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간 소통 451

말씀의 이삭 | 용서를 위하여

용서를 위하여  최양업 신부님의 생애를 그리는 소설 《아, 최양업》의 연재를 시작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제가 청주교구 장봉훈 주교님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였습니다. 주교님이 탄식처 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의 오묘함이라니⋯.” 최 신부님의 숭고한 생애를 널리 세상에 알리기 위해 소설이나 드라마는 어떨까, 그런 생각으로 주교님은 오래 전부터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찾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랬는데 자신도 모르는 어딘가에서 소설가 하나는 또 소설 을 준비하고 있었다니. 이것이 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의 오묘함이 아니겠는가 하는 탄식이었습니다. 주교님의 축복과, 기도 중에 기억해 주실 것을 간절히 청하고 주교관을 나왔습니다. 주차장에는 드넓은 광장이 햇빛 속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 순간, 빛의 화살..

세대간 소통 2024.09.17

누룩 | 어떤 기적

어떤 기적  금빛 억새로 유명한 간월재 아래 산죽 숲속의 죽림 굴(대재공소)은 경신박해(1860년) 때 최양업 신부가 4개월여 은신했던 곳이며, 당시 24세에 불과한 동정 녀 김 아가다가 선종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가기 위 해서는 배내골 주차장에서 3.2km의 산길을 올라야 한다. 처음에는 수월하게 시작되는 임도가 나중에는 숨을 턱턱 막히게 할 정도로 가팔라진다. 지난 6월 말, 30여 년 전 죽림굴의 소중함을 세상에 드러낸 김영곤 신부님이 집전하시는 미사(*하반기 9월 ~11월 매주 금요일 11:00)를 봉헌할 기회를 가졌다. 동행 한 세 분이 육십 대 후반에 이르는 자매님들이라 체력 의 한계에도 강행한 길이었다. 순례길은 박해의 고통을 느끼게 하려는 듯 어려움이 따랐다. 자매님 한 분의 걸음이 점..

세대간 소통 2024.09.14

누룩 | 믿음의 상태

믿음의 상태   어느새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합니다. 이 계절 의 바람은 인생의 가을쯤을 지나는 중년 남자를 감상 에 젖게도 만듭니다. “바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바람 같은 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갈까?” 바람의 시원(始原), 내 생명의 근원을 찾아가다 보면 하느님 나라에 닿을 것도 같습니다. 조용필이 부른 ‘바 람의 노래’에는 “바람의 노래를, 꽃의 지는 이유를 나 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라는 구절이 있습니 다. 나이 들면서 인간의 지혜와 감각으로는 알 수 없지 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무엇이 있다는 걸 자주 깨닫게 됩니다. 이 깨달음이 믿음의 시작 아닐까요? 히브리서 에도 “믿음은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이라고 했 습니다. 이런저런 생각 중에 미사 강론 때 들은 ‘믿음..

세대간 소통 2024.09.07

말씀의 이삭 | 내가 부를 백조의 노래

내가 부를 백조의 노래  김수환 추기경님의 이야기를 담은 책 《용서를 위하여》 를 펴냈을 때였습니다. 잘 아는 스님 한 분이 그 책 여러 권을 사서 가까운 분들에게 보내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 들려온 말이, 제 가슴에 칼이 되어 꽂혔습니다. 스님이 그분들에게 읽고 난 소감을 물었더니, 책 이야기 는 없이 첫 마디가 대뜸 “이 사람, 아직 살아 있어?” 하더 랍니다. 이제 저도 그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매일매일 나이만 큼 절망하고, 나이만큼 분노하고, 나이만큼 허무해지면서 살아갑니다. 오늘이 어제 같지 않았으니 내일은 또 어디 만큼 달라지려나. 어쩌다, 상식이 저주받는 이 겸손조차 없는 시대가 제가 맞고 있는 노년입니다 제가 60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런가, 자네도 벌써 그 나이가 되었나. 60..

세대간 소통 2024.09.03

누룩 | 선물

선물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들을 잊은 채 살아가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따뜻한 가정, 머물 수 있는 성당 그리고 항 상 지켜주시는 하느님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이었습 니다. 그리고 학업에 몰두하여 시간이 없다고 여겼기 에 가정과 주님은 항상 뒷전에 있었습니다. 그런 당연한 나날들이 계속되던 중 처음으로 시련이 다가왔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통제받는 삶을 살 수밖 에 없는 군 생활을 하게 되어 한순간에 따뜻한 집을 잃 어버렸고, 머물 수 있었던 성당을 잃어버렸고, 하느님 조차도 더 이상 바라봐주시지 않는 느낌을 받았습니 다. “왜 제게서 이 당연한 것들을 빼앗아 가시나요?”라 며 원망해 봤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고 시련들은 더욱 힘들게 다가왔습니다. 시련의 날들 속에서 “하느님 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

세대간 소통 2024.08.31

말씀의 이삭 | 기도를 커지게 하는 것들

기도를 커지게 하는 것들  상당히 아날로그적이지만 시각적, 후각적으로 충격과 파급력이 큰 오물 풍선 사건이 연일 터지면서 한동안 잠 잠하던 북한 관련 뉴스가 우리의 관심을 끕니다. 저에게 북한은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작년에 돌아가신 친정 아버 님이 개성 출신이시고, 저 또한 개성에 성당을 세웠다는 자부심이 세뇌(?) 수준으로 강한 집안의 자손이기 때문입 니다. 피난 때 들고 나온 개성성당 사진을 복사해서 우리 가족들은 모두 한 장씩 나누어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 역 시 우리 집안의 신앙적 자부심인 거죠. 미술을 전공하고 아트를 주 무기로 살아가는 저는 한 때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 렉터로서 아트 콜라보 사업(예술과 기업, 예술과 제품을 연결하여 부 가가치를 올리도록 하..

세대간 소통 2024.08.27

누룩 | 하느님과의 일치를 통한 마음의 여유를 기대하며

하느님과의 일치를 통한 마음의 여유를 기대하며  전공은 아니지만 경영에 대한 기본 지식 정도는 알 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대학 2학년 때 정년을 얼마 안 남긴 원로 교수님의 ‘경영학원론’ 강의를 수강했다. 이 교수님은 방학 때마다 자신이 박사학위를 받은 미 국의 대학을 방문하여 강의에 활용할 자료들을 모으 고, 아직 미국 밖으로 퍼지지 않은 신간도서를 구입하 여 다음 학기 자신의 강의 교재로 삼으시는 등 나름 좋 은 강의를 위해 노력하셨다. 그런데 하루는 강의 중에, “나는 복사기가 지금보다 더 보편화되는 것이 두렵다. 지금은 새로운 이론과 지식이 담긴 신간도서를 누구 보다 빨리, 때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손에 넣고 있기 때문에 이걸로 학생들한테 잘난 척 할 수 있지만, 누구나 어디서든 손쉽게 복사기를 ..

세대간 소통 2024.08.24

누룩 | “물이 그 주인을 만나자 얼굴이 붉어졌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자 얼굴이 붉어졌다.”  1928년 3월 3일 언양(현 울산시 울주군) 지역 16개 공소의 회원 대표 20명이 참석하여 ‘언양지방천주공 교협회(彦陽地方天主公敎協會)’를 조직하여 창립총회 를 개최하였다. 언양 본당의 평신도들이 교회 운영 보 조와 성전건립을 위하여 결성하였는데, 부산진 본당 에서 분리된 이후 교회의 자립과 전교 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조성하고자 함이었다. 또한 당시 한국천주교 회가 외국 교회와 단체들의 재정적 도움에 대해 이제 는 자립하고자 한 것이다. 협회는 당시 언양 본당이 관할하던 지역의 공소들을 포함하였고, 임원은 각 공소의 회장들이다. 중요한 역 할은 이 시기 천주교회가 시행하는 가톨릭 운동에 적 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재정기반인 공소전(公所錢) 운영이었다. 공소..

세대간 소통 2024.08.18

누룩 | 그분의 어머니를 뵙고 싶어지는 때

그분의 어머니를 뵙고 싶어지는 때  요즘 대부분의 아파트에는 공동현관이 있어 비밀번 호를 입력해야 건물 안으로 들어가게끔 되어 있다. 보 안을 위한 것이기는 하나, 양손에 짐이라도 들었을 경 우엔 번거롭기도 하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 앞에서 공 동현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종종걸음으로 뒤따라 들 어가기도 한다. 그날도 귀갓길에 장을 본 터라 한 손엔 가방을, 다른 한 손엔 장바구니를 들고서 지하 주차장을 걷고 있었 는데, 저만치서 조그만 여자아이 하나가 나와 같은 방 향으로 가고 있었다. ‘아, 저 아이 뒤따라 들어가면 편 하겠구나’ 싶어 걸음을 빨리하였다. 몇 발짝을 종종걸 음으로 걷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가 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쫓아온다고 느끼면 불안해질 수도 있겠지. 그래, 잠시 ..

세대간 소통 2024.08.17

말씀의 이삭 | 성모님이 찾아오시는 창조적 방법

성모님이 찾아오시는 창조적 방법  “어떻게 살지? 미술이 내 인생의 최선이 맞나?”를 고민 하며 절도 찾아가고, 머리 깎고 산으로 들어가겠다며 스 님을 붙들고 떼쓰고 소란을 피우던 시절, 불교에 깊은 영 향을 받고 ‘관계’라는 주제로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열 심히 관계를 맺어 가면서 일단 살아가 보자.’ 이렇게 살아 갈 구실을 찾아보기로 하고 그 주제를 표현할 매개로 못 을 활용했습니다. 그렇게 못에 빠져있던 시절, 친구가 인생 처음 사게 된 작은 한옥을 방문하게 되었지요. 못을 생필품들 걸개로 삼고, 못에 전선줄들을 걸어 졸대를 대신하는 등, 온갖 기 능들을 못으로 대체하여 사방이 못들로 꾸며진 그 집은 내 평생 못으로 씨름하면서도 생각지 못한 발상들이 생활 로 숙성된 절실함으로 자리잡고 있는 곳..

세대간 소통 2024.08.13

누룩 | 마태오 복음 6장 3절

마태오 복음 6장 3절  출근길 현관문을 나서 지하철역까지 20여 분의 거 리를 걸어가 역에 도착하여 전동차가 들어오기를 기 다리고 있는데 앞쪽에 핑크색 가방을 메고 크고 하 얀 리본을 한 젊은 자매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무 언가 불안해 보이는 자매의 행동이 눈에 고정되었 다. 순간 자매가 비실거리다 쓰러지며 몸을 부들부 들 떨었다. 사람들이 고함을 질러대고 혼비백산했 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나의 등을 센 힘으로 와락 밀었다. 자매에게 다가가 그 자매의 머리를 나의 무 릎에 앉히고 손은 그 자매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다. 힘을 주어 어깨를 주물럭거리자, 몇 명의 중년 자매 들이 팔다리를 주물러 주며 도와주었다. 자매의 떨 림이 멎고 딱딱했던 어깨가 부드러워지면서 자매가 눈을 떴다. 그리고 빤히 나를..

세대간 소통 2024.08.10

말씀의 이삭 | 모태 신자의 필수(?) 코스, 냉담

모태 신자의 필수(?) 코스, 냉담  저는 ‘젬마’라는 세례명을 호적에도 등록해서 본명으 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풋풋하고 창창하던 대학 교 1학년 시절, 일단 좀 묻어가자는 마음으로 첫 단체 소 개팅 이벤트에 제 인생 처음 ‘한○○’ 가명 사용을 시도 했는데…. 아뿔사! 단체 소개팅에서 가명을 쓰고자 했다 면 친구들 모두에게 제 가명을 공유하고 숙지시켜야 했 건만, 저 혼자만 가명을 파트너에게 발설했으니! 단체 소 개팅으로 함께하는 친구들은 저를 당연히 ‘한젬마’로 불 러대는 바람에, 상대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코미디 사태 가 발생! 그렇게 용감하게 가명을 질러댔다가 소개팅을 망 치고 그냥 줄행랑을 쳐버렸던 인생 최대의 실수 이후, 저 는 그나마의 가명 사용도 철회하였습니다. 평범하게 살기 는 애..

세대간 소통 2024.08.06

누룩 | 아버지

아버지  부모님께서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가정을 꾸리기 위 해 어린 저를 외할머니에게 맡겨두고는 고군분투하 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일곱 살이 될 때까지 부모님과 함께 살지 못하고 할머니 아래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영유아기 때 부모님과 함께했던 추억이 거의 없습니 다. (특히 많이 바쁘셨던 아버지와의 추억 말입니다.) 어린 시절이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일지 모르지만 아버지와의 기억보다는 오히려 할머니 댁 근처에 사 시던 친척들과의 기억이 더 선명한 것 같습니다. 그리 고 이렇게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이 기억나지 않 는 것이 불운이라 생각하며 아버지를 참 많이 원망하 기도 했습니다. 유치원 때 부모참관 수업에 오지 못하 신 아버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주말이면 아버지와 공놀이를 즐기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세대간 소통 2024.08.03

말씀의 이삭 | 나만의 연기 비결

나만의 연기 비결  저는 연기를 정식으로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죠. 그 저 우연한 기회에 연기자의 길로 들어섰고 대중의 사랑 을 받게 되어 지금까지 왔을 뿐입니다. 그러니 제가 연기 를 잘해서 대중의 사랑을 받고 꾸준히 연기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느님의 은총이 있었 을 뿐이죠.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면, 연기를 정말 잘하는 배우인데 기회가 없어서 작품을 하지 못하고 대중에게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연기를 그 렇게까지 잘하지 않지만, 꾸준히 배우 생활을 하는 저 같 은 사람도 있죠. 그래서 저는 연기를 잘하지만 기회를 얻 지 못하는 배우들에게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라도 연기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세대간 소통 2024.07.30

엄마의 행복열차 탑승

엄마의 행복열차 탑승  사랑하는 아들 보니파스야! 네가 프랑스에 살게 되면서 떨어져 산 시간이 35년 이나 흘렀구나. 어느덧 엄마도 80살이 되었고,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큼 될지 몰라 엄마 마음을 아들에게 전하고 싶어 펜을 들었다. 우리 가정은 세상 속에서 풍요로운 삶을 살았지만, 떠올리기조차 싫은 낭떠러지에 떨어진 상황에서 너희 들이 먼 타국에서 느꼈을 절망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 프구나. 그 와중에 아빠가 하늘나라에 가시고, 남은 우 리는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었지. 같은 하늘 아래지만 각각 다른 나라에 살면서 혼자 덩그러니 울며불며 너희들도 모르는 죽음의 문턱까지 간 엄마는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 했단다. 어느 누구도 엄마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을 때, 그동안 등을 돌렸던 성당을 찾아가 나도 모르게 ..

세대간 소통 2024.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