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 86

아직 깨닫지 못한 이의 달리기 | 최광희 마태오 신부님(문화홍보국장)

아직 깨닫지 못한 이의 달리기 최광희 마태오 신부님(문화홍보국장) 이 글을 읽고 계실 우리 교우분들 중에는, 서로 ‘부활 을 축하한다.’며 나누고 있을 인사가 이질적으로 느껴지 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소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평범한 감정들을 스스로 지켜보며, ‘사순 시기를 제 대로 보내야 부활을 기쁘게 맞이한다고들 하던데, 그러지 못한 내 탓인가.’ 하며 씁쓸해하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부활은 신앙의 완성을 선포하는 순간이 아닙니다. 그 대 신, 달려갈 목표를 분명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희망 을 선사합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의 모습을 통해 그것을 다시금 되새깁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이 비었다는 소식 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빈 무덤을 보고 믿게 되었다는 말 ..

사제의 공간 2024.03.30

변모, 말이 없는 말, 자랑이 없는 참빛 | 이근상 시몬 신부님(예수회)

변모, 말이 없는 말, 자랑이 없는 참빛 이근상 시몬 신부님(예수회) 주님의 변모, ‘새하얀 빛’이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그러 나 그 빛은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힘자랑도, 홀로 우 뚝 선 마법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 변모 사건의 위치는 언제나 당혹스런 수난 예고에 이어진 뒷자리였습 니다. 변모는 이를테면 밤을 낮으로 뒤바꾸는 강렬한 태 양이 아니라 ‘수난’이라는 밤길에 내민 손, 흔들리는 믿음 을 붙잡는 따뜻한 빛이었습니다. 십자가와 죽음, 메시아 와 양립할 수 없는 실패의 예고로 제자들이 길을 잃었을 때, 변모는 빛으로 함께하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저도 길을 잃어 빛이 필요한 날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의 죽음이었습니다. 그해 정초 아침, 안부차 드린 전화 너 머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사제의 공간 2024.02.25

주저앉아 있지 말고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납시다! | 신희준루도비코 신부님(양천성당 주임신부 겸 제18양천지구장)

주저앉아 있지 말고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납시다! 신희준루도비코 신부님(양천성당 주임신부 겸 제18양천지구장)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영화 의 명대사 혹 시 기억하시나요? 이 대사를 떠올릴 때마다 참 모든 게 계획 대로 순조롭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듭니 다. 우리 삶에는 언제나 생각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 이니까요. 누가 알았겠습니까? 지난 몇 년간 코로나 때문에 미사가 중단되고 성당 문이 닫힐 줄을 말이죠? 좋아하는 부 모 형제와 자녀들을 몇 년이나 만나지 못하고, 사랑하는 이들 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게 될 줄을요. 또 사랑하는 이들이 투 병 중에 있는데도 찾아가지 못하게 될 줄 누가 미리 알았겠 습니까?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오는 외로움 과 무력감에서 벗..

사제의 공간 2024.02.01

들리는 것과 들을 소리 | 류지인야고보 신부님(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들리는 것과 들을 소리 류지인야고보 신부님(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새날이 시작됨을 알리는 새벽 수도원 종소리가 청명하 게 울려퍼집니다. 그러나 오늘은 시간을 꽤나 지체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늑장을 부린다면 아침 기도 시간에 늦을 것이 분명합니다. 얼굴의 물기를 닦을 시간 도 없이 허겁지겁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가까스로 지각은 면했으나 헐떡이는 숨소리가 다른 형제들의 잠심을 깨뜨 리고, 누르지 못한 머리의 까치집은 기도 시간 내내 저의 분심이 되고 말았습니다. 종소리에 담긴 부르심에 귀를 닫아버린 결과입니다. 귀는 언제나 열려 있기에 구조적으 로 소리를 거를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듣는 소리와 흘 려버리는 소리가 공존하는 현실을 보면 우리 영혼에는 모 름지기 각자의 귀마개를 두고 있는 모양입니..

사제의 공간 2024.01.29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 방종우 야고보 신부님(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방종우 야고보 신부님(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우연히 읽게 된 진은영 시인의 시, 의 일부이자 시집의 제목입니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마음이 참 따뜻해졌어요. “오래된 거리”가 주는 의미가 온전히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저의 오래된 거리를 떠올려 봅니다. 친구들과 함께 뛰놀 던 어린 시절의 거리, 추운 새벽 복사를 서기 위해 어머니 의 손을 꼬옥 잡고 걷던 거리, 유학 시절 공부에 지쳐 터벅 터벅 걸어가던 거리. 언제 다시 찾아가도 저를 따뜻하게 반 겨줄 것 같은 오래된 거리들이랍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저를 사랑해 주는 가장 오래된 거리는 예수님이에요. 저의 허물도 부족함도 알고 계시지만 단아 한 불빛을 밝..

사제의 공간 2023.05.16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 방종우 야고보 신부님(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방종우 야고보 신부님(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우연히 읽게 된 진은영 시인의 시, 의 일부이자 시집의 제목입니다.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마음이 참 따뜻해졌어요. “오래된 거리”가 주는 의미가 온전히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저의 오래된 거리를 떠올려 봅니다. 친구들과 함께 뛰놀 던 어린 시절의 거리, 추운 새벽 복사를 서기 위해 어머니 의 손을 꼬옥 잡고 걷던 거리, 유학 시절 공부에 지쳐 터벅 터벅 걸어가던 거리. 언제 다시 찾아가도 저를 따뜻하게 반 겨줄 것 같은 오래된 거리들이랍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저를 사랑해 주는 가장 오래된 거리는 예수님이에요. 저의 허물도 부족함도 알고 계시지만 단아 한 불빛을 밝..

사제의 공간 2023.05.15

마음이 담긴 선물|김한수 토마스 신부님(화요일아침 예술학교 교장)

마음이 담긴 선물 김한수 토마스 신부님(화요일아침 예술학교 교장) 선물은 준비하셨나요? 크리스마스가 코앞입니다. 선물 받을 준비는 하셨나요? 말씀이 사람이 되신 엄청난 신비의 선물을 받아들일 준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일상 에서 주고받는 선물 가운데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사소한 일상의 대화에서 취향을 읽어 내고, 상황과 여건을 고려하여 고민하며 마련된 선물에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사소한 선물에 담겨 있는 그 마음을 읽어 내면,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 고맙다고 말합니다. 말씀 이 사람이 되신 육화의 신비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 해 스스로 선물이 되어 주신 마음이 녹아 있음을 읽어내면, 그 고마움의 크기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하느님 선물에 담긴 마음을 읽고 나면..

사제의 공간 2022.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