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변모, 말이 없는 말, 자랑이 없는 참빛 | 이근상 시몬 신부님(예수회)

松竹/김철이 2024. 2. 25. 09:45

변모, 말이 없는 말, 자랑이 없는 참빛

 

                                                                       이근상 시몬 신부님(예수회)

 

 

주님의 변모, ‘새하얀 빛’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그러 나 그 빛은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힘자랑도, 홀로 우 뚝 선 마법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 변모 사건의 위치는 언제나 당혹스런 수난 예고에 이어진 뒷자리였습 니다. 변모는 이를테면 밤을 낮으로 뒤바꾸는 강렬한 태 양이 아니라 ‘수난’이라는 밤길에 내민 손, 흔들리는 믿음 을 붙잡는 따뜻한 빛이었습니다. 십자가와 죽음, 메시아 와 양립할 수 없는 실패의 예고로 제자들이 길을 잃었을 때, 변모는 빛으로 함께하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저도 길을 잃어 빛이 필요한 날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의 죽음이었습니다. 그해 정초 아침, 안부차 드린 전화 너 머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어눌했고, 저는 즉시 뇌 졸중일지도 모른다는 밑도 끝도 없는 불안에 사로잡혔습 니다. 당장 119를 불러 가까운 응급실로 가시라고 말씀 드렸지만, 번거로움에 익숙치 않은 아버지는 어찌어찌 걸 어서 근처 병원을 찾았고, 그렇게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진 행되었습니다. 뇌졸중. 그것도 너무 심한 뇌졸중이었습니 다. 그날 오후, 중환자실에서 아버지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단 한 문장도, 단 한마디도, 제 이름조차 부르지 못한 채, 거친 호흡과 신음으로 침상에 묶여있었 습니다. 그해 한여름까지 꼬박 반년을 아버지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들과 함께 야위어 가다가 주님 품으로 떠났 습니다. 7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해에 일어난 아 버지의 죽음은 제게 여전히 낯선 비현실입니다.

 

아주 ‘바싹’이라고 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아버지의 마 지막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저는 지금도 아 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사람의 마 지막, 그것도 누워서 거동하지 못하는 이의 마지막은 처 연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모든 게 줄어들고, 모든 게 작 아지며, 모든 게 사그라진 뒤, 정말이지 순하고 순한 약함 이 드러났습니다. 어떤 욕심도 어떤 주장도 다 씻겨진 하 얀 부드러움, 아무 말도, 아무 손짓도 없이 바싹 마른 십 자가, 순하고 하얀 빛이 제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통해서 주님을 한번은 닮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인지 아버지의 빛나는 변모가 그때 제게 알려주었 습니다.

 

인간은 모두 바싹 마를 존재입니다. 세상은 이를 병이 라 부르고, 실패라고도 하며, 운명이라고도 합니다. 그러 나 믿는 이들에게 삶은 변모일 뿐입니다. 어둠 속 두려움 이야 세상과 똑같을 수 밖에 없지만 믿는 이는 어둠 속에 서 ‘그의 말을 듣는’(마르 9,7 참조) 믿음으로 변모합니다. 그 믿음은 삶이 더 어두워져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말이 없는 말, 자랑이 없는 참빛이 우리의 계속되는 변모, 어둠 속 믿음을 비추고, 우리의 곁을 지키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