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부산 694

누룩 |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  2005년, 평소 친하게 지내던 청소년분과장님의 주 일학교 교리교사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에 겁도 없 이 “한번 해볼게요.”라고 대답을 하고 중3 친구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 자 먼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고, 부모님께 하지 못했 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또한 서로 단합도 잘 되어 성당 안과 밖에서 재미있고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그 렇게 1년을 보내고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교리교 사를 그만두게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과 함께 보냈던 시간이 계속 떠올라 어느 날은 괜히 교사 실 앞에서 얼쩡거려도 보고 토요일 미사에 참례하기 도 했다. 언제든 교리교사를 다시 시작할 마음을 늘 가지고 살다가 ..

세대간 소통 2025.02.15

누룩 |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부산성모병원 호스피스병동 환자들의 영적돌봄가 로서 오늘도 어김없이 기도로 하루를 연다. ‘주님 병자 들을 위해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 야 하나요? 제가 어떻게 할까요?’ 떨리는 간절함으로 도와주시기를 청하며, 아픈 이들을 만난다. 병동에서 환자나 보호자들이 가끔 나지막이 나에게 묻곤 한다. 아주 조심스레... “저~기... 수녀님 이곳에 오면 한... 얼마 정도 있다 죽게 되나요?”, “사람의 마음 먹기에 달렸지요. 어떤 분은 한 2~3일 생각하고 오시 지만 대세를 받고, 과거 삶을 정리하면서 모든 것을 내 려놓고 새로운 결심으로 매일을 산다고 고백하시며, 입원한 지 두 달이 지나 다른 병원으로 전원 가셔서 세 례성사까지 받고 재입원하여 지금도 잘 견디고 ..

세대간 소통 2025.02.08

누룩 | 이 겨울의 시간

이 겨울의 시간  조용히 강의실에 들어오는 그를 보았다. 전동휠체어 를 미끄러지듯 밀고 들어와 맨 앞줄에 착석했다. 팔십 이 넘은 연세에도 눈빛만은 빛났으나 고개를 들지 않 았다. 매번 원고를 제출했으나 원고 분량이 길고 도대 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섬광처럼 떠오르는 생각의 파편들이 백지에 툭툭 떨어져 도로 위에 나뒹 구는 낙엽처럼 부스러지고 있었다. 그 원고들을 첨삭 할 때면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러니 다른 수강생들은 첨삭시간을 갉아먹는 노인에게 보내는 시선이 따가웠 고, 노인의 눈은 나를 아프게 했다. 노인은 태어나면서 다리를 못 썼다. 초등학교도 가 기 전에 그는 구두닦이가 되었다. 구두가 어설프게 닦 이면 어른들 중에는 화를 내거나 구두통을 걷어차기 도 했고 얼굴에 침을 뱉기도 했..

세대간 소통 2025.02.01

누룩 | 우리가 사랑할 때

우리가 사랑할 때   “먹을 식량이 없어 아이들이 쓰러지고 있어요.” 절박 한 심정으로 도움을 청하는 아프리카 말라위 카피리 지역 여성들의 목소리다. 지난해 11월 우기임에도 계 속되는 가뭄에 심어 놓은 옥수수는 말라죽고,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리는 등 가뭄과 홍 수 피해가 동시에 일어났다. 일찍이 없던 기상이변에 따른 재앙이라며 주민들은 울부짖었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가뭄과 홍수, 지진이나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 폭력과 테러, 내전으로 발생한 난민은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으로 내몰고 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 소서’라고 우리가 바치는 ‘주님의 기도’와는 전혀 딴 세 상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20여 년, 아프리카와 아시아 오지를 다니면서 상상..

세대간 소통 2025.01.25

누룩 | 2027 세계청년대회 WYD가 시작되었습니다!

2027 세계청년대회 WYD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11월 WYD 한국 대표단은 WYD 상징물인 십 자가와 성모님 성화를 포르투갈 청년들로부터 받아오 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7일간 로마 순례를 다녀왔 습니다. 우리가 전달받을 WYD 상징물 중 하나인 나 무 십자가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라는 뜻에 따라 약 40년 동안 세계를 돌 며 젊은이들의 열정과 함께했습니다. 성모님의 성화 는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셨던 성모님을 청년들에게 알려주고, 어려움 속에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용기와 위로를 건네는 의미로 선물해 주며 두 번째 상징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11월 24일 마침내 두 가지 상징물을 성 베드로 대성 당에서 전달받았을 때 이제 한국 청년들이 열정을 이 어받아 뛰어갈 차례라..

세대간 소통 2025.01.18

누룩 | 우리와 같으신 그분

우리와 같으신 그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새삼 신기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라는 그리스도교. 이천 년 넘도록 이어진 신앙의 전통. 그 오랜 세월 동안 국경과 인종을 초월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온 이들 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토록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이 들이 자신들이 한 번도 직접 만나본 적이 없는 그리스 도라 불리는 이분을 하느님의 아들로 신앙하며, 이분 으로 인하여 절망의 어둠에서 일어나 희망의 빛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들의 삶의 방향을 바꾸 어 세상의 계산기와는 맞지 않는 온전히 새로운 형태 의 삶에 투신하기도 하며, 그렇게 이 신앙의 전통을 키 워 왔다. 그분의 무엇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이토 록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주님 세례 축일을..

세대간 소통 2025.01.11

누룩 | 새 마음, 새 각오

새 마음, 새 각오  지하철 열차 출입문 바로 옆에는 임산부석이, 열차 와 열차 연결 부분 옆에는 노약자석이 주로 마련되어 있다.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잡혀가지는 않지만 해당되는 사람이 편하게 앉도록 남겨두는 것이 우리 사회의 통념이다. 그런데 일반인 석에 빈자리가 있는데도 굳이 일반인이 임산부석에, 노약자석에 빈자리가 있는데도 굳이 노인들이 일반인 석에 앉아있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빈자리가 났을 때 나보다 좀 더 절실하게 자리에 앉는 것이 필요한 사람이 있지는 않은지 한 번 정도는 주위 를 둘러볼 법도 한데 다짜고짜 앉아버리는 경우도 많 이 볼 수 있다. 나쁜 의도라기보다는 주위를 살피는 것 이 몸에 배어있지 않아서 무심코 이루어지는 행동인 경우가 대부분이..

세대간 소통 2025.01.04

누룩 | 우리 가정에 예수님 모시기

우리 가정에 예수님 모시기  우리 가정엔 고등학교 2학년과 중학교 3학년인 두 아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새 벽미사와 가정기도를 함께 드렸습니다. 가정의 크고 작은 어려움과 바람들을 늘 함께 기도하며 살았습니 다. 그런데 큰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 되자 미사와 가 정기도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고, 이후 부 모로서 신앙교육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 러던 중 교구 가정사목국에서 진행하는 ‘가정성화미 사 및 성가정상 순회기도’가 우리 본당에서 개최되었 고, 우리 부부는 희망을 품고 ‘성가정상 순회기도’에 신 청했습니다. 신앙에 대한 아이의 차가운 마음과 무분 별한 태도를 되돌릴 수 있는 기회로 여겼습니다. 드디어 본당에서 ‘가정성화미사’를 봉헌하는 날, 자 녀들과 함께 ..

세대간 소통 2024.12.28

누룩 | 들음의 성모님을 만나다

들음의 성모님을 만나다  아들 부부는 결혼한 지 6년 만에 쌍둥이를 안았다. 결혼 이후, 아들 부부는 아기를 낳기 위해 많은 노력 을 했지만 주님의 뜻이 아니었는지 계속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말하지 않아 도 느끼게 되었다. 다른 방법은 없었고 기도하는 수밖 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하는 기도가 전부였던 우리에게 언젠가 조각 작품으로 본 ‘들음의 성모님’이 생각났다. 나는 남편에게 9일 기도를 함께 하자고 제의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새벽 5시 55분에 일어나 묵주의 9일 기도에 들어갔다. 새벽에 일어나 함 께 기도드린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묵주를 든 손에 절실함을 담았다. 묵주 한 알 한 알에 정성을 다했다. 청 원기도와 감사..

세대간 소통 2024.12.21

누룩 | 나의 신앙 일지

나의 신앙 일지  2015년 3월. 갓 20살이 된 나는 부산에 내려오게 되었다. 19년간 서울에서만 살아왔던 나에게 부산 사 투리와 거친듯하지만 누구보다 따듯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의 모습은 정겹게 느껴졌다. 부산에 내려와 가 장 먼저 찾아본 곳은 성당이었다. 주일 저녁,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집에서 제일 가까운 남산성당으로 발 걸음이 향했고, 때마침 청년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다. 미사가 끝난 후 수녀님 한 분이 나에게 다가와 청년회 에 가입을 권유하셨는데, 첫날 바로 가입하는 것이 부 담스럽기도 했지만 기쁘게 수녀님의 제안을 받아들여 청년회에 가입하게 되었다. 청년회 사람들은 서울에 서 온 나를 신기해하며 반갑게 맞아주었고, 이렇게 부 산에서의 신앙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20대의 막바..

세대간 소통 2024.12.14

누룩 | “그 누구도 죽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 누구도 죽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메시지를 받습니다만, 언제나 제 심장을 순간적으로 멈추게 하는 문자가 있습니다. “○○○사업장에서 ○○ 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시에 사망했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노동사목에 몸담고 있지만, 이 들의 죽음은 아직도 그리고 언제나 저에게는 익숙함 이 아니라 무거움과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수많은 노 동자가 죽어가고 있지만, 그리고 대형 참사로 이들의 죽음이 어느 정도 알려지긴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 사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한 인간의 생명’을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죽을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를 그대로 둔 사이, 또 다른 노동자가 죽음으로 내몰립니 다. 무관심 속에서 ‘인간’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저 또 한 이 무관심의 일원이기에 아프..

세대간 소통 2024.12.07

누룩 | ‘내던져진 존재’들에게 부치는 가을 편지

‘내던져진 존재’들에게 부치는 가을 편지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 간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 관하게 지금의 내가 처한 시대와 환경과 상황 속으로 ‘내던져짐을 당한 존재’, 그것이 인간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날 때부터 훌륭한 인격의 부모에게 서 금수저로 태어나고, 또 누군가는 부모에게조차 버 림받은 채 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운명으 로 태어나는가 봅니다. 하늘에서 내던진 씨앗이 싹을 틔우기에 딱 알맞은 옥토에 떨어지기도 하고, 가시를 피우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사막 한가운데 떨어 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자갈밭의 결핍과 갈증 속에서 온통 가시로 뒤덮인 꽃을 피운 엉겅퀴를 누가 탓할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면..

세대간 소통 2024.11.23

누룩 | 찰리 채플린 명언 4가지에 숨겨져 있는 진실!

찰리 채플린 명언 4가지에 숨겨져 있는 진실!  영국의 배우이며, 코미디언, 영화감독, 음악가인 찰 리 채플린은 88세에 세상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고 합니다. 첫째,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들의 문제조차 도. 둘째, 난 빗속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도 내 눈 물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 삶에서 가장 의 미 없는 날들은 웃지 않는 날이다. 넷째, 세상에서 가 장 좋은 의사 6명은 * The sun (태양) * Rest (휴식) *Exercise (운동) *Diet (다이어트) *Self-Respect (자존감) *Friends (친구) 라고. 삶은 여행일 뿐입니다. 웃음은 몸 안의 조깅입니다. 이 아름다운 명제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참사랑 의 이야기입니다. 주님 말고는 세상..

세대간 소통 2024.11.16

누룩 | 평신도 아카데미에 대하여...

평신도 아카데미에 대하여...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는 시노드 역사상 처음으로 주교님들만이 아닌 우리 평신도들도 참여하여 성직자, 수도자와 더불어 하느님 백성 모두가 친교와 사명과 참여에 대해 논의하여 교회가 새롭게 되는 기회를 모 색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교황님께서는 “시노달리타스는 투표하는 민주주의가 아니기에 시노드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 다.”라고 하시며, “시노달리타스 정신 안에서 하느님 백성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함께 일하며 미래의 계 획을 세우는데 있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특별히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지난 5월 9일에 2025년 희년을 공식 선포하시면서 칙서 『희망은 우리 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를 발표하셨습니다. 희망 은, 이 향주삼덕이 ..

세대간 소통 2024.11.09

누룩 |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늘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늘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모두들 따뜻하게 꽁꽁 싸매고 다니길 바라는 요즘 입니다. 온몸을 내리쬐던 여름 기운은 꿈이었던 것처 럼 사라지고 쌀쌀한 바람만이 남은 걸 보니 딱 감기 걸 리기 좋을 것 같거든요. 2024라는 숫자가 어색했는지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는지 유독 올해는 날짜를 표기할 때 정말 실수를 많이 했는 데, 벌써 2025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습 니다. 몇 년 전과는 다르게 온몸으로 시간이 빠르게 지 나가고 있음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을 생각하다 보면 머리에 제대 로 박힌 것처럼 떠오르는 기억이 한 해에 하나쯤은 있 기 마련입니다. 작년을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에 올라 온 후 처음 받은 성적표가 가장 충격적인 기억인 것 같 ..

세대간 소통 2024.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