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사막으로 불러내 너에게 사랑을 속삭여 주리라
안토파가스타는 아타카마 사막 한켠에 세워진 도시입 니다. 사막과 바다가 접해 있어 비할 수 없이 아름답지만, 척박한 바위와 흙모래 위에 세워졌기에 낯설고 삭막한 곳 이기도 합니다. 이 공동체에 저를 파견하면서 원장 수녀 님이 하신 말씀은, 무엇보다도 먼저 건강하게 적응하기 위해 마음을 쓰라는 당부였습니다. 수녀님의 염려와는 달 리 부드러운 선과 다양한 색깔로 시시각각 변하며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사막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저의 삶은 매 순간 행복한 날들이었습니다.
저는 공동체에서 서로 연배가 비슷한 두 분의 칠레 수 녀님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40년을 넘게 함 께 살아오면서 서로를 신뢰하고 있다는 점은 물론이고 삶 의 체험도 비슷하여 일을 할 때나 대화할 때, 하물며 생각 하는 방식도 닮아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하였습니다. 또한 사도직 활동에서나 공동체 생활에서 서로를 배려했 고, 신뢰로 하나 된 저희 공동체는 더없이 이상적이었습 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저는 공동체 안에서 외톨 이가 된 느낌으로 고통스럽기 시작했는데, 이는 제가 두 분 사이에 들어갈 틈이 없다는 좌절감 때문이었습니다. 매일 주님 앞에서 저의 감정을 바라보며 실망과 환멸로 자존감은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밑바닥을 고통스럽게 마주하던 저는 안드레 신 부님을 찾았습니다. 벨기에 출신 예수회 회원이신 신부님 은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칠레에 파견되어 40년을 넘게 선 교사의 삶을 살아오신 분으로, 저를 영적으로 동반해 주고 계셨습니다. 신부님은 저의 감정들에 대해 한참을 들으시 더니 “수녀님에게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 가요?”라고 물으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다소 머뭇 거리며, ‘곁에 있는,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 씀드렸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건,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수녀님을 이 사막으로 불러내신 건 당신의 사랑을 속삭이기 위해서지요.”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 이 말씀은 저를 흔들었습니다. 늘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믿고 고백하였는데, 그것은 제 방 식대로, 제 마음대로 그분을 사랑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주 님이 이 사막으로 저를 불러내신 목적은 바로 이 사막에서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라는 데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떤 때는 고통스러운 체험을 통해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죄로 기우는 나약함으 로 얼굴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믿고 다시 일어서는 것, 그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배우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제가 믿었던 것들, 가졌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막에서 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짐이 될 수도 있기에 침묵과 황량함 속에서 오로지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만을 바라보며, 그분의 사랑에 대한 기억 속에서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 를, 오늘도 그 사랑을 잊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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