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이삭 30

말씀의 이삭 | 간절한 기도의 힘

간절한 기도의 힘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 어느 날, 꼭 잡은 할머니의 손은 참 따뜻했습니다. 몇 살 때였는지,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 지, 그날 눈이 내렸는지는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추위를 녹인 그 온기만큼은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할머니 허리에 닿을락 말락 한 키의 아이 눈에 비친 동 네 성당은 무척이나 크고 높았습니다. 무언가 강렬한 기운 에 압도된 소년은 별생각 없이 어머니를 따라 눈을 감은 뒤 두 손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아주 자연스럽게 하느님과 만 났고, 주일마다 가는 성당은 일상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얼마 전 스트리밍 된 영화 공개를 앞두고서도 성당을 찾아 하느님께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비록 예 전처럼 그곳에서 자주 미사를 드리지는 못하지만, 기도 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

세대간 소통 2024.01.09

말씀의 이삭 | 가진 것을 다 팔아 하늘에 보화를 쌓은 사람

가진 것을 다 팔아 하늘에 보화를 쌓은 사람 아버지가 선종하시고 나서 깨닫게 된 것이 부친 토마스 아 퀴나스 님은 가진 것을 다 팔아 하느님 나라를 사려했던 분이 라는 사실입니다. 저희 집안은 전통적인 구교 집안도 아닌데 큰 아이는 수녀, 둘째 아이는 수사신부가 됐습니다. 막내는 약 10년을 사제 혹은 수도자 성소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아 이였습니다. 하지만 자기 계획과는 달리 결혼 성소를 이뤄 예 쁜 딸을 둘이나 키우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아무리 하느님께 서 무상으로 주시는 분이라고 하지만 저는 사람의 노력이 아 주 조금이라도 들어가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 은 몰라도 제가 수도자가 된 것은 좀 맥락이 안 잡히는 일이 었습니다. 제가 노력한 건 조금도 없으니 아버지가 벌인 일 에 하느님께서..

세대간 소통 2024.01.02

말씀의 이삭 | 너는 혼자가 아니야

너는 혼자가 아니야 청년들의 고독사를 다룬 뉴스들이 종종 들려옵니다. 옛 날엔 막연히 ‘딱한 일이네.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며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를 위해 짧은 화살기도를 올렸습니다. 하 지만 자립준비청년들과 만나는 사목을 하면서부터는 그런 소식이 들려오면 심장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퇴소한 청년 중 누군가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근심이 몰려옵니다. 작년 초에 연락이 두절됐다가 5월의 끝자락에 홀로 주 검으로 발견된 요셉이 설마 설마 했던 근심을 현실로 대면 하게 했던 청년이었습니다. 키워주신 수녀님에게 찾아오 겠다는 전화만 해놓고 갑자기 연락이 두절된 터라 수녀님 은 너무 걱정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요셉과 친분이 있었 던 요셉의 후배와 함께 예전에 요셉이 자기 직장이라고 알 려줬던 충남 홍성의 축산 ..

세대간 소통 2023.12.26

말씀의 이삭 | 밥부터 먹고 보자

밥부터 먹고 보자 저는 은평구 응암역과 역촌역 사이에 위치한 ‘밥집알로’ 라는 식당에서 자립준비청년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자립준 비청년은 아동양육시설에서 퇴소한 청년들을 통칭하는 말 입니다. 이들이 저녁 한 끼를 든든히 먹으러 오는 밥집알로 는 말이 식당이지 가정집을 임대하여 청년들과 만나는 곳 입니다. 밥집알로에서 '알로'는 예수회 수도자로 살다가 어 린 나이에 하느님 곁으로 간 알로이시오 곤자가(1568~1591) 성인의 이름에서 왔습니다. 그가 청소년의 수호성인이라 의미 있었습니다. 게다가 응암역 근처에 이미 자립준비청 년들의 모임 공간 ‘까페알로’가 있었기에 이름이 서로 잘 어 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까페알로는 자립준비청년들의 사랑방 같은 기능을 염두 에 두고 생겼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예상과는..

세대간 소통 2023.12.19

말씀의 이삭 | 신부님은 이웃사촌

신부님은 이웃사촌 저는 참 운이 좋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는 어김없이 도움 을 주는 이들이 나타났고, 실수와 잘못조차도 더 좋은 날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으니까요. 훗날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 라 살아온 모든 시간에 주님이 함께하시며, 어리석고 악한 일까지 선으로 바꿔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연 이라 생각했던 모든 일이 저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었던 거죠. 신부님과 이웃사촌이 된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웃집 에 붙은 ‘천주교회’라는 현판을 보며 궁금증을 키워갈 때, ‘이냐시오 영신수련’이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새롭게 걸 렸습니다. 고민 끝에 전화를 걸었고 어머니와 함께 영신수 련을 시작했습니다. 학생은 어머니와 저, 둘뿐이었습니다. 신부님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으니, 어색하고 불편했습 니다...

세대간 소통 2023.11.14

말씀의 이삭 |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사랑 찬미 예수님! 행실로는 죄인이었으나 하느님의 은총으 로 주님의 자녀가 된 구경모 프란치스코 다미안 막시밀리 아노가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드리고 구원받은 자녀가 된 것에 기뻐하며 우리 주님 사랑의 기적을 전합니다. 저는 50이 넘도록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알았으나 믿지는 못하여 죄인이 되어 교도소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도 하느님 구원 사업의 일환이었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저를 당신의 자녀로 삼기 위한 사랑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믿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저 를 교도소로 보내시고도, 치매와 하반신 불수 그리고 언 어 장애가 있으신 저의 어머니와 생활 능력이 없으신 저 의 아버님도 저 모르게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사랑을 베 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회교정사목위원회를 통해..

세대간 소통 2023.10.24

말씀의 이삭 | 사랑하는 딸을 보내고

사랑하는 딸을 보내고 시누이가 다니는 본당의 수녀님께서 이끌어 주셔서 남 편과 딸, 가족 모두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가족 모두가 하 느님 말씀 안에서 살려고 노력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갔지 요. 그러나 누군가가 행복한 우리 가정을 시기라도 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던 딸이 죽었습니다. 그것도 6년 동안 사 귀던 남자 친구에게 살해되었습니다. 평온하고 행복했던 우리 가족의 일상은 그렇게 끝나버렸습니다. 말썽 한 번 피 우지 않았던 착하고 예쁜, 친구 같았던 무남독녀 외동딸이 그렇게 갔습니다. 이후의 삶은 온통 절망과 슬픔뿐이었습니다. 아니, 그 저 딸 곁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마음의 준비 와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보냈어도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 을 텐데, 한순간에 그렇게 가족 곁을 떠나갔기에 고..

세대간 소통 2023.10.17

말씀의 이삭 | 이끄심에 대한 응답

이끄심에 대한 응답 찬미 예수님! 백번을 생각해 봐도 제가 지금껏 살아오면 서 유일하게 잘한 일을 꼽으라면 하느님의 아들로 살다 죽 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저의 선택 이라기보다는 ‘이끄심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인간이 가 혹한 운명 앞에서 완강한 저항을 멈추고, 기력을 완전히 소 진했을 때, 하느님의 숨은 계획이 드러난다고 하죠. 사형선 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일 때였습니다. 어느 날 종교 담당 교도관님의 권유로 천주교 교정사목 위원회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계신 어머님들을 만나기 위 해 천주교 상담실에 들어섰습니다. 오랫동안 사형수들을 만나오신 어머님들 세 분이 기다리고 계셨는데, 그중 한 분 이 고(故) 김자선 엘리사벳 어머니셨습니다...

세대간 소통 2023.10.10

말씀의 이삭 | 사명

저는 세례명이 ‘클라우디아’인 가톨릭 신앙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저를 부르는 호칭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서 ‘클클샘’이라는 별명으로 가장 많이 불러주십니다. 예전 에 교구 문화홍보국과 가톨릭평화방송에서 제작한 유튜브 방송 ‘클라우디아의 클래식 뮤직’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프로그램 제목을 줄여서 ‘클클뮤직’이라 불렀고 저는 ‘클클샘’이 되었답니다. 요즘은 교회 밖에서도 ‘클클샘’으로 종종 불립니다. 저도 이렇게 불리는 게 좋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주님의 자녀가 되었을까요? 교회 안 에서 나름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서인지 “모태신앙입니 까?” 아니면 “어린 시절 세례를 받았습니까?”라는 질문을 자 주 받습니다. 그런데 모두 아닙니다. 저는 불교 신자였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하..

세대간 소통 2023.09.19

말씀의 이삭 | 가문비나무의 울림

가문비나무의 울림 바이올린 연주가의 삶을 살고 있는 저에게는 지금껏 함 께 해왔고, 앞으로도 함께 할 소울메이트가 있습니다. 바로 저의 짝꿍, 바이올린입니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는 나무를 깎아서 울림통을 만들 고, 그 위에 현(string)을 묶어 활(bow)로 마찰을 일으켜 소리 를 내는 현악기입니다. 바이올린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울림통에 사용되는 나무인데요, 바로 ‘가문비나무’ 입니다. 가문비나무는 아주 높은 고지대에서 자랍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나무와 달리 위쪽 부분에만 가지가 자라는 조금 은 신기하게 생긴 나무입니다. 고지대의 어둡고 컴컴한 산 속에서 자라는 나무이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 윗부분 의 가지들만 햇빛을 향해 뻗어나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빛을 전혀 보지 못하는 아래쪽 가..

세대간 소통 2023.09.12

말씀의 이삭 | 좋은 문장으로

좋은 문장으로 저의 스무 살 초중반 시절의 키워드는 ‘자괴감’이었습니 다. 배우의 길을 위해 노력할 의지는 부족했지만, 욕심이 너무 많았습니다. 노력으로 해소되지 못한 욕심은 어느새 완벽주의로 제 안에 자리를 잡았고, 그 완벽주의는 자기 질 책으로 점점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건강하지 못한 방법으로 낮추며 제가 가진 모든 것들을 다 쓸모없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달란트도, 제 안의 사랑도,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렇게 졸업할 때까지 몇 년을 자책만 하며 살던 어느 날, 어 머니와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엄마, 나는 못난 사람인 것 같아.” 어머니가 대답하시길 “왜 그렇게 생각해? 네가 가진 단 점이 뭔데? 있으면 세 개만 말해봐.” “나는 ..

세대간 소통 2023.08.01

말씀의 이삭 | ‘진짜’가 나타났다

‘진짜’가 나타났다 저는 올해 3월, 사순 시기에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 왔습니다. 순례객 모집이 끝나고 톡방을 만들어 54일 기도 까지 함께 바치고, 드디어 3월 14일에 이스라엘로 떠났습 니다. 저는 떠나기 전 여러 서적과 인터넷을 통해 성지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성지에 대해 공부를 하면 할수 록 제 마음에 알 수 없는 허무함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예수님께서 직접 걸으셨던 선택받은 땅임 을 절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부 성지에 대한 설 명을 보니 그 당시의 장소로 ‘추정’된다는 말이 많이 적혀 있었습니다. 주님 승천 경당에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발을 디뎠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돌이 있었고, 정교회에 서 관리하던 성모님 무덤 경당도 가묘로 세워져 있었고, 심 지어..

세대간 소통 2023.07.22

말씀의 이삭 | 기적 같은 선물

기적 같은 선물 제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무신론자였습니다. 신은 없다고 생각하고,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런가 보다 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뒤늦게 알게 됐습 니다. 그는 무신론자를 넘어 신을 부정하는 사람임을요. 그 는 주말이면 저를 만나러 종종 성당 앞으로 오곤 했습니다. 그러고는 반가운 얼굴로 웃으며 물었습니다. “이성적인 사 고를 하는 사람이 어떻게 진화론이 아닌 창조론을 믿느냐, 사랑의 신이라면서 십자군 원정에서의 처절함은 어떻게 설 명할 것이냐?” 등을요. 농담처럼 말했지만 사실상 비아냥 거림이었죠. 어떤 날은 웃어넘기기도 하고 어떤 날은 다투 었던 기억이 납니다. 시간이 흘러 그와 관계가 깊어질수록 우리 둘 사이에 어쩌면 종교가 큰 산이 될 수도 있겠단 걱 정이 ..

세대간 소통 2023.05.16

말씀의 이삭|새로워진 눈으로 발견하기

20대 중반 유럽 여행을 갔을 때,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에서 우리나라 여행객을 대상으로 하는 도슨 트의 설명을 듣고 두근거리며 마음이 벅찼던 경험이 있습 니다. 그 후로 미술관이나 전시회에 가면 도슨트부터 찾게 됐고 없으면 오디오 가이드라도 꼭 챙겨 듣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론 교회 안에도 신앙을 바탕으로 성화와 성물을 설 명하는 도슨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다 5년 전, 주보 공지를 보고 가톨릭미술해설사 양성 과정을 접하게 됐고 많은 우여곡절 끝에 도슨트 1기가 되 었습니다. 모두가 성령의 이끄심이었습니다. 명동성당에는 귀한 성 미술 작품이 많습니다. 1800년대 말 열악한 상황 속에서 세운 성전 건물부터 그냥 지나치기 쉬웠던 청동 문, 성당 안팎에 있는 성상과 성..

세대간 소통 2023.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