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의 공간

저는 아니겠지요? |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초전성당 주임)

松竹/김철이 2024. 3. 28. 09:02

저는 아니겠지요?

 

                                                           겸손기도 마진우 요셉 신부님(초전성당 주임)

 

 

행동이 있기 전에 생각이 먼저 있듯이 물리적인 실천이 있기 이전에 영적인 영역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세상이 우리 눈 앞에 뚜렷이 존재하는 것처럼 영적인 것들 또한 분명한 현실입니다. 세상에 '균형'이 있다면 영혼에도 '균형'이 있고 오히려 세상보다 더 참된 질서 안에서 움직입니다.

 

세상에는 쓰레기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아무 짝에도 소용 없고 버려져야 하는 것들이지요. 그리고 그 쓰레기를 치우는 이가 존재합니다. 쓰레기는 가만히 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수고하여 치워야 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죄는 어둠이고 하느님의 빛을 가리는 것입니다. 죄의 결과로 악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그 악은 다시 주변에 어둠을 흩뿌립니다. 마치 술이라는 악습에 가장이 무너지고 나면 그 가족들이 그 고통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처럼 하나의 악은 주변에 크나큰 고통의 결과를 야기시킵니다. 누군가에 대해 무심코 한 험담이 파괴적인 결과를 일으키거나 별 뜻 없이 한 거짓말이 누군가에게 어마어마한 고통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온전하던 유리컵을 바닥에 냅다 던지면 수많은 파편들로 나뉘어지고 그것을 치우느라 훨씬 더 많은 애가 쓰이는 것처럼 영혼 안에서 일어나는 파괴적인 현실은 수많은 어둠과 실재적인 아픔을 양산해 냅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만들면서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자유'에 기인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 인간이 그 자유를 당신 뜻대로만 사용하지 않을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이를 치우셔야 했습니다. 나아가 훗날에 당신이 완성할 세상 속에서 살아갈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악이 더는 생겨나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작업을 위해서는 그저 있는 악을 쓸어담는 것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이 일을 하는 데에는 누군가가 나서서 자신은 악을 하나도 저지르지 않으면서 다른 이들의 악을 쓸어담는 진공 청소기 같은 존재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하는 이는 그 출신이 무척이나 고결하고 드높아야 했습니다. 그 존재가 드높은 데에서 내려올수록 치울 수 있는 능력의 범위와 가치가 더욱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가 있어야 사람들이 그를 보고 배울 수 있으며 자신들도 그와 똑같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주변에 생겨난 악을 저마다 나누어 지고 치우려는 움직임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너무나도 소중한 외아들을 우리와 같은 수준으로 보내셨습니다. 그 고결한 출신과 더불어 그가 세상의 모든 악을 쓸어담도록 하셨습니다.

 

악을 쓸어담는다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깨끗한 걸레로 더러운 곳을 훔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걸레는 더러워지고 바닥은 깨끗해집니다. 악을 쓸어담는다는 것은 그 더러움이 원래 있어야 할 곳에 나아가서 그 더러움을 대신해서 받아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적인 의미의 더러움은 세상의 증오, 무시, 험담, 원망, 불의, 시기, 혐오와 같은 것들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하늘 임금님의 외아들이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스스로 내려오셔서 그 죄들을 받아 삼켰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분께 의탁하는 이는 그분에게서 씻김을 받고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갈 수 있도록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이를 온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신앙인들은 스스로 예수님을 따라 세상을 치우는 걸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벽에 걸리는 명품 장식물이 되고 싶어했습니다. 예수님은 정작 험지에 계시는데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결함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매번 사순시기마다 당신의 수난이 울려 퍼지는데 우리는 이쁘게 꾸민 장식물로 수난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구유에 태어났는데 세상은 그 구유를 누구보다도 찬란하게 꾸며 상품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은총은 어디에 있을까요? 죄가 많은 곳에 은총이 넘쳐 흐르게 마련입니다. 의술은 어디에서 펼쳐질까요? 환자가 많을 때에 의술이 펼쳐집니다. 모두가 건강하면 의사가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환자가 넘쳐날 때에 비로소 그 의사의 실력이 같이 드러나는 법입니다. 은총의 시기는 아무런 문제도 없이 나날이 편안하게 살아가는 때가 아니라 어둠이 우리를 엄습해 올 때에 드러나는 법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 때를 살고 갑니다. 안타까운 영혼들이지요. 천년만년 살 것 처럼 바둥거려 보지만 결국 때가 되면 생을 마감합니다. 우리의 행동이 이 지상의 삶에 국한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영원을 바라보지 않으면 인간은 제 아무리 난리를 쳐 본들 결국 헛된 시간을 보낼 뿐입니다.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