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 유럽 여행을 갔을 때,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루브르 박물관에서 우리나라 여행객을 대상으로 하는 도슨 트의 설명을 듣고 두근거리며 마음이 벅찼던 경험이 있습 니다. 그 후로 미술관이나 전시회에 가면 도슨트부터 찾게 됐고 없으면 오디오 가이드라도 꼭 챙겨 듣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론 교회 안에도 신앙을 바탕으로 성화와 성물을 설 명하는 도슨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다 5년 전, 주보 공지를 보고 가톨릭미술해설사 양성 과정을 접하게 됐고 많은 우여곡절 끝에 도슨트 1기가 되 었습니다. 모두가 성령의 이끄심이었습니다.
명동성당에는 귀한 성 미술 작품이 많습니다. 1800년대 말 열악한 상황 속에서 세운 성전 건물부터 그냥 지나치기 쉬웠던 청동 문, 성당 안팎에 있는 성상과 성화 모두 예술 적, 역사적 가치가 높은 보물들입니다. 한국 천주교회사에 대해 너무 몰랐던 저의 무지가 크게 다가왔고, 그런 신앙이 담긴 작품을 새롭게 보게 될 때마다 하느님의 섭리가 느껴 졌습니다. 그런 주옥같은 내용을 외우기만 해도 벅찼던 저 의 부족한 설명에도 참가자들은 집중해서 경청하고 호응해 주셨고 좀 더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도슨트로서 겨우 걸음마를 떼려는 그때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해 프로그램은 전면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우리 도슨트들은 봉사 직분을 잃은 채 그대로 뿔뿔 이 흩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분의 제안으로 매주 온라인에서 만나 해설사로 부족했던 부분, 더 알고 싶은 내 용을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언젠가 이 거리두기가 끝날 거 란 믿음과 희망을 품고 우리는 서양미술사와 현대미술, 한 국 천주교회사를 공부했습니다. 온라인 스터디에서 다만 지식을 얻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 공동체 로서 서로를 좀 더 알아가고 친교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도 슨트 한명 한명의 영성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복된 시간 이었습니다.
서서히 거리두기가 완화되었던 지난해 가을, 가톨릭 미 술 해설 프로그램도 드디어 재개되었습니다. 외우기에만 급급하고 긴장했던 처음의 모습보다는 다시 해설할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임하게 되었습니다. 무선마이크 스 위치를 켜짐(ON)으로 올리며 첫인사를 할 때는 여전히 무척 떨리지만 50분의 여정 동안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도구 가 된다는 기쁨을 느낍니다. 성령을 통해 1898년 오병이어 의 기적으로 세운 명동성당의 건축 이야기가, 박해 시대를 살던 선교사와 순교자들의 삶이 담긴 청동 문이, 빛으로 새 긴 성경인 스테인드글라스가, 두 팔 벌린 예수상이 신자들 의 마음 안에 새롭게 다가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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