 새벽부터 밤까지 다양하게 있으 니까요. 하지만 지방이나 해외는 녹록하지 않을 때가 많습 니다. 얼마 전, 체코 프라하에 갔을 때가 그랬습니다. 프라하의 성 비투스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바로 다 음 장소로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었습니다. 반드시 ‘이곳’ 에서 ‘이 시간’에 ‘미사’를 드려야 했죠. 유럽의 성당 대부 분이 그렇듯 성 비투스대성당도 유명 관광지 중 하나입니 다. 체코의 중심부인 프라하성 안에 있는 이 성당은 역..

세대간 소통 2024.11.26

말씀의 이삭 | 혀만 남았다고?

혀만 남았다고?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가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달려온 덕분에 제 이름 앞에는 ‘일타강사’라는 수식 어가 붙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제 강의를 듣는 학생이 늘 어났고 그에 비례하여 수입도 늘게 되었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뿐인데 과분하게 받고 있다는 생각에 ‘기부’라는 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생전 기부를 해봤어야 알죠.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무작정 성당 사무 실을 찾아갔습니다. 가톨릭과 관련된 기관에 기부하고 싶 다고 했더니, 그분은 무심히 “까리따스로 연락 한 번 해보 세요.”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저의 기부는 ‘까리따스알 코올회복센터’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알코올회복센터는 알코올 의존 상태에 놓인 사람들을 돕는 곳인데 재정적인 문제로 문..

세대간 소통 2024.11.19

말씀의 이삭 | 수능을 축하하는 이유

수능을 축하하는 이유  저는 수학을 사랑합니다! 제 고백을 들은 사람들의 반 응은 하나같습니다. “우와, 수학이요? 수학 사랑하는 사 람 처음 봐요. 전 수포자(수학은 포기한 자)였거든요.” 대부분 의 대한민국 국민이 학창 시절에 수포자가 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수학 문제를 풀 때, ‘과정’이 아니라 ‘답’이라 는 결과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 라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고 답 을 맞혔는지, 틀렸는지, 그래서 몇 개를 맞혔는지에만 관 심을 두니까요. 그렇게 생각했다면 저도 수학을 사랑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다행히 저는 결과보다는 수학 문 제를 푸는 과정을 즐기는 편이었습니다. 하나의 수학 문제를 푸는 방법은 아주 다양합니다. 문 제집 해설서에 나오는 방법..

세대간 소통 2024.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