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 방종우 야고보 신부님(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松竹/김철이 2023. 5. 15. 10:17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방종우 야고보 신부님(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우연히 읽게 된 진은영 시인의 시, <청혼>의 일부이자 시집의 제목입니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마음이 참 따뜻해졌어요. “오래된 거리”가 주는 의미가 온전히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저의 오래된 거리를 떠올려 봅니다. 친구들과 함께 뛰놀 던 어린 시절의 거리, 추운 새벽 복사를 서기 위해 어머니 의 손을 꼬옥 잡고 걷던 거리, 유학 시절 공부에 지쳐 터벅 터벅 걸어가던 거리. 언제 다시 찾아가도 저를 따뜻하게 반 겨줄 것 같은 오래된 거리들이랍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저를 사랑해 주는 가장 오래된 거리는 예수님이에요. 저의 허물도 부족함도 알고 계시지만 단아 한 불빛을 밝히며 실제로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기 때문이지요.

 

오늘 복음은 최후의 만찬 때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 며 남기신 예수님의 마지막 약속들이에요. 그중 첫 번째는 ‘성령 파견에 관한 약속’이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해 제자들이 필요한 모든 것을 알게 해 주실 것이 고, 당신의 말씀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라고 하 십니다. 두 번째는 ‘제자들에게 다시 돌아오리라는 약속’이 에요. 비록 세상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지만, 주님을 사랑하 는 이들은 예수님을 계속해서 보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 러한 약속들은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지치지 않는 사랑 을 의미한답니다.

 

그런데 좀 의아하지 않나요? 성경의 제자들은 게으르고 예수님을 의심하며, 심지어 십자가 수난 앞에서 거짓말까 지 동원해 당신을 모르는 척까지 하는데도 이렇게 소중한 약속들을 해 주신다니요.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신을 사랑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그들이 회 개할 것이라는 확신을 하고 계셨던 거지요. 결국 예수님께 중요한 것은 개인의 허물이나 한계가 아닌, 회개하고 돌아 오는 모습이랍니다. 이렇게 주님은 마치 오래된 거리처럼 니다. 제자들을 기다리시며 그들을 이끌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스스로를 바라보면 실망스러울 때가 있지요. 때로 우리 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하며 개 인의 욕심을 추구하곤 하니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 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고요.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보이셨 던 예수님의 시선을 기억하면 우리는 다시금 새로운 희망 을 품게 됩니다. 다만 명심할 것은 이러한 은총과 사랑이 거저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오래된 거리를 찾아가 추억을 확인하고 싶다면 그곳으로 돌아가야 하듯, 우리는 다시 주님께로 돌아가 사랑을 고백해야 해요. 바로 그때 주 님은 우리를 다시금 품에 안아주실 것입니다. 그곳에는 주 님과 나의 추억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오래된 거리처럼 나를 사랑해 주시는 주님이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