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없는 삶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초전성당 주임)
"신부님 걱정 없이 살려면 우짜마 됩니까?"
본당 신자분이 한탄하듯 하신 질문입니다. 답변을 드렸습니다.
"어떤 걱정이냐에 달렸지요."
그렇습니다. 어떤 걱정이냐에 달렸습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신경쓰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는 그날 그날의 염려를 실제로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책임 하에 있는 일들이고 우리가 마땅히 신경써야 하는 일입니다. 사제가 신자들을 돌보는 일이나 아버지가 자녀들을 돌보는 일은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끌어안고 고심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벗어날 수 있는 걱정들이 있습니다. 신앙의 본질을 살아갈 때에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신뢰 안에서 살아가게 되고 그분의 은총의 보호 아래 놓이게 됩니다. 그러면 사라지는 걱정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영원'에 대한 걱정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죽음이라는 것에서 해방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모든 것을 자기 홀로 준비해야 하고 그런 가운데 큰 실패를 하는 사람이 겪게 되는 좌절이 있다면, 언제나 든든히 뒤를 봐 주는 부모님이 계신 가운데 이런 저런 시도들을 실패하는 사람의 마음은 전혀 다릅니다. 언제라도 마지막 목적지를 뚜렷이 가지고 있는 신앙인은 이 세상에서 나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만 가장 근본적인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 자기 홀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극도의 신경질적인 경계심 속에서 살아가야 하겠지요.
사실 하느님과의 유대관계가 없는 사람은 영혼이 메마른 사람입니다. 영원하신 분과의 친교가 없기에 그는 애써 사람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고 하지만 결국 체험하게 되는 것은 세상에 믿을 놈이 없다는 체험 뿐입니다. 반면 하느님에게 신뢰를 두는 사람은 온 세상이 자신을 배신해도 최후의 신뢰처를 두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피상적인 면만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부자는 일생이 늘 행복했을 것이고 라자로는 모든 순간이 불행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저는 선교 생활을 통해서 사람이 표면에 보이는 것과 내면의 상태가 늘 동일하지는 않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의 내면 속에 들어있는 강박증을 볼 수 있었고 가난한 사람들의 영혼 속에 들어 있는 삶의 여유를 볼 수 있었습니다. 가지면 마냥 행복할 것 같으나 그 가진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두려움과 걱정이 그를 질식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로 가난하면 마냥 불행할 것 같지만 그 가난한 이들이 소박한 것을 두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의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원과 연계된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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