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간 소통

말씀의 이삭 | 사랑하는 딸을 보내고

松竹/김철이 2023. 10. 17. 10:08

사랑하는 딸을 보내고

 

 

시누이가 다니는 본당의 수녀님께서 이끌어 주셔서 남 편과 딸, 가족 모두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가족 모두가 하 느님 말씀 안에서 살려고 노력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갔지 요. 그러나 누군가가 행복한 우리 가정을 시기라도 했던 것 같습니다. 사랑하던 딸이 죽었습니다. 그것도 6년 동안 사 귀던 남자 친구에게 살해되었습니다. 평온하고 행복했던 우리 가족의 일상은 그렇게 끝나버렸습니다. 말썽 한 번 피 우지 않았던 착하고 예쁜, 친구 같았던 무남독녀 외동딸이 그렇게 갔습니다.

 

이후의 삶은 온통 절망과 슬픔뿐이었습니다. 아니, 그 저 딸 곁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마음의 준비 와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보냈어도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 을 텐데, 한순간에 그렇게 가족 곁을 떠나갔기에 고통 속에 서 아픔을 견뎌내기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하느님이, 예 수님이 정말 계신 건가? 울부짖으며 소리도 지르고 원망도 퍼부었습니다. 딸을 먼저 보낸, 아니 지켜주지도 못한 죄인 이라는 생각과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자책도, 원망도 울부짖음도 저희 가족을 치유해 주지는 못하더군요. 그러면서 점차, 세례받은 신자로서 예 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겠노라고 결심하던 우리 가족이 었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딸은 원망과 울부짖음으로 하루를 채우는 제 모습을 좋아하지는 않겠지요. 그러는 가 운데 점차 정신을 차리고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 었습니다. 매일 새벽 미사에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 보에서 교정사목위원회에, 살해당한 ‘피해자 가족 모임(해밀)’ 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장 교정사목 사무실로 전화 를 해서 신부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나던 날 신부 님께 딸 이야기를 하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신부 님을 만난 후 매달 한 번 해밀 모임에 나가면서 가슴의 응어 리를 조금씩 풀어나갔습니다. 친척들에게 딸 이야기를 하면 형제들조차도 이젠 그만하고 잊어버리라고 했지만, 해밀 모 임에서는 억울하고 맺힌 마음을 마음껏 하소연할 수 있었습 니다. 해밀 가족 모두는 서로의 아픔을 알고 있기에 진심 어 린 이해와 동감으로 서로 울다가 웃기도 하면서 아픔을 나 누며 또다시 시작하는 일상을 살아내는 힘을 얻었습니다.

 

사건 후 전혀 보이지 않았던, 매년 피고 지는 꽃이 보이 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해자를 용 서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의 부모 마음도 느껴졌습니 다.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 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가슴 속 가해자에 대한 분 노와 원망을 용서로 지워갑니다. 사랑하던 딸은 잃었지만, 하느님의 축복으로 교황님을 만나 뵐 수 있었고, 주변에는 저희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며 지지해 주시는 고마운 분들 이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망도 미움도 고통도 털어버립니다. 이제는 주님 앞에서 딸을 만나는 그날까지 신앙의 힘으로 삶을 잘 살아내겠습니다.

 

*사회교정사목위원회 ‘해밀’ 모임에서는 범죄로 인해 가족을 잃은 피해 유가 족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