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손길에 담긴 큰 사랑을 알아보는 지혜
정경륜 대건안드레아 신부님(대치 본당)
언젠가 가정 방문을 했는데, 어린아이가 소 꿉놀이하고 있었나 봅니다. 열심히 장난감 칼로 가지모양의 장난감을 잘라서 저에게 주는 겁니 다. “신부님, 주는 거야? 고마워!” 한쪽 주머니 에 넣고서 “이제 기도할까요?” 운을 뗐는데, 아 이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계속 바라보는 겁니 다. “왜 그럴까? 가지 다시 줄까?” 하고 줬는데 도 여전히 불만이 있는 듯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보니 그 손녀는 거실 한쪽에서 마치 글공부하는 한석봉처럼 여전히 정성껏 가 지를 자르고 있었습니다. 다과가 나오고 먹을 것도 많은데 손녀는 그 가지 조각을 들고 ‘이번 엔 누굴 줄까?’ 고민하다가 옆에 할머니에게 드 렸습니다. 할머니는 “아이고! 나줄라고? 먹어볼 까? 얌얌얌! 아이고 맛있네! 얼굴만 예쁜 줄 알 았더니 마음씨도 예쁘네!” 그 아이는 그제서야 아주 방긋 웃으며 칼을 도마 위에 내려놓고 과 일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 아이는 저에게 무엇이 불만이었을까요? 제가 실제로 가지를 좋아하던 안하던, 당연히 먹을 수 없는 가지 장난감인 줄 알지만 먹는 척 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귀한 것을 내어 준 이 아이의 정성을 온전히 받아주지 않았다는 것이 서운했던 겁니다.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 진 아이가 있습니다만...”(요한 6,9 참조)
이백 데나리온 어치 빵으로도 부족하다고(요 한 6,7 참조) 말하는 순간, 한 철없는 아이가 내놓 은 작은 음식을 두고 필립보는 눈을 흘기고, 예 수님은 웃으셨습니다.
필립보는 말로만 알았다며 아이의 음식을 한 쪽으로 치우고 자기 할 말만 했지만, 예수님은 아이의 귀한 정성을 두고 잘 먹겠다며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고 나서, ‘세상에 우리 아이가 이런 것을 주었다’며 다들 사람들에게 나눠 주셨습니 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요한 6,5 참조)
예수님이 물은 것은 우리의 마음이고, 정성 이었지요. 결국 예수님의 이야기를 알아들은 사 람은 나이 어린 한 아이였습니다.
“신부님!!!” 오늘도 아이들이 사제관 앞에서 같이 놀자고 소리를 지릅니다. 먹고사는 일에 급급한 우리가 아이들의 마음을 무시할 때가 많 죠. 그럴 때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는 건 ‘조부 모와 노인’입니다. 세상에서 이제 한 발 떨어져 있어 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전에 안 보이던 것이 이제는 보이는 것입니다.
나가보니 소나무 가지에 아이들이 걸려 있습 니다. 아이들을 보면서 그렇게 하면 소나무가 크겠냐고 소리치는 아저씨와 너는 어릴 적에 성 당에 있는 나무 타고 놀았지 않았냐고 따지는 할머니. 역시 우리에게는 예수님 같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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