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달루페의 성모님
세례를 받고 난 사흘 후, 저는 중국 상하이 공항에 홀 로 앉아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습니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생긴 건 초등학교 4학년 때, 어쩌다가 그런 버릇 이 생겼는지 무언가 초조할 때도, 하릴없이 혼자 있을 때 나 하다못해 신문을 읽을 때까지도 어김없이 손톱을 물어 뜯으며 지냈습니다. 손톱을 깎아본 적이 없습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설렘과 이제부터 천주교 신자로 어떻 게 살아갈지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퇴퇴 손톱을 물어뜯 으며 앉아 있던 그때, 그냥 주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이 제 제가 주님의 아들이 되었잖아요. 주님께서 주신 몸을 제 이빨로 제가 물어뜯어 퇴퇴 내뱉고 있는 이 버릇! 이거 좀 안 하게 해 주세요. 저도 지겹거든요.”
탑승 안내 방송을 들으며 비행기에 오른 이후 그리고 지금까지 저는 손톱을 물어뜯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 않 으려고 노력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이것이 기적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 습니다.
쿠바 이민사의 비극과 영광을 그린 SBS의 ‘애네갱의 후예들’ 관련하여 취재하고 멕시코로 돌아온 우리들은 많 이 지쳐 있었습니다. 하루의 휴식을 갖기로 한 우리를 위 해 멕시코 관광 안내를 맡아주기로 한 분은 대사관 직원 의 부인이셨습니다.
다음 날, 자연사박물관으로 가기 위해 그분의 차에 오 른 우리는 극심한 정체에 갇혀 버립니다. 반대편 차선은 뻥 뚫려서 차들이 달려가는데⋯. 30여 분을 꼼짝도 못 하 고 앉아 반대 차선을 바라보자니 뭔가 이상합니다. 달리 는 차마다 꽃으로 장식한 성모상이 실려 있습니다. 성모 상을 둘러싸고 와와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며, 다들 미쳤 습니다.
그제야 알게 됩니다. ‘운전 기사의 날’인 오늘, 휴일을 맞은 기사들이 과달루페 성모 발현지에 순례를 가고 있다 는 것을! 그들을 위해 우리 쪽 차선을 막고 있다는 것도. 성모님을 뵈러 가야지 무슨 얼어 죽을 박물관이냐. 불법 유턴을 한 우리도 성모 발현지로 내달립니다.
과달루페 성모님의 알현이라는 기적은 그렇게 찾아왔 습니다. 성모님의 형상이 새겨진 천은 벽에 걸려 있고, 10여 명씩 대형 컨베이어벨트 같은 것에 올라타 그 모습 을 쳐다보며, 눈물지으며 지나갔습니다. 다시 보고 싶으 면 긴 줄의 맨 끝에 가서 벨트에 올라탈 순서를 기다려야 합니다.
과달루페 성모님은 1531년 멕시코의 테페약 산에서 57세의 원주민 성 후안 디에고 앞에 모습을 드러내셨습 니다. 성모님은 갈색 피부의 원주민 여인으로 파란색 망 토를 입고 계셨습니다. 디에고가 장미를 담았던 옷 틸마 에는 성모님의 모습이 새겨집니다. 그것이 과달루페의 성 모화입니다. 나를 스쳐 가는 작은 기적들, 주님을 만난 후 의 행복입니다.
'세대간 소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씀의 이삭 | 성모님의 눈물 (0) | 2024.10.01 |
---|---|
누룩 | 더욱더 넓은 ‘우리’를 향하여 (0) | 2024.09.28 |
누룩 | 우리는 바오밥나무처럼 강하다 (0) | 2024.09.21 |
말씀의 이삭 | 용서를 위하여 (6) | 2024.09.17 |
누룩 | 어떤 기적 (2) | 2024.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