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간 소통

누룩 | 사람을 찾습니다

松竹/김철이 2024. 7. 6. 14:07

사람을 찾습니다

 

 

요즘 들어 거의 하루에 한 번씩, 어느 날은 두어 번씩 사람을 찾는 문자가 들어온다. ‘인근에서 배회 중인’ 혹 은 ‘사람을 찾습니다.’로 시작하여 나이, 키, 옷, 신발뿐 만 아니라 신체 특징까지도 나열해 놓고 있다. 고령사 회인 만큼 치매 어르신들이 많은가 생각했지만, 연령 을 보면 그것도 아니다. 청년, 중학생, 심지어 초등학 생 나이까지 있어 안타까운 마음에 길거리를 지날 때 혹시나 하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기도 한다. 길을 잃어 집을 못 찾는 것인지 집을 나가버린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그 반면에 게임에 빠져서, 혹은 학교생활에 적응이 힘들어서, 일정한 직업 없이 주식을 한다는 등 여러 이 유로 방콕!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집 안에 있으면서도 대부분 식구들과 대화를 기피하고 산다. 그들은 청년 이 되고 중장년이 되어서도 지속적인 사회생활이 어 려워 더욱 마음의 문을 꼭꼭 닫아걸고 산다. 집에 있으 되 집을 잃어버린 것은 마찬가지다.

 

‘왜 집을 잃어버리는 것일까’ 생각하다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병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웠다. 딱히 갈 곳도 없으면서 집이 싫다면, 집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이 보기 싫다면, 때론 공포스럽다면 그들은 어 디로 가야 할까. 가까이 마주 보는 사람들이 쳐다보고 싶지 않을 때 어디를 바라보아야 할까.

 

하루는 글쓰기 강의실에 지적이고 세련된 육십 대의 아주머니가 오셨다. 한 달쯤 지나서 글을 써오셨는데 의사가 되어 자랑스럽기 그지없었던 딸이 병원을 개 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 기였다. 눈이 짓무르도록 몇 년을 지내다 겨우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강의실 안은 ‘저런 저런’하는 한숨 섞인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그랬다. 때가 되면 우리는 등 떠밀지 않아도 모두가 집을 떠나게 되어 있다. 그러니 떠나기 전까지 한 집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욕심을 줄이고 모두 가 행복하도록 죽을힘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떠나지 않아도 되는 집’이 있다. ‘하느님의 집’이다. 매주 미사를 드리며 성령과 함께 예 수님과 성모님의 삶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그지없는 사 랑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내가 가는 길을 잃었다가도 언제나 달려 들어갈 수 있는 집. 강가에서 윤슬에 사로 잡히거나 아름답고 매혹적인 것들에 사로잡혔다가도 ‘아참, 나에겐 더 아름다운 집이 있지’ 하고 뛰어 들어올 수 있는 집이 있다. 수많은 잘못에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는 너그러움과 위로와 사랑이 충만하여 기댈 수 있는 따뜻함이 감싸고 있다. 오늘도 사람 찾는 문자가 들어왔다. 집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두 손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