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적
금빛 억새로 유명한 간월재 아래 산죽 숲속의 죽림 굴(대재공소)은 경신박해(1860년) 때 최양업 신부가 4개월여 은신했던 곳이며, 당시 24세에 불과한 동정 녀 김 아가다가 선종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가기 위 해서는 배내골 주차장에서 3.2km의 산길을 올라야 한다. 처음에는 수월하게 시작되는 임도가 나중에는 숨을 턱턱 막히게 할 정도로 가팔라진다.
지난 6월 말, 30여 년 전 죽림굴의 소중함을 세상에 드러낸 김영곤 신부님이 집전하시는 미사(*하반기 9월 ~11월 매주 금요일 11:00)를 봉헌할 기회를 가졌다. 동행 한 세 분이 육십 대 후반에 이르는 자매님들이라 체력 의 한계에도 강행한 길이었다.
순례길은 박해의 고통을 느끼게 하려는 듯 어려움이 따랐다. 자매님 한 분의 걸음이 점점 느려지더니, 가파 른 고갯길에서는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그때 휴양림 을 관리하는 행정관서의 차 한 대가 올라오는 것이 보 였다. 다급한 마음에 손을 흔들었지만, 열리다 만 차창 으로는 “그런 몸으로 왜 올라가느냐.”는 퉁명스러운 대답뿐이었다
그러나 미사를 모시려는 자매님의 의지가 대단했다. 2시간여에 걸친 산행으로 지친 몸도 성스러운 제단 앞에서는 거뜬했다. 하지만, 하산길은 달랐다. 급경사 의 내리막길을 몇 걸음 지나지 않아 발길이 흔들렸다.
그때 뒤에서 다시 차량의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에는 운행을 막아서기라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매 몰차게 거절하던 그 차가 아니었다. 말을 꺼내기도 전 에 한 분이 내려 자매님이 뒷좌석에 타는 것을 도왔다. 그리고 멀리 앞서가는 두 자매님을 가리키자 이내 고 개를 끄덕였다.
하산길의 마지막 얼마간을 남겨두고 매주 미사 집전 을 돕는 다른 자매님의 걸음을 따라잡았다. 조금 전의 경위를 들은 자매님의 조용한 말씀이 다가왔다.
“그 자매님이 곤란을 겪지 않으셨다면 죽림굴 미사 의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차는 최양업 신부님이 보내주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랬다. 곤경에 처한 이를 외면하지 않는 가경자의 마음이었다. 바로 작은 기적이었다. 미사를 봉헌하며 바친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시성 기도문’의 한 구절을 되새겼다.
‘… 땀의 순교자 최양업 토마스 사제는 굳건한 믿음 과 불타는 열정으로 구만리 고달픈 길을 마다하지 않 고 방방곡곡 교우촌을 두루 다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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