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꾸러미
김철이 비안네
공사판에서 사고로 노동력을 잃으신 아버지를 대신해 국화빵을 구워 파는 어머니 옆에서 뻥튀기를 팔던 한 고등학생이 독립을 선언하고 극장 앞에서 과일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늦여름 밤이었다. 이날은 온종일 비가 구질구질하게 내려 장사가 잘되질 않았다. 밖에선 궂은비가 내리고 있었으며 마지막 회를 관람하고 극장 밖으로 몰려나오는 사람들에게 한 가닥 희망을 걸고 극장 입구를 바라보고 있을 때, 자동차 한 대가 후진하다 그만 학생의 손수레를 받아버렸다. 갖가지 과일들이 땅바닥으로 우르르 쏟아졌고 수박은 박살이 나버렸다. 굴러다니는 과일을 줍기 위해 땅바닥을 엉금썰썰 기고 있던 그의 목덜미 위로 욕설이 쏟아졌다.
"야!, 이 자식아!~ 수레 똑바로 안대!"
자동차 주인의 위세에 눌려 엉겁결에 잘못했다고 했던 학생은 속에서 슬슬 화가 치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했던 나머지
'이런 식으로 살아서 무엇하나. 차라리 어디론가 떠나버리자.'
주머니에 있는 돈을 헤아려보니 서울 갈 여비는 될 것 같았다. 북받쳐 오르는 서러움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옆에 있는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술이라도 한잔 마시고 떠나자는 생각에서였다.
평소 학생을 좋게 보아온 포장마차 주인아주머니께서 술을 내지 않고 망설이고 있을 때, 학생의 뇌리를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과일 장사 시작한 지 언제인데 아직 부모님께 과일 한 개 드리지 못했구나!'
몸이 불편해 집에만 계시는 아버지와 새벽마다 성당에 가서 아들을 위해 기도하시곤 곧바로 장사 일 나오시는 어머니께 깨진 과일 하나라도 드리고 서울로 떠나야 할 것 같아 그냥 집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아버지! 과일 좀 드세요. 많이 남았거든요."
학생의 과장된 밝은 목소리에 사태를 알아차린 어머니는 과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무 말 없이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튿날 새벽에도 어김없이 성당에 다녀온 어머니의 기도는 가정 제대 앞에서도 한 시간여 이어졌다. 그런데 그날의 기도는 더욱 간절하고 길었다. 평소와 다른 어머니의 기도가 학생의 무딘 가슴을 두드렸다. 학생의 가출은 일단 미루어졌고 얼마 가지 않아 평정심을 되찾았다.
위의 설처럼 사탄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기 일쑤지만 아무리 간교한 사탄이라 하여도 기도의 힘에는 칼바람에 가랑잎이니 쉼 없는 기도 생활을 독려하시는 성모님의 드높은 은총에 보답하는 뜻에서 우리 한 영혼 한 영혼이 기도 꾸러미로 되살아 묵주기도 성월을 풍성하게 지내야 하겠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 하느님의 뜻에 따른 것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주님을 통해 하느님께로 모이게 될 것이지만,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은 주님을 반대하며 흩어지도록 만들어 사탄에게로 인도할 것이다.
악에서 확실하게 돌아서서 주님의 그늘 아래 들어온 이들은 참으로 하느님께로 향하게 되며 마귀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주님을 거부하면 결국 마귀는 그 사람을 더 악하게 만들고 말 것임을 성경은 거듭해 말씀해 주신다.
우리를 자유와 평화의 하느님께로 인도하시는 주님께 우리 자신을 의탁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 자유 안으로 언제나 초대하신다. 그러므로 그 초대에 응답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면 좋겠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묵주기도의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시며 이 묵주기도 성월을 참으로 주님 안에서 지낼 수 있도록 어머니이신 성모님과 함께하게 해주시도록 도와주시기를 청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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