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를 위하여
최양업 신부님의 생애를 그리는 소설 《아, 최양업》의 연재를 시작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제가 청주교구 장봉훈 주교님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였습니다. 주교님이 탄식처 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의 오묘함이라니⋯.”
최 신부님의 숭고한 생애를 널리 세상에 알리기 위해 소설이나 드라마는 어떨까, 그런 생각으로 주교님은 오래 전부터 그 분야의 전문가를 찾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랬는데 자신도 모르는 어딘가에서 소설가 하나는 또 소설 을 준비하고 있었다니. 이것이 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의 오묘함이 아니겠는가 하는 탄식이었습니다.
주교님의 축복과, 기도 중에 기억해 주실 것을 간절히 청하고 주교관을 나왔습니다. 주차장에는 드넓은 광장이 햇빛 속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 순간, 빛의 화살 같은 말이 제 가슴을 가로질러 갔습니다. 그것이었나. 주님의 뜻이었나. 훗날 언젠가는 순교자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주 제도 모르고 나댈, 깜도 안 되는 나를 염려하시고, 주님께 서는 내게 그 고문을 겪게 하신 것이었던가.
1981년 5월, 세칭 ‘한수산 필화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저는 국군 보안사에 압송되어 고문을 받는 치욕을 겪어야 했습니다. 두 눈이 가려진 채 혹심한 구타 속에서 저는 보 안사 지하 고문실로 끌려갔고 물고문과 전기 고문으로 이 어지는 가혹 행위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이 와 서, 주교관 앞의 햇빛 속에 서서야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 때의 고문은 나를 위해 마련하신 주님의 담금질이었다는, 통곡의 깨달음!
레이저 같은 한 줄기의 불빛만이 내 얼굴을 비추는 캄 캄한 지하 고문실, 손발과 가슴팍에 22개의 전선을 연결 한 후 전기가 더 잘 통하도록 온몸에 물을 부어댄 후 살을 태우던 전기 고문도, 철제 의자에 묶인 채 기절해 쓰러져 있는 나를 깨우기 위해 퍼부은 물로 흥건하게 젖어서 시 멘트 바닥에 걸레처럼 널브러져 있던 그것도 주님의 뜻이 었던 겁니다.
취조실의 의자에 묶인 채 앉아서 한순간도 눈을 붙이 지 않고 바라보던 그 기나긴 밤 그리고 찾아온 새벽에 스 며드는 밝음이 이상스레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는 걸, 그 빛은 한없는 무게로 내 몸을 감쌌다는 걸 어떻게 쓸 수 있 겠는가. 겪지 않고서.
몸을 일으켜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교구청 마당을 걸 어 나오며, 저는 다 용서했습니다. 고문의 처절한 기억도 축복처럼 느껴졌습니다. 빛의 화살 같은 주님의 말씀이 또 제 가슴을 가로질러 갔습니다. “이제 알겠니. 다 용서 하여라. 증오의 사막을 건너가거라. 그리고 써라, 네가 만 난 그 새벽의 푸른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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