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92

인생길|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인생길 松竹 김철이 누구 하나 등 떠민 이 없건만 무엇이 그리도 급해서 옷 한 벌 걸치지 못한 채 외마디 울음으로 달려든다. 세상 그 무엇보다 질긴 것이 인간사 인연이라 못 본 채 외면하려 다짐해 보건만 작심삼일이라 걷던 길 다시 걷는다. 무슨 원수 맺혀 만났던가 치를 떨며 헤어졌건만 한숨 자고 나니 참 벗이라 두 어깨 가지런히 동행한다. 돌아갈 길 코앞인데 정녕 맺지 못한 연은 태산이라 못내 아쉬운 심정에 주름진 손 허공을 휘감는다.

개인♡시집 2022.03.05

오장육부가 뒤틀려 못 살겠네…|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오장육부가 뒤틀려 못 살겠네… 松竹 김철이 보릿고개 석 삼 년에 도둑질하지 않는 놈 없다던데 지가 언제부터 호의호식했다고서 바로 코앞의 일조차 잊은 게야 그 누가 올려놓은 권좌이고 그 누가 물려준 명예인지 전상호(殿上虎) 사자(獅子) 부재중인 대궐에 호랑(狐狼)이 왕(王) 노릇을 하는구나. 발광한 코 큰 소가 온통 법석이고 병자호란 만적(蠻狄)이라도 된 양 중국산 의식주 창, 칼도 들지 않고 금수강산 백의민족 생존권을 위협하며 호령인데 나약한 호랑은 만백성의 신음 귀 밖으로 흘리다니 충효 사상 지극하고 삼강오륜 목숨처럼 지켜오신 조상님들 지하의 대성통곡 귓전을 때리니 참회하는 마음 간 곳 없고 원망하는 마음만이 태산일세 물과 세월은 되돌릴 수 없는 것 무심코 살아온 세월이 가슴을 치고 저승 가신 조상님들..

개인♡시집 2022.02.26

허상|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허상 松竹 김철이 작은 눈 속의 큰 세상이라 벅찬 가슴에 품은 욕망 한 해의 소망으로 빌어보련만 고개 돌려 외면하기 일쑤다. 근본이 야박한 게 인심이라 등 뒤에 감춘 속셈 헤아릴 길 없어 가진 본심 열어 한 걸음 다가서니 세상은 저만치 이별을 고한다. 동지섣달 기나긴 밤에 속속들이 파고드는 외로움 씻을 길 없어 동창에 부는 바람 벗을 삼으려니 언 뺨을 세차게 후려친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도 안 되는 사람 속은 알 수 없다 했던가 몇 십 년 해묵은 부부의 연이 하루아침 철천지원수의 연으로 돌변한다.

개인♡시집 2022.02.19

고독|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고독 松竹 김철이 거친 갈까마귀 숨결마저 잠드는데 부엉이 울음의 득세는 온 산기슭 울리고 산안개 독백의 기원을 올린다. 뉘라서 거역하리오 당면한 이 순간을 꽃으로 피고 싶은 소망이든가 강둑 물보라 고요히 피어난다. 붉은 노을 서산에 지고 동창의 달은 밤하늘 한가로운데 소쩍새 외로운 울음을 운다. 내일을 향한 밤의 행보는 총총한 별인데 밤 기러기 나래 짓 쓸쓸한 줄을 잇는다.

개인♡시집 2022.02.12

아주까리 등불|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아주까리 등불 松竹 김철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골골대며 흐르던 시냇물 잠이 든 듯 부엉이 울음소리에 기가 죽고 초가삼간 추억 속에 졸고 있다. 길 잃은 나그네 등골에 한기가 솟고 하늘의 악동들 잔별의 장난기 늘어만 가는데 오막살이 찢어진 창호지 들락날락 서당 아이 글 읽는 소리 자장가 가사로 밤 창공에 수를 놓고 삽살개 짖는 소리 심통을 부리는데 겁먹은 등불은 심히 떨더라 밤의 터줏대감 소쩍새 호령은 산을 넘고 들을 건너는데 술 취한 취객인 양 여염집 안방을 깔고 앉아 권주가 삼매경

개인♡시집 2022.02.05

사는 게 뭔지|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사는 게 뭔지 松竹 김철이 누구 하나 등 떠밀지 않았건만 빈주먹 불끈 쥐고 굳세게 살리라 천 리도 더 되는 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왔으나 반기는 이 없는 이 땅 인력(人力)으로 풀 수 없을 번뇌가 반겨주더라. 그저 손 놓고 구경만 하다 돌아설 수 없는 게 인생이라 옷 한 벌 걸치지 않고 성급히 뛰어든 세상이란 바다에 건질 것 하나 없는 허상(虛想)만 우글거리더라. 돌아갈 시간 코앞인데 할 일은 태산이라 조급한 심정 감출 길 없으나 세상만사 다 놓고 가라시는 지엄(至嚴)하신 천지 말씀 귓전을 맴돌더라. 돌이키고 싶으나 정녕 돌이킬 수 없을 인생이라 깊은 후회만이 가슴을 메우니 돌아갈 길 두렵기만 하고 내세(來世)에 질 짐은 무겁기만 하더라.

개인♡시집 2022.01.29

부모(父母)|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부모(父母) 松竹 김철이 품 안의 자식이라 검은 머리 파뿌리 되는 줄도 모르고 젊음을 담보로 일순간 유희(遊戱)를 즐긴다. 청춘은 흐르는 물결이라 세월(歲月)에 바람처럼 흩어지는 육신 거대한 세상에 올려놓고 피붙이 위한 한판 시름을 한다. 가야 할 길은 코앞인데 하늘 맺어주신 인연의 끈을 놓기 싫어 지팡이 하나 혼신(渾身)을 다해 의지한다. 저승 가는 길은 멀기만 한데 노잣돈 한 품 벌지 못한 탓에 주름진 얼굴에 심히 근심만 날개를 편다.

개인♡시집 2022.01.22

딱따구리|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딱따구리 松竹 김철이 백사장 모래알만큼이나 무수한 인간사 언어들 무기 하나 들지 않고 사랑하는 이 상처를 준다. 인두겁 썼다 하여 다 인간인가 구실을 다 못하면 금수만도 못하거늘 세 치 혀를 떠난 말들 부리조차 없을 한 마리 딱따구리로 생겨나 달리는 말도 없이 천 리를 간다. 육의 상처 세월 가면 절로 났지만 혼의 상처 천 년도 더 가기에 열일을 다 제쳐놓고 마음 가지런히 세 치 혀 다스려 주기를…

개인♡시집 2022.01.15

신토불이|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신토불이 松竹 김철이 그 옛날 속담에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했듯 사시사철 변함없이 옥수(玉水) 같은 맑은 물이 흐르던 그 줄기 국적불명 폐수가 흐른다. 꽃 피고 새 울던 금수강산 옥토에 윤기 나는 백미(白米)가 절로 자라더니 밀밭의 가라지인가 안면몰수 키 큰 오곡이 무성히 자라누나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왕 노릇 한다더니 왜구 무력에 퇴위(退位)당한 왕위 부재중 틈을 탔나 논두렁 두렁마다 발광 소 지랄이냐 백의민족 숭고(崇古)한 얼이 서린 이 나라 이 창공에 텃새는 어디 가고 철새만 활개 치니 내 이름 석 자 쓸 줄이나 알는지

개인♡시집 2022.01.08

추어탕|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추어탕 松竹 김철이 보양식 한 그릇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어릴 적 어머니 손맛이 아내의 손끝에 살아 숨 쉬는 덕이지 세월은 갔지만 추억은 영원한 것 낡은 두레상에 둘러앉은 어린 시절 빛바랜 가족 사진첩이 펼쳐지누나 몇십 년 뛰어넘은 시간의 흔적이 코앞에 놓인 뚝배기 속 김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가을 논두렁 살찌는 미꾸리 헤엄이 해묵은 추억이 되어 저녁상에 오른 추어탕 그릇 속 동심으로 꼬물꼬물 되살아 놀더라

개인♡시집 2022.01.01

하루|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하루 松竹 김철이 눈썹달이 두 팔 벌려 기지개 절로 켜는 아침 세상 뭇 생명 초를 다투어 삶의 전쟁터 칼의 날을 세우고 행여 녹슬세라 마음의 총에 기름칠 여념 없다. 소쩍새 울음이야 새벽을 불러오지만 인간사 울음이야 갖은 욕심 다 불러오니 미물조차 비웃더라 하루살이 날개마저 탐내는 인욕(忍辱)의 미련함을 하루가 있어 오늘이 있고 하루가 있어 내일이 있거늘 이틀을 앞세워 채찍질하는 사람들 무서워 눈 뜨고 잠 깨기 싫어서 잠자는 공주가 되리니 소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청설모 쌓인 낙엽 위에 새로운 둥지를 틀지만 세상 벼랑 끝에 쉬는 인생들 보장되지 않은 하루의 허상 잎에 물주고 가꾸며 갖은 정성 목을 매더라

개인♡시집 2021.12.25

추억|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추억 松竹 김철이 친구야! 까만 별밭에 하얗게 내리던 동심의 세레나데 넌 기억하니? 골목 안 가득 차던 악동들 웃음 보따리 세상 그 어디에 풀어놓았는지 아련한 세월 속 흔적으로 남누나 우리는 그랬네 못 치기 구슬치기 날 저문 줄 몰랐고 쥐불놀이 숨바꼭질 날 밝는 줄 몰랐지 나무 평상 줄지어 오순도순 밤하늘 별을 세며 풀벌레 울음소리 장단 맞춰 부르던 그 노래 어느 임 귓전에 맴도는지 정녕 찾을 길 없단다. 머리엔 은꽃이 피어나고 얼굴엔 저승꽃 곰삭아 피는데 마음은 청춘이라 금잔디 피고 지는 그 옛날 맨발로 달려가네

개인♡시집 2021.12.18

부부|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부부 松竹 김철이 강물은 흐르고 외나무다리 위에 마주 선 운명체 돌아설 길은 단 하나 님이냐 남이냐 외바퀴 굴렁쇠라 하더라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보석 하늘이 허락한 인연 세상 끝날 손 잡고 돌아갈 고향의 길동무라 눈감고도 천 리를 가겠네 온 세상 다 팔아먹어도 허물치 말고 천지를 잡아 먹혀도 탓하지 마라 한 영혼 한 육신으로 살아갈 운명이니 살풀이인들 무슨 소용 있으리 내 것 네 것이 엄연히 구별된 세상에서 살 섞고 뼈 섞어 불리는 하나의 노래 백 년을 살아 하루도 변함없이 지어내는 작사 작곡 들을수록 오묘한 불멸의 명곡일세

개인♡시집 2021.12.11

시(詩)|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시(詩) 松竹 김철이 영혼의 옥토에 단어의 씨앗이 내리면 심성의 호미로 잡초를 저미고 노력의 물조리개 물을 뿌리니 너른 세상 인생이 되더라 어디서 날아왔는지 이른 봄 뜰에 나비 한 마리 가슴속 안방을 차지하고 날갯죽지 흰 가루 절로 뿌릴 적 언어의 마술사 말벗으로 산다. 인간의 고뇌 속의 감정 없는 노예가 되어 쇠고랑 발목에 차고 마음속 밭고랑을 오가길 몇 차례 웃자란 곡식을 수확하듯 설익은 가을을 캐더군 세상은 요지경 어릿광대 어설픈 춤사위에 울고 웃는 관객인 양 언어의 조련사 머슴이 되어 인생들 마음의 뜰 안을 쓸어주니 세상 뭇사람 허상뿐인 그를 가르쳐 뭇 민족의 가슴속 되새김질 삶을 사는 시(詩)라고 하더라

개인♡시집 2021.12.04

장승|제 3시집 인생노름 중에서

장승 松竹 김철이 나그네 걷는 길 구름도 바람도 벗이 돼주지 않는 외로운 길 삶의 고단함이 속속들이 묻어나는 긴 여정 한순간 중얼거리는 언어의 말벗이 된다. 갈지자 취객의 시야에 들어선 그 모습 요지부동 꼿꼿한 고목의 표정인 양 어엿함에 흥얼거리다 마을 어귀 통째 흔들거린다. 산새도 들새도 날다 지치면 썩은 나무 둥지 어깨에 내려앉아 순간을 쉬어가려 하니 왕방울 눈을 부릅뜨고 호령이 미물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천하 대장군 지하 여장군 국란(國亂)이 일어난다 한들 두려움 하나 없는 듯 창칼 들지 않았어도 험상궂은 인상 한번 쓰고 나면 두만강 건너오던 오랑캐도 현해탄 건너오던 왜군도 신발조차 못 신고 천리만리 달아나겠네

개인♡시집 2021.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