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피아노 松竹 김철이 초저녁 창가에 달빛이 비치는데 피아노를 연주하는 어느 집 아이의 고사리 손길 따라 우윳빛 건반 그 위로 내려앉듯 별빛 총총히 떨어진다. 松竹♡동시 2023.11.14
구름 구름 松竹 김철이 어제는 그리도 환히 웃더니 오늘은 방금이라도 울음보가 터질 것 같다. 어디서 왔을까 먹구름 몇 점이 온 하늘 가득히 먹물을 뿌려놓는다. 시샘이라도 하듯이 흰 구름이 또래의 친구들 모두 데려와 울상이던 날씨를 잔뜩 웃겨놓는다. 웃어볼까 울어볼까 변덕쟁이 구름은 심히 부끄러워 큰 얼굴 밤의 품속에 꼭꼭 숨어버린다. 松竹♡동시 2023.10.17
보름달 보름달 松竹김철이 날마다 밤마다 한잠도 못 잘 텐데 어쩌면 저렇게도 옴포동이같이 살이 올랐을까? 날마다 낮마다 햇살도 못 쏘였을 텐데 어쩌면 저렇게도 까마무트름히 잘도 여물었나? 松竹♡동시 2023.09.12
선풍기 선풍기 松竹 김철이 직장 일 고된 일 우리 아빠 지칠세라 열대야 극성도 무안하게 네 날개 팔랑팔랑 힘겨운 집안일 우리 엄마 고될세라 효성 지극한 효자손 되어 까만 밤 하얗게 쉬지 않고 돌고 또 돈다. 松竹♡동시 2023.08.15
오륙도 오륙도 松竹/김철이 철썩철썩 파도 높은 큰 바다 한가운데 꼼짝 않고 그 자리, 제주도 좋네 기럭기럭 갈매기 노래 아침을 깨우고 밤을 재우는 여섯 형제 다섯 형제 동쪽에서 보면 여섯 형제 서쪽에서 보면 다섯 형제 일 년 삼백육십오일 우애도 좋지 밀물 때나 썰물 때나 서로서로 보듬어 사시사철 다섯 형제 여섯 형제 땔 수 없는 운명으로 살더라 松竹♡동시 2023.07.25
필통 속 가족들의 옛이야기 필통 속 가족들의 옛이야기 松竹 김철이 공부하다 잠시 졸면 속삭이는 소리 들려 눈 비벼 귀 대보면 들리는 건 옛이야기 필통 안 식구들이 모여 앉아 오순도순 얘기 소리. 고생했던 몽당연필 으스댔던 색연필들 거짓 일기 쓰다 지운 지우개가 앞다퉈 말을 해요 필통 속 옛이야기 들려주고 싶다고 필통 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松竹♡동시 2023.06.13
바다 바다 松竹 김철이 밤, 낮 가리지 않고 왔다 갔다 소란스럽기도 하련만 한없는 모정이 되어 온갖 생명 젖 물려 키운다. 태평양도 대서양도 눈에 보이지 않는 길섶에 올려놓고 연필 한 자루 가지지 않고 물의 역사를 적어간다. 한순간 쉴 틈 없이 들락날락 밀물과 썰물을 친구 삼아 세계를 하나로 잇기 위한 단어 없는 대화를 나눈다. 松竹♡동시 2023.05.23
민들레 민들레 松竹/김철이 길섶에 민들레 우리 아기 손 같아 우리 엄마 손에 잡혀주고 싶어라 산길에 민들레 방긋 모습 우리 동생 같아 포근히 안아주고 싶더라 들판에 민들레 넓다 않고 주저앉아 노는 표정 갖난아기 티 없는 투정과 같더라 松竹♡동시 2023.04.25
동심 동심 松竹/김철이 얼마큼 자랐을까… 한 걸음 앞서가는 세월 따라가려 날마다 보이지 않는 키 재기를 한다. 너는 엄마, 나는 아빠 저만치 물러나 앉은 아빠 엄마 모습으로 미리 어른이 되어 본다. 마냥 놀고만 싶은데 공부해라, 학원가라 쉴 틈 없는 엄마 성화 귓전 밖 물로 흘려보낸다. 늘 정직해라 충실해라 아빠 교훈마저 싫증 나서 귀 막고 눈 가리고 몇 점 바람으로 달아난다. 松竹♡동시 2023.03.14
하루 하루 松竹 김철이 남의 속도 모르고 창틈으로 스며드는 아침 해는 빙그레 웃는다. 조급해할 것 없는 나의 일상은 침상을 뒤척거린다. 등교 전 놀이터 들러 노는 동심 소리에 화들짝 松竹♡동시 2023.02.21
겨울 겨울 松竹 김철이 코흘리개 아이들 절로 신이 난다. 꽁꽁 언 빙판에 팽이치기할 부푼 꿈에 처마 밑 고드름 현기증 절로 난다. 짧지 않은 한 시절 거꾸로 매달려있을 걱정에 진눈깨비 춤 맵시 곱기도 하지 추운 계절 훨훨 날며 따뜻한 나라 찾아갈 거라고 온 동네 개구쟁이 몹시도 즐겁다. 길고 긴 겨울방학 함박눈 친구 삼아 한껏 뛰놀 거라고 松竹♡동시 2023.01.03
눈사람 눈사람 松竹 김철이 나비도 아니지만 허공을 날아 이 땅으로 내려왔지요 금수강산 삶터 삼아 살고파서 팔랑팔랑 내려왔지요. 온갖 소음 다 씻어내고 이 세상 새하얀 마음 전하고파 이 땅에 살고 싶어요 세상 사람 하얀 마음 일러주고파 소복소복 이 땅 위에 쌓였어요. 눈도 코도 삐뚤지만, 마음 하나 바르게 살고파서 이 땅속 젖어 들래요 성난 사람 모난 사람 모두 손잡고 천년만년 스며들래요. 松竹♡동시 2022.12.14
감 감 松竹/김철이 비어 가는 가지 사이 구멍 뚫린 마음으로 붉게 웃지요 까치밥 몇 알로 남겠지만, 늘 그렇게 웃지요. 시들어 가는 떡잎을 보며 애처로운 심정 가눌 길 없어서 슬피 울지요. 붉은 눈물 몸에 배도록 늘 그렇게 울지요. 松竹♡동시 2022.11.08
고슴도치 고슴도치 松竹/김철이 제 자식 귀한 줄 누가 모를까 등창에 가시 창 소복이 심어 세상천지 천적들 눈감고도 막아낼 수 있음이 누구 하나 쉬 넘보지 못하고 얕보지 못하니 하늘 아래 너른 땅 의젓하게 굴러간다. 松竹♡동시 2022.10.25
추석 추석 松竹 김철이 1년 한가운데 다소곳이 앉아 햅쌀 고이 찧어 송편을 빚는다. 삼복더위 열대야 속에 몸에 입었던 옷 고이 접어 뒤로 미뤄놓고 추석 빔을 입는다. 온 동네 장정들 한마음 한뜻으로 후년의 대풍을 위하여 굵은 외줄을 당긴다. 온 마을 처녀들 대보름 달밤을 기리며 손에 손 마주 잡고 덩실덩실 춤을 춘다. 松竹♡동시 2022.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