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108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은인입니다 | 이계철 라파엘 신부님(주교좌 기도 사제)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은인입니다                                                                            이계철 라파엘 신부님(주교좌 기도 사제)  저는 작년에, 부족했던 공부를 더 하고 여러 성지를 순례할 수 있는 은총의 시간을 허락받았습니다. 그중에 한 주간을 베네딕토 성인께서 수도생활을 시작하셨던 거룩한 동굴 수도원이 있는 수비아코에서 보냈습니다. 베네딕토 성인께서는 3년 동안 수비아코 산 속의 동굴에 서 은수생활을 하던 중에 하느님을 만났고 악마와 싸웠 으며, 이후부터 악에 현혹되지 않게 되셨다고 합니다. 저는 수비아코의 중심가에 숙소를 정하고 매일 산길 을 걸어서 거룩한 동굴 수도원에 가서 기도드렸습니다. 그런데 배고픈 순례자였던 저에..

사제의 공간 2024.08.11

망각과 살아있는 빵 | 윤정한 바오로 신부님(제17 강서지구장)

망각과 살아있는 빵                                                      윤정한 바오로 신부님(제17 강서지구장)  오늘 제1독서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 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 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탈출 16,3) 노예 생활을 하면서 먹었던 음식과 고기에 대한 그리 움은 광야에서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총과 자비를 기 억하지 못하게 합니다. 광야의 가혹한 환경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얼마나 큰일을 해 주셨는지 잊게 만 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고달픈 삶을 살면서 하느 님께 불평과 불만을 쏟아냅..

사제의 공간 2024.08.04

육신과 영혼을 채워주는 음식, 하느님의 사랑 | 황인수 이냐시오 수사님(성바오로수도회)

육신과 영혼을 채워주는 음식, 하느님의 사랑                                                                                           황인수 이냐시오 수사님(성바오로수도회)  “아가, 어서 오너라. 배고프지?” 어릴 적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산 너머에 있었습니다. 그 시절 수업이 끝나 면 학교 아래에 있던 큰 이모님 댁에 들르곤 했는데, 큰 이모님은 저를 언제나 정이 뚝뚝 흐르는 눈길로 반겨주곤 하셨습니다. 찐 감자나 삶은 옥수수 같은 걸 내어놓으시 면서요. 오늘 예수님은 필립보 사도에게 어디서 빵을 구해 사 람들을 먹일 것인지 물으십니다. 제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예수님은 ‘스스로 해야 할 바를 알고 계셨지요.’ (요한 6..

사제의 공간 2024.07.28

멈추어서 가만히 머무름 | 이한석 사도요한 신부님(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멈추어서 가만히 머무름                                                        이한석 사도요한 신부님(가톨릭대학교 종교학과)  잘 쉬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무언가를 이 루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것도 의미 있지만 내면의 소 리에 귀 기울여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은 이 야기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쉬는 것만이 중요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잘 쉴 수 있는지 우리 사회는 이제야 제대로 된 고민을 시작한 듯합니다. 그러나 잘 쉬는 것에 대한 관심과 이를 위한 선택이 새로운 장소, 낯선 문화, 새 상품을 소비하는 것으로 좁혀지는 것 같습니다. 자칫 ‘잘 쉬는 것’이 ‘다르고 좋은 것을 소비하는 것’으로 대체될 까 걱정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사제의 공간 2024.07.23

순명과 순종 | 이계철 라파엘 신부님(주교좌 기도 사제)

순명과 순종                                                        이계철 라파엘 신부님(주교좌 기도 사제)  성직자 신분의 시작인 부제 수품 전, 대품 피정 마지막 에 성직을 올바로 수행할 수 있을지 주교님과 면담을 하 고, 서약서에 서명을 합니다. 당시 교구장님이셨던 김수 환 추기경님께서 저의 수품 면담을 해주셨습니다. 그때 추기경님께서 하신 질문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 다. “자네는 이제 성직자로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게 될 터인데, 마음의 결심을 하였고 잘 지킬 수 있겠는가?” 이어서 순명과 독신 서약서에 서명을 하면서, 저는 저의 부족함을 주님께서 채워주시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저 는 아직도 ‘채워진’ 성직자가 아니라, ‘부족한’ 종입니다...

사제의 공간 2024.07.13

두려움에서 일으켜지는 믿음 | 윤웅렬 하상바오로 신부님(등촌1동성당 부주임)

두려움에서 일으켜지는 믿음                                                        윤웅렬 하상바오로 신부님(등촌1동성당 부주임)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마르 5,22) 이 구절의 그리스어 성경 원문을 더 직접적으로 번역하면, “회당장 들 가운데 야이로라는 이름의 한 사람이 와서….”가 됩니 다. 회당장이라 하면, 비록 그 규모가 작다 하더라도, 한 동네의 유다교 공동체를 이끄는 사람입니다. 죄의 용서 를 선포하시고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시고 심지어 안식일 에 치유의 기적마저 일으키시는 예수님을 실상 많은 바리 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는 점에서,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려 청원하는 ‘회당장’ 야이 로의 모습은 매우 이례적으로 ..

사제의 공간 2024.06.30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 양해룡사도요한 신부님(제13 관악지구장)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양해룡사도요한 신부님(제13 관악지구장)  저는 지구장이 되고 난 후, 본당 사제일 때보다는 한 걸음 물러서서 신앙인들을 바라보면서 사람들 사이의 관 계 문제를 좀 더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오늘 복음 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 한 15,12)는 명령을 신앙인들이 어떻게 실천하면서 살아가 고 있는지 묵상하게 됩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관계의 대상은 배우자일 것이고, 다 음은 자녀이며, 마지막으로는 부모님일 것입니다. 과연 배 우자를 처음 만났을 때 사랑한 것처럼 지금도 사랑할 수 있 을까요? 저는 다소 회의적으로 봅니다. 시..

사제의 공간 2024.05.03

아직 깨닫지 못한 이의 달리기 | 최광희 마태오 신부님(문화홍보국장)

아직 깨닫지 못한 이의 달리기 최광희 마태오 신부님(문화홍보국장) 이 글을 읽고 계실 우리 교우분들 중에는, 서로 ‘부활 을 축하한다.’며 나누고 있을 인사가 이질적으로 느껴지 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소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평범한 감정들을 스스로 지켜보며, ‘사순 시기를 제 대로 보내야 부활을 기쁘게 맞이한다고들 하던데, 그러지 못한 내 탓인가.’ 하며 씁쓸해하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부활은 신앙의 완성을 선포하는 순간이 아닙니다. 그 대 신, 달려갈 목표를 분명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희망 을 선사합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 그것을 다시금 되새깁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이 비었다는 소식 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빈 무덤을 보고 믿게 되었다는 말 ..

사제의 공간 2024.03.30

변모, 말이 없는 말, 자랑이 없는 참빛 | 이근상 시몬 신부님(예수회)

변모, 말이 없는 말, 자랑이 없는 참빛 이근상 시몬 신부님(예수회) 주님의 변모, ‘새하얀 빛’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그러 나 그 빛은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힘자랑도, 홀로 우 뚝 선 마법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 변모 사건의 위치는 언제나 당혹스런 수난 예고에 이어진 뒷자리였습 니다. 변모는 이를테면 밤을 낮으로 뒤바꾸는 강렬한 태 양이 아니라 ‘수난’이라는 밤길에 내민 손, 흔들리는 믿음 을 붙잡는 따뜻한 빛이었습니다. 십자가와 죽음, 메시아 와 양립할 수 없는 실패의 예고로 제자들이 길을 잃었을 때, 변모는 빛으로 함께하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저도 길을 잃어 빛이 필요한 날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의 죽음이었습니다. 그해 정초 아침, 안부차 드린 전화 너 머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사제의 공간 2024.02.25

주저앉아 있지 말고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납시다! | 신희준루도비코 신부님(양천성당 주임신부 겸 제18양천지구장)

주저앉아 있지 말고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납시다! 신희준루도비코 신부님(양천성당 주임신부 겸 제18양천지구장)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영화 의 명대사 혹 시 기억하시나요? 이 대사를 떠올릴 때마다 참 모든 게 계획 대로 순조롭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듭니 다. 우리 삶에는 언제나 생각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 이니까요. 누가 알았겠습니까? 지난 몇 년간 코로나 때문에 미사가 중단되고 성당 문이 닫힐 줄을 말이죠? 좋아하는 부 모 형제와 자녀들을 몇 년이나 만나지 못하고, 사랑하는 이들 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게 될 줄을요. 또 사랑하는 이들이 투 병 중에 있는데도 찾아가지 못하게 될 줄 누가 미리 알았겠 습니까?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오는 외로움 과 무력감에서 벗..

사제의 공간 2024.02.01

들리는 것과 들을 소리 | 류지인야고보 신부님(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들리는 것과 들을 소리 류지인야고보 신부님(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새날이 시작됨을 알리는 새벽 수도원 종소리가 청명하 게 울려퍼집니다. 그러나 오늘은 시간을 꽤나 지체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늑장을 부린다면 아침 기도 시간에 늦을 것이 분명합니다. 얼굴의 물기를 닦을 시간 도 없이 허겁지겁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가까스로 지각은 면했으나 헐떡이는 숨소리가 다른 형제들의 잠심을 깨뜨 리고, 누르지 못한 머리의 까치집은 기도 시간 내내 저의 분심이 되고 말았습니다. 종소리에 담긴 부르심에 귀를 닫아버린 결과입니다. 귀는 언제나 열려 있기에 구조적으 로 소리를 거를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듣는 소리와 흘 려버리는 소리가 공존하는 현실을 보면 우리 영혼에는 모 름지기 각자의 귀마개를 두고 있는 모양입니..

사제의 공간 2024.01.29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 방종우 야고보 신부님(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방종우 야고보 신부님(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우연히 읽게 된 진은영 시인의 시, 의 일부이자 시집의 제목입니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마음이 참 따뜻해졌어요. “오래된 거리”가 주는 의미가 온전히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저의 오래된 거리를 떠올려 봅니다. 친구들과 함께 뛰놀 던 어린 시절의 거리, 추운 새벽 복사를 서기 위해 어머니 의 손을 꼬옥 잡고 걷던 거리, 유학 시절 공부에 지쳐 터벅 터벅 걸어가던 거리. 언제 다시 찾아가도 저를 따뜻하게 반 겨줄 것 같은 오래된 거리들이랍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저를 사랑해 주는 가장 오래된 거리는 예수님이에요. 저의 허물도 부족함도 알고 계시지만 단아 한 불빛을 밝..

사제의 공간 2023.05.16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 방종우 야고보 신부님(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방종우 야고보 신부님(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우연히 읽게 된 진은영 시인의 시, 의 일부이자 시집의 제목입니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마음이 참 따뜻해졌어요. “오래된 거리”가 주는 의미가 온전히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저의 오래된 거리를 떠올려 봅니다. 친구들과 함께 뛰놀 던 어린 시절의 거리, 추운 새벽 복사를 서기 위해 어머니 의 손을 꼬옥 잡고 걷던 거리, 유학 시절 공부에 지쳐 터벅 터벅 걸어가던 거리. 언제 다시 찾아가도 저를 따뜻하게 반 겨줄 것 같은 오래된 거리들이랍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저를 사랑해 주는 가장 오래된 거리는 예수님이에요. 저의 허물도 부족함도 알고 계시지만 단아 한 불빛을 밝..

사제의 공간 2023.05.15

마음이 담긴 선물|김한수 토마스 신부님(화요일아침 예술학교 교장)

마음이 담긴 선물 김한수 토마스 신부님(화요일아침 예술학교 교장) 선물은 준비하셨나요? 크리스마스가 코앞입니다. 선물 받을 준비는 하셨나요? 말씀이 사람이 되신 엄청난 신비의 선물을 받아들일 준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일상 에서 주고받는 선물 가운데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사소한 일상의 대화에서 취향을 읽어 내고, 상황과 여건을 고려하여 고민하며 마련된 선물에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사소한 선물에 담겨 있는 그 마음을 읽어 내면,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 고맙다고 말합니다. 말씀 이 사람이 되신 육화의 신비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 해 스스로 선물이 되어 주신 마음이 녹아 있음을 읽어내면, 그 고마움의 크기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하느님 선물에 담긴 마음을 읽고 나면..

사제의 공간 2022.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