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 (마태 20,16)
‘이제 일선 현장으로 나가 명예, 신뢰, 헌신의 소방 정신을 실천하여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국민의 손을 가장 먼저 잡아주는 든든하고 믿음직한 소방 공무원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서울소방학교 졸업식 영상 마지막에 나온 문구입니다. 이것은 그동안 준비된 구급대원이 될 수 있도록 소방학교에서 가르치려 했던 모든 것이었습니다.
저는 간호학과를 졸업한 후 신경외과 병동 간호사로 2년간 근무하였고, 현재는 소방공무원 구급 대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도움을 받기보다 남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했기에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지만 많은 민원에 치이고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다 보니 예전에 그렇게나 배우고 이야기했던 헌신의 소방정신과 사명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말로만 외쳤지, 그 단어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저를 의료인으로서 사람을 살리라는 소명을 주시어 여기까지 이끌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부르심을 소명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그저 그저 생계를 위한 직업으로 받아들이는 부분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이 소명일기를 쓰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응급환자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처치할 것도 많고 힘이 들기에 제발 응급상황이 오지 않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하지만 그래 도 막상 상황이 닥치면 의료인으로서 이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사명감이 듭니다. 하지만 응급상황 외 대부분의 출동은 비응급 환자나 단순 주취자가 더 많고 이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면 사명감보다는 그냥 ‘일이니까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지만 최근 어머니가 편찮으신 상황을 마주하면서 그동안 비응급 환자인데도 신고를 하는 사람들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의료인이 아 니라면 응급, 비응급을 판단하기 어렵고 가족이 아프다면 더욱더 상황 판단이 힘들기 때문에 얼른 119를 불러 응급실에 가봐야 한다 는 것이 그 상황에서는 최선의 판단이었을 것입니다. 그분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니 이후로는 응급환자와 비응급 환자를 구분 짓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처치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응급환자를 만나다 보면 겉으로 보기에도 상태가 아주 좋지 않고 혼자 어렵게 사는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그런 분들을 일일이 신경 쓰지는 않지만, 가끔 이동 중 직접 이야기 해주셔서 그분의 사연을 알게 되었을 때는 연민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병원에 인계할 때까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밖에 없기에 그럴 때마다 제가 그분들에게 다른 무엇을 할 수 있 을지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병원까지만 이송해 준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구해준 거나 다름없다며 고마워하시 는 환자와 보호자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만나면 뿌듯하고 보람이 느껴집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는 제 생각과 감정들은 제게 주어진 소명을 통해 어떤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지 하느님께서 끊임없이 알려 주시고 성장시켜 주시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라는 오늘 복음 말씀을 읽고 나는 지금 첫째로 살려 하고 있지는 않은지, 꼴찌가 되려면 어 떻게 살아야 할지 묵상해 보았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희생하는 것이 꼴찌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하느님께서 제게 원하시 는 부르심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구급대원으로서의 소명을 잊지 않으며, 어떤 사명감으로 일을 해야 하는지 주 님께서 저를 통해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끊임없이 찾으며 이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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