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 신자의 필수(?) 코스, 냉담
저는 ‘젬마’라는 세례명을 호적에도 등록해서 본명으 로 삼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풋풋하고 창창하던 대학 교 1학년 시절, 일단 좀 묻어가자는 마음으로 첫 단체 소 개팅 이벤트에 제 인생 처음 ‘한○○’ 가명 사용을 시도 했는데…. 아뿔사! 단체 소개팅에서 가명을 쓰고자 했다 면 친구들 모두에게 제 가명을 공유하고 숙지시켜야 했 건만, 저 혼자만 가명을 파트너에게 발설했으니! 단체 소 개팅으로 함께하는 친구들은 저를 당연히 ‘한젬마’로 불 러대는 바람에, 상대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코미디 사태 가 발생! 그렇게 용감하게 가명을 질러댔다가 소개팅을 망 치고 그냥 줄행랑을 쳐버렸던 인생 최대의 실수 이후, 저 는 그나마의 가명 사용도 철회하였습니다. 평범하게 살기 는 애초에 힘든 인생이 이름에서부터 주어진 것 같아요.
이 특이한 이름에 대한 반응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입 니다. “어머 참 특이한 이름이네요?” 혹은 “아, 세례명이 네요? 가톨릭 신자시군요?” 대부분의 가톨릭 신자의 경 우, 한자로도 표기할 수 있는 이름을 세례명과는 별도로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대놓고 무조건 세례명만 있는 경우 는 드물어서 그것만으로도 골수 가톨릭 집안임을 드러내 는 기회이긴 했습니다. “어머 천주교 신자시죠? 세례명이 죠? 하느님 믿으시나봐요?”
천주교 신자 맞고, 세례명 맞고, 다 맞는데…. 근데 ‘하느 님을 믿느냐?’는 질문에는 왜 그렇게 숨이 턱 막히던지….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하기에 모태 신자로서 세례를 받 은 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자신 있고 당 당한 믿음을 지니기 위해 늘 고민해야 했고, 그래서 되려 오 랜 냉담의 울타리로 들어가 끙끙 헤매야 했으며, 벗어나기 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느님을 찾고야 말겠다. 내게 믿음이 필요하다. 확신을 가지고 싶다.’라고 하면서 방 황하던 기나긴 시간들이었습니다. 부르심에 대한 응답과 순종을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곁에 계신 하느님, 함께하 시는 하느님을 밀어내고 등잔 밑이 어두웠던 시절이었죠.
늘 그 사람에게 딱 맞는 무게, 방향, 방법으로 부르시는 그분은 정말 호되게 저를 당신 앞에 끌어다 놓으셨습니다. 또한 교만과 거만으로 무장하여 천근만근 치장이 화려했던 제 날개를 꺾어 떨어뜨리셨습니다. 저는 추락한 바닥에서 고 개를 들어 비로소 저를 기다리고 계시던 하느님을 만났고 그 분을 향한 걸음마를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이내 성큼 성큼 걸으며 큰 날개짓을 시작했고,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그분을 찬양하는 일꾼이 된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태 신자들에게 냉담은 필수(?) 코스라 고 말하며 기다려 주면 어떨까요? 의심도 하고, 검토도 하고, 비교도 하면서 방황의 시간을 충분히 가져보는 것, 그 자체로 인정해 준다면, 냉담하고 있을 많은 모태 신앙 신자들도 돌아오기가 좀 더 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냉 담도 부지런히 열심히! 반항과 방황도 뜨겁게! 하느님은 그 모습도 인정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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