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주님께서 미리 마련해 주신다 | 이중섭 마태오 신부님(엄정 본당)

松竹/김철이 2024. 2. 26. 10:15

주님께서 미리 마련해 주신다

 

                                                                 이중섭 마태오 신부님(엄정 본당)

 

 

1994년, 전 세계의 언론과 방송들은 니콜라스 그린이라는 7살 미국 소년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이 소년은 이탈리아에서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던 중, 강도들의 총을 맞고 죽었다. 무장한 강 도들이 차와 돈을 탈취하려고 풀숲에서 숨어 기다리고 있다가 니콜라스 가족이 탄 차가 지나가자 총탄 세례를 퍼부었다. 다른 가족은 도망하는 데 성공했으나, 자동차 뒷좌석에 누워 잠들어 있던 니콜라스는 총탄을 여러 발 맞았다. 소년은 근처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지고 말았다. 이 소식 을 들은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고 분노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분노는 곧 놀라움과 찬양으로 바뀌 었다. 소년의 가족이 소년의 장기를 기증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탈리아 사람 여덟 명이 소년의 장기를 기증받았다. 아들이 이탈리아 강도들의 총에 맞아 죽었는데 부모가 이탈리아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아들의 장기를 기증했으니 고귀한 결정이 아닐 수 없었다.

 

1999년, 니콜라스의 아버지 레그 그린은 <니콜라스가 남긴 것: 소년이 세상에 준 선물>(The Nicholas Effect: A Boy’s Gift to the World)’이라는 책을 썼다. 그는 이 책에서 아들의 죽음 뒤에 일어난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써나 갔다. 그린 가족이 아들 니콜라스의 장기를 기증한 뒤에 수많은 이탈리아 사람과 세상의 많은 사람이 장기를 기증 하여 다른 이들을 살리는 데 앞장서기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오늘 제1독서 창세기 22장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이야기다. 그 당시는 자식에게 의존해 사는 것이 관습이었으므로, 아들을 하느님께 바친다는 것은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아 브라함의 신앙은 그 같은 인간적 타산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한 것이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믿음과 희망이 아들 이사악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있음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런데 창세기 22장에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하느님의 배려다. 아브라함을 시험하면서도 하느님께서는 이사악 대신에 바쳐질 번제물 곧 수양 한 마리를 미리 마련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시련 중에서도 늘 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를 돌보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늘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의 앞길을 예비하 시는 분이다. 창세기 22장은 이 사실을 ‘야훼 이레’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 말은 ‘주님께서 미리 마련해 주신다’는 뜻이다.

 

사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믿음만 있다면 나머지는 덤으로 주어진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믿음을 간직하고 그 분께만 충성을 바친다면 주님께서 우리의 앞길을 손수 마련해주신다. ‘야훼 이레!’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다. 주님 께서 손수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시고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