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돌아갈 곳이 있습니다.
군대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군대 두 번 오니까 어때 요?”라는 질문을 들을 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실제로는 “신부님은 전 역하면 어디로 가세요?”입니다. 그 런데 이 사실이 군인들에게는 굉장 히 부러운 일인가 봅니다.
“저는 부산교구로 원복합니다.” 라는 대답을, 이들은 “돌아갈 곳이 있습니다.”라고 알아듣습니다. 제 가 만나는 대부분의 군인들은 돌아 갈 곳이 없습니다. 지금 현재에 충 실하며, 국가에 충성하고자 하는 이들이 전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현실을 살아가는 중이기 때문 에 불안해합니다. 전역하고 나면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군이라는 곳이 원래 자유롭지 않 습니다. 딱딱합니다. 그리고 불안 한 곳입니다. 아직은 전쟁이 일어 나지 않았지만, 그 일어나지 않은 전쟁을 준비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저만은 이곳 군대에 와서 도 굉장히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불 안하지도 않습니다.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하면서 살아 갑니다. 단순히 ‘사제’라는 신분을 가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실 성 직자라는 존재를 군대의 대부분 사 람들은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저 는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여기 불안 에 떠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곳이 있 음을 알려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 사람들에게 하늘 나라가 있음을 알려주어야겠다.
교회의 언어로는 “희망(spes)”이 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희망하 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늘 나라에 자리를 마련해 두셨고, 언젠가는 우리가 그곳에 들어갈 것임을 믿고 희망하는 사람 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전역해도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 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자신도 돌아갈 곳이 있음을 알려주는 사람 이 되려고 노력 중입니다. 현실의 불안을 완전히 해소해 줄 수는 없 겠지만 그 불안을 통해서 하늘 나 라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이 사제라고 생각합니다.
신자 분들도 이 불안해하는 젊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와 후원 꼭 부탁 드립니다. 일주일에 한 번 성당으 로 돌아오는 이들에게만이라도, 그 들의 불안을 덜어주고 돌아갈 곳이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중 입니다. ‘희망’을 알려주는 군종 사 제들과 군종 교구민들을 기억해 주 시고 또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요한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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