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부산 688

누룩 | 믿음의 상태

믿음의 상태   어느새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합니다. 이 계절 의 바람은 인생의 가을쯤을 지나는 중년 남자를 감상 에 젖게도 만듭니다. “바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바람 같은 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갈까?” 바람의 시원(始原), 내 생명의 근원을 찾아가다 보면 하느님 나라에 닿을 것도 같습니다. 조용필이 부른 ‘바 람의 노래’에는 “바람의 노래를, 꽃의 지는 이유를 나 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라는 구절이 있습니 다. 나이 들면서 인간의 지혜와 감각으로는 알 수 없지 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걸 자주 깨닫게 됩니다. 이 깨달음이 믿음의 시작 아닐까요? 히브리서 에도 “믿음은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이라고 했 습니다. 이런저런 생각 중에 미사 강론 때 들은 ‘믿음..

세대간 소통 2024.09.07

누룩 | 선물

선물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들을 잊은 채 살아가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따뜻한 가정, 머물 수 있는 성당 그리고 항 상 지켜주시는 하느님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이었습 니다. 그리고 학업에 몰두하여 시간이 없다고 여겼기 에 가정과 주님은 항상 뒷전에 있었습니다. 그런 당연한 나날들이 계속되던 중 처음으로 시련이 다가왔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통제받는 삶을 살 수밖 에 없는 군 생활을 하게 되어 한순간에 따뜻한 집을 잃 어버렸고, 머물 수 있었던 성당을 잃어버렸고, 하느님 조차도 더 이상 바라봐주시지 않는 느낌을 받았습니 다. “왜 제게서 이 당연한 것들을 빼앗아 가시나요?”라 며 원망해 봤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고 시련들은 더욱 힘들게 다가왔습니다. 시련의 날들 속에서 “하느님 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

세대간 소통 2024.08.31

누룩 | 하느님과의 일치를 통한 마음의 여유를 기대하며

하느님과의 일치를 통한 마음의 여유를 기대하며  전공은 아니지만 경영에 대한 기본 지식 정도는 알 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대학 2학년 때 정년을 얼마 안 남긴 원로 교수님의 ‘경영학원론’ 강의를 수강했다. 이 교수님은 방학 때마다 자신이 박사학위를 받은 미 국의 대학을 방문하여 강의에 활용할 자료들을 모으 고, 아직 미국 밖으로 퍼지지 않은 신간도서를 구입하 여 다음 학기 자신의 강의 교재로 삼으시는 등 나름 좋 은 강의를 위해 노력하셨다. 그런데 하루는 강의 중에, “나는 복사기가 지금보다 더 보편화되는 것이 두렵다. 지금은 새로운 이론과 지식이 담긴 신간도서를 누구 보다 빨리, 때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손에 넣고 있기 때문에 이걸로 학생들한테 잘난 척 할 수 있지만, 누구나 어디서든 손쉽게 복사기를 ..

세대간 소통 2024.08.24

누룩 | “물이 그 주인을 만나자 얼굴이 붉어졌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자 얼굴이 붉어졌다.”  1928년 3월 3일 언양(현 울산시 울주군) 지역 16개 공소의 회원 대표 20명이 참석하여 ‘언양지방천주공 교협회(彦陽地方天主公敎協會)’를 조직하여 창립총회 를 개최하였다. 언양 본당의 평신도들이 교회 운영 보 조와 성전건립을 위하여 결성하였는데, 부산진 본당 에서 분리된 이후 교회의 자립과 전교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조성하고자 함이었다. 또한 당시 한국천주교 회가 외국 교회와 단체들의 재정적 도움에 대해 이제 는 자립하고자 한 것이다. 협회는 당시 언양 본당이 관할하던 지역의 공소들을 포함하였고, 임원은 각 공소의 회장들이다. 중요한 역 할은 이 시기 천주교회가 시행하는 가톨릭 운동에 적 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재정기반인 공소전(公所錢) 운영이었다. 공소..

세대간 소통 2024.08.18

누룩 | 그분의 어머니를 뵙고 싶어지는 때

그분의 어머니를 뵙고 싶어지는 때  요즘 대부분의 아파트에는 공동현관이 있어 비밀번 호를 입력해야 건물 안으로 들어가게끔 되어 있다. 보 안을 위한 것이기는 하나, 양손에 짐이라도 들었을 경 우엔 번거롭기도 하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 앞에서 공 동현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종종걸음으로 뒤따라 들 어가기도 한다. 그날도 귀갓길에 장을 본 터라 한 손엔 가방을, 다른 한 손엔 장바구니를 들고서 지하 주차장을 걷고 있었 는데, 저만치서 조그만 여자아이 하나가 나와 같은 방 향으로 가고 있었다. ‘아, 저 아이 뒤따라 들어가면 편 하겠구나’ 싶어 걸음을 빨리하였다. 몇 발짝을 종종걸 음으로 걷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가 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쫓아온다고 느끼면 불안해질 수도 있겠지. 그래, 잠시 ..

세대간 소통 2024.08.17

누룩 | 마태오 복음 6장 3절

마태오 복음 6장 3절  출근길 현관문을 나서 지하철역까지 20여 분의 거 리를 걸어가 역에 도착하여 전동차가 들어오기를 기 다리고 있는데 앞쪽에 핑크색 가방을 메고 크고 하 얀 리본을 한 젊은 자매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무 언가 불안해 보이는 자매의 행동이 눈에 고정되었 다. 순간 자매가 비실거리다 쓰러지며 몸을 부들부 들 떨었다. 사람들이 고함을 질러대고 혼비백산했 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나의 등을 센 힘으로 와락 밀었다. 자매에게 다가가 그 자매의 머리를 나의 무 릎에 앉히고 손은 그 자매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다. 힘을 주어 어깨를 주물럭거리자, 몇 명의 중년 자매 들이 팔다리를 주물러 주며 도와주었다. 자매의 떨 림이 멎고 딱딱했던 어깨가 부드러워지면서 자매가 눈을 떴다. 그리고 빤히 나를..

세대간 소통 2024.08.10

누룩 | 아버지

아버지  부모님께서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가정을 꾸리기 위 해 어린 저를 외할머니에게 맡겨두고는 고군분투하 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일곱 살이 될 때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지 못하고 할머니 아래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영유아기 때 부모님과 함께했던 추억이 거의 없습니 다. (특히 많이 바쁘셨던 아버지와의 추억 말입니다.) 어린 시절이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일지 모르지만 아버지와의 기억보다는 오히려 할머니 댁 근처에 사 시던 친척들과의 기억이 더 선명한 것 같습니다. 그리 고 이렇게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이 기억나지 않 는 것이 불운이라 생각하며 아버지를 참 많이 원망하 기도 했습니다. 유치원 때 부모참관 수업에 오지 못하 신 아버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주말이면 아버지와 공놀이를 즐기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세대간 소통 2024.08.03

누룩 | 택배비 무료 맞죠? 쌀 보내 주세요~

택배비 무료 맞죠? 쌀 보내 주세요~  “ 따르릉~ ”“ 안녕하세요.부산 우리농입니다.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저 유영일 신부인데요.쌀 보내 주세요. ”“ 네. 감물로 보내드릴게요.오늘 보내 드리면 내일 도착할 거예요. ” 부산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에는 ‘쌀지킴이’라고 있 습니다. 내가 먹을 쌀에 대한 비용을 선납하여 적립해 놓고 필요할 때 본부로 전화하여 쌀을 받아 보시는 분 들을 일컫습니다. 실은 그 이상의 선한 지향을 가진 이 들입니다. 언양에는 부산 우리농과 연계하여 생명농업을 짓는 농부들이 있습니다. 생명농업은 화학비료와 합성농약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화학비료와 합성농약이 먹는 쌀에 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 땅에도 해를 입히기 때문입니 다. 그래서 조금 고되 어도, 신앙인으로서 하느님이 주신..

세대간 소통 2024.07.20

누룩 | 주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주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얼마 전 한 학사님께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국장 님은 언제부터 노동 활동가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생각해 보니, 주님께서 저를 이곳으로 이끄셨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저는 활동가도 무엇도 아니 지만 말이죠. 노동과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대학 신입생 때입니다. 새내기로 처음 대학 교문을 지나던 날, 동아 리 신입생 모집 중이던 성당오빠가 절 불러세웠습니 다. 자연스럽게 가입한 동아리가 민중노래패였고, 그 곳에서 저는 민중노래와 함께 민주주의와 노동운동의 역사를 배우고 거리에서 싸우는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취업 이후의 저는 지역의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진 시민이자 정작 저 자신이 파견노동자로 중간착취의 대상임은 잘 몰랐던 무지한 청년이었..

세대간 소통 2024.07.13

누룩 | 사람을 찾습니다

사람을 찾습니다  요즘 들어 거의 하루에 한 번씩, 어느 날은 두어 번씩 사람을 찾는 문자가 들어온다. ‘인근에서 배회 중인’ 혹 은 ‘사람을 찾습니다.’로 시작하여 나이, 키, 옷, 신발뿐 만 아니라 신체 특징까지도 나열해 놓고 있다. 고령사 회인 만큼 치매 어르신들이 많은가 생각했지만, 연령 을 보면 그것도 아니다. 청년, 중학생, 심지어 초등학 생 나이까지 있어 안타까운 마음에 길거리를 지날 때 혹시나 하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기도 한다. 길을 잃어 집을 못 찾는 것인지 집을 나가버린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그 반면에 게임에 빠져서, 혹은 학교생활에 적응이 힘들어서, 일정한 직업 없이 주식을 한다는 등 여러 이 유로 방콕!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집 안에 있으면서도 대부분 식구들과 대화를 ..

세대간 소통 2024.07.06

누룩 | 가장 좋고, 완전한 길로 이끄시는 하느님

가장 좋고, 완전한 길로 이끄시는 하느님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 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열심한 신자이셨던 아버지의 권유로 성당에 처음 가게 되었고, 쉽지 않았던 6개월 간의 예비자교리 교육을 받고 구약의 인물인 요셉이 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 의지로 선택한 종교가 아니었고, ‘이 세상에 신이 어디 있나? 부자가 되어 즐거운 인생을 살면 되지!’라는 가치관으 로 살았던 저였기에 세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냉담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1년 후, 오토바이 사고로 큰 수술을 받게 되었 고, 수술대에 누워 전신마취를 하기 전 처음으로 하느 님께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그렇게 수술 을 받고 눈을 떠보니 저는 살아있었고 “죽을 것같이 아 프고 무서웠던 ..

세대간 소통 2024.06.29

누룩 | 나일강에서 만난 평범한 성자

나일강에서 만난 평범한 성자  ‘탈출기’라는 용어 대신 ‘출애굽기’로 익숙했던 ‘애굽’ 은 ‘이집트’를 지칭한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모세 가 이집트를 탈출하던 그 시대에도, 3천 5백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는 건, 그 뜨거운 땅을 가로 지르며 유유히 흐르고 있는 나일강일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 강을 어머니의 품으로 삼고 살아가는 수 많은 사람이 있다. 아브드도 그중 한 사람이다. 아브드는 관광객들을 위해 낡고 오래된 배를 운전하 면서 살아가는 나일강 변 토박이다. 처음 만난 날도 그 는 여기저기가 헤진 갈리베이아를 입은 채 익숙한 솜 씨로 배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대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잔심부름하고 있 었다. 소년은 아브드의 등 뒤에 숨은 채 수줍..

세대간 소통 2024.06.22

누룩 | 나일강에서 만난 평범한 성자

나일강에서 만난 평범한 성자  ‘탈출기’라는 용어 대신 ‘출애굽기’로 익숙했던 ‘애굽’ 은 ‘이집트’를 지칭한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모세 가 이집트를 탈출하던 그 시대에도, 3천 5백여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는 건, 그 뜨거운 땅을 가로 지르며 유유히 흐르고 있는 나일강일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 강을 어머니의 품으로 삼고 살아가는 수 많은 사람이 있다. 아브드도 그중 한 사람이다. 아브드는 관광객들을 위해 낡고 오래된 배를 운전하 면서 살아가는 나일강 변 토박이다. 처음 만난 날도 그 는 여기저기가 헤진 갈리베이아를 입은 채 익숙한 솜 씨로 배에 시동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대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잔심부름하고 있 었다. 소년은 아브드의 등 뒤에 숨은 채 수줍..

세대간 소통 2024.06.22

누룩 | 정화된 영혼을 얻으며

정화된 영혼을 얻으며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나 자신과의 문제, 타인과 의 문제, 그리고 사물, 사건과의 문제로 고민하며 삽니 다. 이 문제들의 해결책은 이미 나 자신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외부의 상황이 바뀌어 그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망집(妄執)도 보이지 않는 영혼을 더럽힙니다. 사람의 지혜가 열려 문명의 이기(利器)가 발달할수록 점점 나밖에 모르는 개인주의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안전한 삶을 위하여 우리가 오염된 자연을 보호하고 파괴된 환경을 쾌적하게 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우리 신앙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살기 힘겨운 이 웃을 배려하기 위해 하느님의 사랑을 통해서, 볼 수 없 는 영혼을 스스로 정화하는 일입니다. 배려는 내 마음을 타인에게 ..

세대간 소통 2024.06.15

누룩 | 작은 노력으로 지구를 구할 수 있습니다.

작은 노력으로 지구를 구할 수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 가장 안타까운 특징을 꼽으라면 ‘물질 만능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돈과 같은 ‘물질’은 인간 삶에 꼭 필요하다고 볼 수 있지만, 무엇 이든 지나친 것은 없는 것만 못하지요. 물질에 대한 집착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은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의 마음에는 어떻게 자 라겠다는 ‘꿈’보다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심’이 앞서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집에 사느냐가 친구 관계 의 중요한 기준이 돼 버렸습니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 은 어른들의 과욕이 투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물질에 집착하도 록 만드셨을까요? 적어도 지나친 욕심은 하느님의 뜻 과는..

세대간 소통 2024.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