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깨닫지 못한 이의 달리기
최광희 마태오 신부님(문화홍보국장)
이 글을 읽고 계실 우리 교우분들 중에는, 서로 ‘부활 을 축하한다.’며 나누고 있을 인사가 이질적으로 느껴지 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소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평범한 감정들을 스스로 지켜보며, ‘사순 시기를 제 대로 보내야 부활을 기쁘게 맞이한다고들 하던데, 그러지 못한 내 탓인가.’ 하며 씁쓸해하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부활은 신앙의 완성을 선포하는 순간이 아닙니다. 그 대 신, 달려갈 목표를 분명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희망 을 선사합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 그것을 다시금 되새깁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이 비었다는 소식 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빈 무덤을 보고 믿게 되었다는 말 이 무색하게도, 성경은 그들이 여전히 깨닫지 못한 상태 라고 단언합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한 말씀들을 이해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요한 20,9 참조) 심지어 같은 장면을 전하는 루카복음에 따르면, 사도들은 단순히 이해 력이 떨어지는 수준조차도 아니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 나와 다른 여성들이 ‘주님의 부활’ 소식을 전했음에도 불 구하고, 사도들은 그 이야기가 ‘헛소리’처럼 느껴졌다고 하니까요.(루카 24,10-11 참조)
하지만 신앙이 바닥을 드러낸 것 같은 오늘 이 순간이 찬란한 변화의 첫 시작이 됩니다. 제자들은 이제 곧 동료 인 토마스에게 ‘주님을 뵈었소.’ 하고 고백하게 될 것이며 (부활 제2주), 예수님과 화해하여 용서를 받고(부활 제3주), 급 기야는 공포에서 벗어나 집 밖으로 뛰쳐나가 박해와 상관 없이 예수님을 증거하며 부활을 선포하게 될 것입니다.(성 령 강림 대축일)
이 드라마 같은 변화의 시작에는 ‘달리기’가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부활을 전하는 여인들의 말을 전혀 믿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지만, 예수님이라는 소리에 재빨 리 달려갑니다. 무덤까지 달리는 것은 굳이 사도라야 할 수 있는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 다. 그러나 그 평범하고 작은 일이 씨앗이 되어, 새로운 변화의 시작을 만들었습니다. 만약 두 사도가 유다인들에 게 잡힐 것이 두려워, 끝까지 집 안에서 움직이기조차 거 부했다면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당시 제자들의 믿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무 덤까지 달려가는 것밖에 없었지만, 제자들은 일단 최선을 다해 달리며 예수님의 소식에 호응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부활의 소식을 전달받고 출발선 상에 서 있는 사도와 같습니다. 벅찬 행복감이 마음에 차오르지 않는 것을 의아해하며 그냥 집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최 선을 다해 일단 부활의 소식이 들려온 곳을 향해 달려갈 것인가, 이제 남은 선택은 우리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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