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광주리를 마주한 시간!
최현규 이냐시오 신부님(죽림동 주교좌 본당 보좌)
첫 본당으로 부임한 주교좌 죽림동 성당은 본당 전례와 함께 교구 전례가 이루어지는 공간 중 하나 입니다. 본당 전례를 진행할 때는 정성스럽게 경문을 읽고, 강론 준비를 열심히 하며 전례를 봉 헌하면 크게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구 전례를 진행할 때는 준비할 것도 신경 써야 할 부분 도 많았습니다. 가장 큰 변수는 바로 ‘미사 참례 수’ 였습니다. ‘성유 축성 미사’ 는 오히려 준비하기 편했습니다. 하지만 신부님들의 ‘추모 미사’ 혹은 ‘사제 장례 미사’ 는 준비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얼마나 많은 신부님들과 신자분들께서 함께하실 것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성체를 준비하는 데 있어 서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전년도 기준으로, 그리고 마지막 사제 장례 미사를 기준으로 잡 으려 해도 상황이 너무나 달랐습니다.
올해 성삼일 전례를 준비하면서도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제병’ 이었습니다. 성유 축성 미사로 이어지는 교구 전례를 준비하면서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 때 조절하여 다음 날 이어질 주님 수난 성금요일 전례 때 문제가 없을 정도로 제병을 준비하자고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성 유 축성 미사와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는 큰 이변 없이 잘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주님 수난 성금요 일 전례 전, 십자가의 길이 성전에서 시작되었고 뭔가 불길함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작년과 너무 다른 참여 비율 때문이었습니다. 작년 십자가의 길과 주님 수난 성금요일 전례에는 성전에 빈자리가 많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그리고 주님 수난 성금요일 전례가 시작되고 난 후에도 많은 신자분들께서 참석하셔서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 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
제 머리에는 온통 이 말씀이 떠오르며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미사를 봉헌할 수 없는 날, 많은 신자들이 참석하셔서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성체를 나누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머리가 복잡해졌습 니다. 방법은 없었습니다. 초반부터 성체를 쪼개어 분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줄은 점점 길어지고, 쪼 개야 할 성체는 많아졌습니다. 심지어 마지막으로 갈수록 더 작은 조각으로 분배해야 할 것 같은 느 낌도 들었습니다.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성체 분배를 마치고 난 후 모은 성체는 성합 바닥이 보일 정도로 정말 몇 안 되는 수가 남았지만, 전례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성체를 나누어 먹은 시간이었습니다. 걱정은 기우였으며 하느님께서 하 시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체험한 시간이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걱정보다는 감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더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오병이어는 걱정을 앞세우는 시간이 아니었습 니다. 오히려 감사와 사랑을 느끼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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