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김영식 요셉 신부님(공검 본당 주임)

松竹/김철이 2024. 7. 29. 10:15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김영식 요셉 신부님(공검 본당 주임)

 

 

운이 좋아서 성당 뒤편에 900평 과수원을 두고 살게 되었다. 자기 일을 하는 것도 코가 석 자인 교우들의 도움을 받아 개량종 살구(하 코트, 플럼코트) 를 처음으로 조금 수확했다. 지금은 사과, 대추가 무럭무럭 보살핌을 받으면서 자라고 있다. 수확이 끝난 살구와 곧 익게 될 대추를 보면서 오늘 성경 말씀(제1 독서 : 2열왕 4,42-44; 복음 : 요한 6,1-15)을 떠올리게 된다. 독서와 복음은 보잘것없고 변변치 못한 사람들이 내어놓은 것을 배곯던 가난한 사람들이 나누어 먹고 배부르게 되었고 남은 것은 차고 넘쳤다고 한다. 혼자 다 차지하고 독점하는 것을 성공과 풍요, 발전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허용하는 나라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살구와 대추를 그렇게 나눌 것을 생각하니 행복하다. 더디 가고 조금 부족해도 모두가 골고루 먹고 배부른 나라가 하느님 나라니까.

 

맛 좋고 때깔 좋은 열매를 얻으려면 열매 하나에 잎을 스물다섯 개에서 서른 개 정도는 두어야 잘 익는 법이란다. 과일도 곡식도 저 혼자 잘난 맛으로 절로 열매를 맺고 익을 수 없다는 말이다. 사람도 서로를 지지하고 의지해 함께 돕고 나누어야 무럭무럭 자라 볼품 있고 튼실한 사람이 된다. 함께 내어놓고 서로 나눌 때 좋은 열매를 맺고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품이 넓은 사람이 된다. 공생공락(共生共樂)의 하느님 나라도 마찬가지라는 진리를 성당 과수원에서 배운다.

 

봉화 상운에서 40여 년 농사를 짓고 살았던 고(故) 전우익 선생은 1993년 시인 신경림의 도움을 받아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란 책을 펴냈다. 선생은 이 책에서 소유(所有)와 축재(蓄財)를 위해 마구 치달려 가는 사람들에게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일깨웠다. 1980년 5.18 광주에서 시민들이 죽음의 공포를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저마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정신으로 내어놓고 나누어 먹었던 볼품없는 작은 주먹밥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느님 나라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빵 다섯 개, 맏물로 만든 보리 빵 스무 개와 햇곡식 이삭을 내어놓고 나누는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하고 배부른 상태이지 여기 혹은 저기, 이곳 혹은 저곳이 아니다. 나는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음식을 내어놓고 나눈 이야기는 성경의 고갱이며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고갱이라고 여긴다. 환난상휼(患難相恤)의 마음으로 서로 가진 바를 내어놓고 나누는 대동세상, 우리 모두 함께 잘 살고 즐거운 공생공락의 나라, 그런 나라가 하느님 나라다.

 

나라 꼴이 우습다. 본디 우정을 바탕으로 시작된 친구 사이가 믿음과 신뢰 속에서 맺은 약속(계약, 법)을 지키기로 맹세하면서 시작되고 확대된 우정의 공동체가 나라다. 그런데 검찰끼리, 가족끼리, 언론끼리, 권력끼리 우정을 나누면 그만인 나라가 되어버렸다. 어떤 이는 뇌물을 받아도, 통정하여 주식을 매매하고 통장의 잔고를 속여 법원에 제출하여 천문학적 이득을 얻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처처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희생된 사람들이 왜 죽어갔는지 알지 못하는데 유가족들의 아픔은 여전히 죽음의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주권자는 우울하다. 계약 당사자 간의 우정은 사라졌고 믿음도 없어졌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끼리 나누는 기울어진 우정만 있다. 우리는 언제 하느님 나라에 다다르고 이를 수 있을까? 서로 돕고 나누는 세상,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우정 넘치는 하느님 나라를 일구도록 애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