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과 영혼을 채워주는 음식, 하느님의 사랑
황인수 이냐시오 수사님(성바오로수도회)
“아가, 어서 오너라. 배고프지?” 어릴 적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산 너머에 있었습니다. 그 시절 수업이 끝나 면 학교 아래에 있던 큰 이모님 댁에 들르곤 했는데, 큰 이모님은 저를 언제나 정이 뚝뚝 흐르는 눈길로 반겨주곤 하셨습니다. 찐 감자나 삶은 옥수수 같은 걸 내어놓으시 면서요.
오늘 예수님은 필립보 사도에게 어디서 빵을 구해 사 람들을 먹일 것인지 물으십니다. 제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예수님은 ‘스스로 해야 할 바를 알고 계셨지요.’ (요한 6,6 참조) 그것은 목자 없는 양처럼 지쳐 있는 이들, 그 냥 돌려보냈다가는 길에서 기진할지도 모르는 그들(마태 15,32 참조)을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굶주린 이들 을 먹이고, 지친 이들에게 힘을 주는 하느님의 사랑을 가 감 없이 보여주십니다.
대 바실리오 성인(330-379)은 고아들을 돌보고 병자들 을 치료하며 순례자들을 환대하는 마을을 세워 그리스도 교 사회복지 제도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이 때문에, 대 바 실리오는 근대적인 병원의 창시자로 여겨지기도 하며, 이 마을은 성인의 이름을 따서 바실리아드(Basiliad)라고 불렸 습니다. 대 바실리오의 영혼의 벗, 나지안조의 그레고리 오는 친구가 죽은 뒤 그의 행적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물론 바실리오는 빵 다섯 개로 수천 명 사람들의 굶주 림을 달래주지는 못했습니다. 남은 조각만으로 다른 식 탁을 차릴 만했던 그 기적을 행하지는 못했습니다. … 그 러나 바실리오는 이러한 기적들이 낳은 결과를, 같은 믿 음으로 묵상하고 행하였습니다. 부유한 이들을 설득하 고 권면하여 곳간을 열게 하였으며 성서 말씀이 이루어지 게 하였으니, ‘굶주린 이들을 위해 빵을 나누고,(이사 58,7 참 조) 가난한 이들을 배불리며,(시편 132,15 참조) 기근 중에 그들 을 먹이고,(시편 33,19 참조) 배고픈 영혼들을 채워준 것입니 다.(루카 1,53 참조)’ 어떻게 그리했을까요? 간단한 일이 아니 었습니다. 기근을 당한 사람들, 말하자면 겨우 숨만 쉬는 갓난아기들, 남자들, 여자들, 노인들, 아이들, 온갖 나이 대의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은 뒤 굶주림을 달랠 만한 곡 물들을 모두 모아 소금 간을 한 음식과 콩죽으로 가득 찬 냄비를 준비하여 가난한 이들을 먹였습니다. 그런 다음, 스스로 종이 되시어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당신 제자들의 발을 닦기를 마다하지 않으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의 종 들, 아니, 함께 섬기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도움이 필 요한 이들의 육신을 돌보고 그들의 영혼까지 돌보았습니 다.”(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 «연설» 43,35)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계셨습니다. 오늘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굶주린 사람들의 육신을 채워주시지만, 이제 사랑에 주린 사람들, 그 존 재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당신 생명을 내어놓으실 것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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